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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3-11 (화) 01:4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36    
[3/9/08]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과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과 (사도행전 18:1-11)
언젠가 결혼식 주례사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만남의 중요성을 아시고 계십니까? 사람은 결코 좋은 환경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남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사람을 잘못 만나게 되면 불행한 것입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환경이 좋지 않아도 좋은 사람과 늘 만남이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을 잘 만나서 그 인생이 더욱 빛난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좋은 만남이라 하더라도 서로 노력하여 그 만남을 잘 가꾸어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고린도는 아테네와 달리 상업 신도시로서 당시 부와 사치, 환락,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부도덕의 상징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우상신전이 자리잡고 1000여명의 종교적 창녀들이 그 신전에서 봉사하였다고 합니다. 1년의 한 달은 이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나머지 11달은 도시 구석 구석에서 그들이 매음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의 500년 동안 헬라어로 ‘고린도화하다’는 의미는 성적 타락, 음란한 부도덕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에서 구별된 거룩한 성도로서의 살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병균이 들끓는 더러운 환경에서 건강을 지킨다는 것이 힘들듯이 말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얼마나 부도덕이, 음란함이 우리 주위에 가득차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리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6절) 하였습니다. 주변 환경도 어려운데 훼방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도 잘 아는 관습대로 바울은 옷의 먼지를 털며 너희들이 멸망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사역의 대상을 이방인들에게로 옮깁니다.
이렇게 힘들어도 바울이 계속하여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과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본문에 나오는 만남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의 만남이었습니다(2절). 사도 바울이 이 곳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데, 아마 생활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며 생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같은 업을 하고 사는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난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에서 추방당해 온 유대인 부부였습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주후 49년경 로마시 내의 그리스도인들의 선동으로 인한 소요 때문에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고린도까지 오게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부터 믿음이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났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이 그들을 만나러 갔던 것입니다.
바울이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던 그들은 동일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은 본문 10절 하반절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하신 것입니다. 이 타락과 부패의 상징인 고린도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라는 음성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꿈이었습니다. 이 꿈 때문에 그들은 장막을 만들며 힘들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의 수제자로 그는 유대 학자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가 지병도 있으면서 고된 장막을 만들며 사역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비하시킬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이 힘들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적 수단이라고 생각했기에 기쁨으로 감당했다고 믿습니다. 일 자체가 목적이라면 금방 자신을 비하하며, 학대하였을 것입니다. 사역을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꿈을 소유한 자들이었기에 즐겁게 감당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이 고달픈 이민 생활하면서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라면, 그 일에 메여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얼마나 여러분 자신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이 됩니까? 얼마나 가치가 없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다고 한다면 참으로 귀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동일한 꿈을 가진 부부를 만나 힘을 얻고 계속 사역하였던 것입니다. 4절에서 보다시피 그들은 만난 후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본문을 비롯하여 여섯 군데에서(행 18:18-19, 26;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이 부부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죽은 우상신을 믿는 사람들처럼 내가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잘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하여 자녀를 기르는 것입니다. 내 공부, 내 건강, 내 사업,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위하여, 하나님 나라 위하여, 하나님 영광 위하여 그 모든 것은 목적적 수단일 뿐입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일을 해야 힘든 일 가운데서도 찬송이 나올 것이 아닙니까? 감사가 터질 것이 아닙니까? 그 믿음 가지고 살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에 와서 바울과 다시 만나 사역에 동참한 것입니다(5절). 그들은 바울이 홀로 전도여행을 하던 아덴으로 떠날 때부터 헤어졌다가 바울과 합했고, 빌립보교회로부터 선교비를 가져왔습니다(고후 11:9; 빌 4:14-15). 그래서 바울이 더 이상 장막 짓는 일을 하지 않고 복음 증거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들려준 데살로니가 소식은 참으로 고무적이었습니다(데살전 3:6). 그것은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전에 들러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에서 사역의 효과에 대한 열매있는 보고는 참으로 힘든 고린도에서의 사역에 힘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선즉 우리가 살리라”(데살전 3:7-8)!
그래서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이 있어도 자리를 옮겨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과 동일한 꿈을 가진 참으로 귀한 동역자들과의 재회였습니다.

셋째로, 이방인 디도 유스도와의 만남이었습니다(7절). 유대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던 회당을 떠나 회당 옆에 집이 있던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디도 유스도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들어갑니다. 아마 고린도교회의 최초의 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가이오라고도 불리웠습니다(고전 1:14; 롬 16:23). 그는 아마도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전부터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메시아, 그리스도가 곧 바울이 전하는 예수임을 믿고 그와 동일한 꿈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자, 바울과 선교팀을 따뜻하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계속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뜻 밖에 회당장 그리스보가 주님을 영접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믿게 되었고, 이 소문을 들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어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바울에게 이방인 디도 유스도, 즉 가이오와 만남이 얼마나 축복의 만남이요, 좋은 만남이었습니까? 이러한 만남이 바울로 하여금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복음을 증거하며 사역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자녀들에게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합니다. 친구 잘못 사귀어 나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무나 막 사귀고 만나려고 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 만남이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도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만난 사람이 나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고, 나쁘게 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합니까? 정말 좋은 목사, 좋은 장로, 좋은 권사, 좋은 집사, 좋은 평신도가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 교제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가 좋은 성도요, 좋은 만남이 됩니까?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삶의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꿈이 같아야 합니다. 보는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건지려는 삶,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해서든지 확장이 되어야지 하는 하나님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한시라고 잊으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힘과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누가)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이, 사탄 마귀가 여러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십니까? 아니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삽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은 무엇으로 항상 가득차 있습니까?
그래서 동일한 꿈을 가진 자들과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더 기본적인 만남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말씀을 통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직 성경 말씀이 완성되기 전에 바울은 환상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께서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9절하-10절상)! 이러한 말씀이 그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겠습니까? 아무리 방해꾼이 있어도, 핍박이 심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터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소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에 그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 . .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6, 9)고 하신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가나안이 정복되었던 것처럼 고린도도 정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3:9-10)고 하지 않았습니까? 할렐루야!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소유하고 계시고, 주장하고 계신다면, 정말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소유이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참 주인이 되십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동일한 하나님의 꿈을 가지신 분입니다. 동역자이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우리 교회에 많이 허락해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실라와 디모데, 디도 유스도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니 우리 서로에게 그런 좋은 만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만남을 잘 가꾸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도 허락하신 동일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힘써 노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우리 교회 안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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