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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6-24 (월) 22: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40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8-13)


여러분들도 이미 경험해 보았겠지만, 우리 모두를 포함한 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합니다. 너무나도 빨리 변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Eros)도, 형제, 친구 간의 사랑(Phileo)도,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Storge)도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오래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사랑은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은 영원하며, 완전합니다.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 주님 재림하신다 하여도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동안 아가페 사랑의 속성 15가지를 설명한 후에(4-7절), 오늘 본문에서 사랑의 영원성, 완전성, 우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서두에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Love never fails.)”(8절상) 라고 시작합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지만, 원어 성경에 의하면 한 문장으로 마칩니다. 여기 ‘떨어지다’는 말의 원어는 ‘때가 되면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든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이 13장 전체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연하여 마지막 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것은 하나님 사랑뿐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하나님 사랑은 남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 모든 사람이 다 사라지며, 심지어 우리가 드린 예배, 섬김, 봉사, 경건한 삶마저도 다 사라지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품었던 사랑은 남습니다. 나중에 죽어 영혼이 천국에 가서도, 주님 재림하셔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에도 사랑은 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8절에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합니다. 사랑을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지식의 은사와 비교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12장에서 그랬듯이,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자신들이 받은 그런 은사를 가지고 서로 자랑하고 다투는 모습에 대하여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그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은사들은 다 일시적(temporary) 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부분적(partial) 이며, 불완전(imperfect) 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예언한다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하는 것이며,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부분적인 지식이니 온전한 것이 오면, 즉 우리 주님 재림하셔서 천국이 임하면 부분적으로 하던 그 모든 것은 다 폐하여 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울을 오늘날의 거울로 이해하시면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거울로 우리 얼굴을 볼 때 결코 희미하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 거울은 구리로 만든 것으로 구리판을 열심히 잘 닦아서 거울로 사용한 것이니 자기 얼굴을 비추어보면 보이긴 하겠지만 얼마나 희미하겠습니까? 제대로 잘 보이겠습니까? 아마 당시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눈으로 보듯 아주 뚜렷하고 분명히 보였으면 하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 땅에서 깨닫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극히 일부라는 것입니다. 부분적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보이고, 완전히 알게 될 때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깨닫는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다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르면 별들이 그 빛을 잃어버리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많이 아는 것처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우리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할 때가 오면 모두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붙들고 집착할 필요가 없는 헛된 영광들입니다. 그러니까 잠시 있는 것들에, 부분적인 것들에, 불완전한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잠시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그 분의 사랑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20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 사랑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져도 우리의 믿음을 물려받은 후손들의 심령에 계속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붙들고 집착해야 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님 사랑뿐입니다. 잠시 후에 사라질 것들을 붙드느라고, 쫓아가느라고 하나님 사랑을 놓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여러분! 하나님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에, 이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큰 환란이나 시련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이 사랑을 빼앗을 수 없기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조차도 겁을 주지 못합니다. 하물며 이 땅에서 만나는 고난이나 시련이겠습니까? 넉넉히 이깁니다.
   사실 작은 고난과 어려움에도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면 그는 그 어떤 환란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와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으며, 그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38-39).

   바울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11절)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일 때와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서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른 것처럼, 영적으로도 어린 아이의 수준에서 어른의 수준이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서로 낫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우월한 것인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은 잠시 하나님께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어린 아이의 신앙을 북돋기 위하여 한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것일 뿐,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은사나 체험이 없어도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깊이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린 아이의 신앙 수준에서 장성한 어른의 신앙 수준이 되어 하나님 사랑에 붙들려, 그렇게 목숨 걸고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실패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는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사는 사람들입니까? 만약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 앞에 나타나셔서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하면 무슨 소원을 말씀 드리겠습니까? 잘 몰라서 우물쭈물하며 망설이거나, 이 세상에서 사라질 일시적인 그 무엇을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비전이 없는 인생, 꿈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온 마음 다하여 목숨까지 걸고라도 추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남은 인생을 다 걸어야 할 목표요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어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가, 교회에서 어떤 일로 섬기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들이 다 사랑하는 창조주이시며,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기에 최선의 가치로 알고 몸과 마음 다해 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 가지고 나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중심으로 일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 본분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 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일을 잘 했는지, 잘못 했는지가 아닙니다. 그 일을 감당하면서 드러난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셨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사실 그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의 바른 마음가짐이요 자세입니다. 다가올 종말을 확실하게, 슬기롭게 준비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내일 이 세상이 마지막이라 하더라도 오늘도 평상시 하던 일을 하나님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입니다. 뭐 내일 세상 종말이라고 해서 오늘 기도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 살다가 이제 와서 있는 것 다 처분에서 뭐 고상한 일에 쓰는 것도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신앙이 뒷걸음 치는 것은, 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것은 어떤 죄를 짓는 것보다 하나님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없어서, 사랑이 식어져서 죄를 짓는 것이지요. 아니 어제보다 오늘 주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영적으로 타락해가는 조짐입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주의를 기울여 주님 사랑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3절)고 하면서 사랑장을 끝맺습니다. 믿음도 중요하고, 소망도 중요한지만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믿음과 소망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능력이 되려면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함께 하지 않는 믿음은 개인적인 신념일 뿐이며, 사랑이 없는 소망은 허황된 공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으로 뒷받침이 되는, 그 사랑이 함께 하는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이 꺾을 수 없습니다. 때로 잠시 사탄, 마귀에게 우겨 싸움을 당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나 소망은 없으시지만, 사랑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요일 4:8). 이 세상에서야 믿음과 소망이 항상 있지만, 천국에서는 믿음이나 소망이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 목적을 잃어버리니까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고,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십니까? 그렇다면 그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때로는 신령한 은사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가페 사랑만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그 어떤 것보다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주님 만날 준비가 다 되신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 뵈올 날이 더욱 기다려질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제일입니다. 최고입니다. 영원합니다. 다른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이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사십시오. 그 사랑에 무섭도록 집착하십시오. 목숨을 내 놓고, 생명 걸고 주님 사랑하십시오. 모든 일을 그 사랑으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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