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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4-16 (목) 03: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88    
[4/12/09] 부활을 본받아
부활을 본받아 (로마서 6:5-11)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믿거니 못 믿거니 하며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듣지, 믿지 못하든지 간에 이는 '사실'(fact)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 증인들이 500명이 넘고(고전 15:6), 증거는 너무 많습니다. 역사상 성인들의 무덤은 다 있는데, 빈 무덤은 예수님의 것 밖에 없습니다.
이 부활의 기적을 믿는 성도들은 오늘도 많은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 갑니다. 어떤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큰 기적만이 기적이 아니고, 매 순간 여러가지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체험도 기적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부활이 가져다 주는 기적입니다. 성도라면 당연한 경험입니다.
저는 오늘 2009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부활이 성도들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신자들의 실제적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읽어드린 본문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강해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성도들이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부활을 본받아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사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로마서 4장과 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사망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확증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5:8) 그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담은 우리에게 죄를 가져왔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율법은 죄를 가르쳐 주기에 우리의 죄들을 지적하지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습니다(롬 5:20). 그랬더니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들이 '그럼 우리가 더욱 죄를 많이 지어 은혜를 더욱 받자'(6:1)고 하며 바울의 말을 잘못 이해하자, 절대로 "그럴 수 없느니라"(6:2상) 하시면서, 바울은 신자들이 거룩하여 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세례의 의미를 상기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을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거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1절). 즉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죄의 권세(power)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가 치러야 할 죄의 대가(penalty)를 해결하여 주셨고, 그의 살으심은 이제는 죄의 권세, 사탄이 우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우리 삶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후 변한 것이 있는데, 성도들은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강조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을 생각하며 설명합니다. 물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물로 세례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의 문자적 의미는 죄 씻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영적인 의미는(3절) 주님과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절).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연합하듯이 말입니다. 즉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을 것처럼,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구속하시려고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었다가,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kainovth, new quality) 생명으로 태어나 새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4절). 새로운 성품, 인격으로,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내가 완전히 거룩해 졌다는 것이 아니라, 내 신분 (Identification)이 바뀐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고후 5:17). 그래서 6-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려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 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합니다. 여기 '옛' 이라는 뜻은 완전히 소모되어 아무 소용이 없게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우리가 받은 세례는 일종의 장례식과 같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옛 사람을 장사 지냈기에 죄의 권세가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여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었기에 우리가 죄의 종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의의 종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자라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입니다. 죄의 권세가 다스리지 못합니다. 죄에 대하여 자유합니다. 일부러 계속하여 죄를 지으며, 그 가운데 거하지를 못합니다. 마치 어느 부인의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그 남편에게 매여있던 그 무엇으로도 해방이 되어 자유합니다. 그 남편에게 순종해야 할 법은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남편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 바 되었습니다.
8-9절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었다면 함께 영원히 살 줄로 믿는 이유는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훗날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4절) 된 것으로, 10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하신바, 우리가 현재 사는 것도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을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셨고, 3장 1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어느 왕자가 자신이 왕자인 신분을 모른 채로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왕이 그를 찾아내어 왕궁으로 불러서 그의 모든 신분을 도로 찾고 왕자로서의 새 삶을 살 때에 이제는 왕을 위하여 살면서 왕자로서의 품성과 위엄과 행위를 배우면서 가꾸고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방황하며 정욕대로 살던 왕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사탄의 능력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이 사탄의 능력을 물리쳤기에 우리 안에서도 성령이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어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의 의를 위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진리를 분명히 알 것을 바울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여길지어다" 입니다. 알고 있는 것 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아 '나는 이러한 상태구나' 라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여기 ‘여긴다’ (logivzomai, reckon)는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의 은행 구좌에 많은 돈을 넣어 주고 그 사람이 자기 은행 구좌에 돈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수표를 쓰는 경우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여기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여기지 않아도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실인데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여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여깁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사실(fact)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죄에, 사탄에 지는 이유는 사실을 사실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로 여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요즈음 많은 신자들이 모세와 그 백성들이 애굽 바로 왕 앞에서 10가지 기적을 체험하고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였듯이, 애굽과 가나안의 중간에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부끄러운 구원으로, 마치 성 금요일인 수난일과 부활절 사이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믿지만 부활의 능력이나 그 영광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삶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기억하십니까(요 11장)? 죽어서 무덤에 있은 지 나흘 후에 주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십시요. 만약 다시 산 나사로가 무덤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욕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함께 세례 받음으로 연합한 자가 되어서 다시 죄의 종 노릇을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헛되거나, 부활이 헛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부활의 삶을 삽니다. 부활의 능력을 입고 삽니다. 죄의 대가는 삽자가의 죽음으로 치루셨고, 죄의 권세는 부활로 말미암아 무너졌습니다. 성도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 하나님을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렇게 연합이 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실(fact),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여기지 않아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여기고 살면 부활의 승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은 여러분 책임입니다. 정말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사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요?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2-14). 성령의 도우심으로 몸의 사욕들을 버리십시요. 온갖 정욕과 시기 질투, 교만에 대하여는 죽고, 오히려 주님의 부활을 본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자비, 거룩하심, 화평, 인내 등에는 산 자로 여기고 사십시오. 그러한 삶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 정말 오늘날 부활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처럼 사실들(facts)을 똑똑히 알고, 그렇게 여기며 믿고 살듯이,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산 자로 알고, 여기며 살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기적을 체험하여 부활의 증인들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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