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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4-07 (월) 21: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18    
[4/6/08] 영성이 있는 사람
영성이 있는 사람 (사도행전 18:19-28)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성 혹은 지성, 그리고 감성이 있습니다. 동물이 아니기에 생각할 수 있고,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갖고 있는 지식으로 나름대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감정이 있기에 때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정도 차이가 있어 그 표현이 약간씩 다를 뿐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더 표현을 많이 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 이성 혹은 지성이나 감성 만을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영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마무리되고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에 에베소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바울이 고린도에서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에 들렀다가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려던 도중에 겐그레아에서 일찍이 서원한 바가 있어 머리를 깎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감동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에베소에 잠시 들러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을 했습니다(19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더 오래 있기 원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들를 것이라고 말하고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거기에 두고 예루살렘 교회와 수리아 안디옥에 도착합니다(20-22절). 그리고는 얼마 있다가 3차 전도여행을 다시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차례로 다니며 제자들을 굳게 하였다고 합니다(23절). 양육을 시켰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사도 누가는 당시 에베소에 있던 한 인물에 대하여 24절 이하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볼로’라고 하는 학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지성인입니다. 이 사람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고 합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이자 로마 제국에서 아테네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나일강이 지중해와 만나는 북 아프리카 해변의 항구도시였습니다. 나일강 가의 엄청난 곡물을 수출하는 항구였고, 아테네의 대학교를 본 따 만든 큰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수학, 문학, 의학, 천문학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계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기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이 여기서 탄생했으며, 초대 교부들이었던 클레멘트, 오리겐, 아타나시우스 등이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인구들도 유대인, 헬라인, 이집트인들이 더불어 살면서 다른 도시와는 달리 유대인들이 헬라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었습니다. 아볼로가 이러한 알렉산드리아 출신답게, 오늘 성경에도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똑똑한 지성인이었다는 말입니다. 28절에 의하면 말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의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5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에 관하여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28절 상반절을 보면 25절 말씀은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저 회개를 선포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구약 성경을 많이 알고, 구약에 예언되어진 메시아에 대하여,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언자적, 종말론적 기대만을 알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지는 대속의 사역과 그에 입각한 기독론,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였던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설명을 드리자면, 물 세례만 알았지 성령 세례를 몰랐고, 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담고 있지만, 성령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에서 강론하던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을 이야기할 뿐 성령 세례에 대하여는 몰라서 가르치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19장 2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가르칠 때 그들 가운데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례 주는 것과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에는 저나 우 목사님께서 문답을 하면서, 받드시 예수님이 그리스도 임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즉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만 줍니다.

그러한 아볼로의 강론을 듣고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었다고 합니다(26절). 즉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이후의 성령 강림 사건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자 그러자 그제야 아볼로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아가야로 건너가서 거기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합니다(27절).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유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공중 앞에서 성경으로써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8절).
이제는 지성과 감성 뿐 아니라 영성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아는 것, 지식 중요합니다. 느끼는 것 감정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성이 없으면 사람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원래 하나님 창조 당시의 형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삶의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성과 감성을 겉치장이라고 한다면 영성은 알맹이입니다.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지혜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2:4-5).
사실 아는 것이 먼저 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 입니까? 처음 교회를 찾아 오실 때에 지도나 누가 약도를 가르쳐 주어서 오셨지 않습니까? 지도를 믿기에, 가르쳐준 약도가 맞다고 믿었기에 찾아 오셨고, 그 후로는 내가 교회 가는 길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까? 믿음이 있을 때 상대방이 우리에게 건내주는 지식은 우리의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약도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의심해야 하며, 그 지식이 주는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에게 공급해 주는 지식이나 경험은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 모든 것이 믿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 자체가 믿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건물, 의자, 은행, 메일, 음식점 등 다 여러분의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에게 그런 기본적인 믿음 외에 가장 필요한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 안에 지성과 감성과 함께, 죄성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만 영성을 소유하게 되면 믿음의 기준이 바뀌고, 의심의 대상이 달라질 뿐입니다.

이 인생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는 믿음을 가지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볼로를 보십시오. 아주 똑똑한 지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장막을 깁는 천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모습입니까? 사실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배우려고 하는 겸손한 자세로 잘 듣고 믿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안 배우려고 하지요. 자신이 다 아니까요.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도와주려고 할 때에 겸손히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겸손한 분입니다.
사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겸손하다면, 자신이 부족하고, 유한하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영성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겸손히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며,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성을 가지셨습니까?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이 구세주로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하였습니다. 저는 신비한 것만을 찾아 다니는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신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신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신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비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예배를 드릴 때에도 감격이 있고, 찬양을 드릴 때에도, 기도를 드릴 때에도 감격이 있어서 냉랭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뜨거운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이 영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려도 형식적일 뿐입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욱,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영성이 깊어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엡 5:18). 즉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십시오. 또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16, 25)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야, 아볼로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한 것처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어느 누구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아볼로처럼 겸손히 믿고 많이 배우십시오. 여러 훈련에 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머리만 커지면 안됩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손과 발로, 행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부디 영적인 사람들의 되십시오. 영성을 더욱 개발하고, 사모하며, 충만해 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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