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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10-03 (월) 07: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15    
영혼과 생명을 존중하라(신 5:17; 마 5:21-22)



지난 주일에는 십계명 가운데 두 번째 돌판에 새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믿는 자들의 첫째 의무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기초적인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우신 이들을 공경하는 것을 가정에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의 “살인하지 말지니라”(신 5:17) 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유는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6:26; 막 8:36; 눅 9:25).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지, 죽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말에는 살인하는 것이나 죽이는 것이다 다 같은 의미이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단어도 다릅니다. 즉 죽인다고 해서 다 살인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율법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도피성을 만들어 놓고 그런 실수를 범한 사람이 그리로 피하여 살게 하되 대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있다가,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서 나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고의로 사람을 살인한 경우는 마땅히 죽어야 했습니다. 율법에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들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적들과 전쟁할 때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지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정복할 때에 우상을 섬기는 그 족속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 계명은 이런 경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을 쫓겨난 후에 사람이 처음 지은 가장 큰 죄는 살인이었습니다. 그것도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창 4:8). 그 이후로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가혹하였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라"(창 9:6)고 하였고, 율법에 있는대로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민 35:31) 하였습니다. 이유는 살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적하는 것이요, 그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신데 살인자는 그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자살의 경우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람이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은 곧 살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여섯 번째 계명을 강해하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안에 우리의 삶을 효과적으로 절제(control)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적의를 품고 다른 사람을 헤치려고 하는 모든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 살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의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악한 마음, 악한 생각조차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중요시 여기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제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라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마 5:21-22).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살인하는 자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21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붙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2절)고 하십니다. 속 마음으로 형제에게 노하는 자, 화를 내는 자, 분을 품는 자도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의의 분노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향하여 욕하시면서 진노하신 적이 있습니다(요 2:14-17; 마 21:12-13). 죄를 미워하기에, 불의를 미워하기에 폭발하는 거룩한 분노를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내 자존심이 상함으로 인하여, 내가 받은 상처로 인하여 분노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믿는 자로서의 자긍심(self-esteem)은 말하고 있어도, 자존심(pride)이라는 말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귀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자존심을 가질 권한이 없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것은 그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을 때’뿐이며, 모두가 주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쓸데없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분을 품게 되지요. 22절에 "라가"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인들이 쓰던 방언인 아람어로 '비어있다(empty)'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머리가 텅빈, 골빈 놈'이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그렇게 부르면 공회에 잡히게 된다고 하였는데, 공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놈"이라는 헬라어의 뜻은 ‘마음이나 성품을 악하다, 바보, 멍청이 혹은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영어의 Moran 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둘 다 욕이지요.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하는 말입니다. 즉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하지 못하여 화를 품고, 비방하는 욕을 하면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죄는 그 사람을 살인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살인과 같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속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지옥의 심판이 있다 라는 강한 말씀을 주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사도 요한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고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미움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여러분들은 혹시 아닙니까? 아마도 스스로 ‘누구에게도 눈에 보이는 피해를,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실 살인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움이 가득차서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아닙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버젓이 살아 있음으로 인하여 내 행복에 방해가 되니까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요. 모두가 이기적인 자기(ego)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살인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바로 사탄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이성을 잃고 살인하는 것이지요. 마치 그리스도의 인격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불가능하듯이, 미움의 감정으로 가득차서 사탄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면 살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오래가면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은 마르고, 은혜는 사라져 영적으로 파멸에 이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탄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미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교제를 끊으신다고 하셨으니 그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화목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입니다. 문제는 그 미움이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사랑의 비슷한 점이 여기 있지요.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교양이 풍부한 사람도 그 미움이나 사랑의 감정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미워하는 마음의 뿌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재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화를 품고 욕을 하며,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게 됩니다.
   한편, 별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요.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갖고 있는 편견, 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또 미워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미워하는 것은 더 큰 죄로 몰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마음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보지 못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워하는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미워하는 마음, 생각 자체를 다 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미움을 사랑으로 대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니다.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악한 감정과 의지를 품고 있는지 보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말로 나타나게 되어 있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2세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너무 쉽게 ‘I hate you! I will kill you!’ 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도 우리 1세들은 웬만큼 화가 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표현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살인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똑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생명을 빼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영혼을 죽이는 경우도 곧 살인입니다. 만약 여러분 때문에 누군가가 주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하게 했다면 그것도 제 6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말과 행실 때문에 그만 실족하여 떨어져 나간다면 마찬가지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막 9:42)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사상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그의 십계명 강해에서 올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단 사상을 전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공감합니다.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야 하는데, 잘못된 신학 사상을 가지고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목사나 교사의 가장 큰 죄가 바른 성경관을 갖고 있지 않기에, 성경 말씀과 다른 자유주의 사상이나 이단 사상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목사나 교사 아래에 있는 양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가운데 누가 실제로 살인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죄의 성향 때문에 언제 어떻게 부패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생명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면 금방 미워하고 살인할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울분을 가라앉혀야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감격을 자주 되새겨야 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생명과 영혼만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영혼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과거에 그렇게 살지 못하고 쉽게 화내고 미워했다면 회개하시고 돌이키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마음과 생각을 고치게 합니다. 아무리 내게 잘못했다 하더라도 용서하게 하십니다. 아니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짓지 않고, 오히려 진짜 믿는 자답게 사랑하고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십계명의 요약이자 우리 삶의 대강령인,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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