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2,366
오늘방문 : 5765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1-07 (일) 10:50
분 류 주일설교
첨부#1 km_1_7.png (1,095KB) (Down:2)
ㆍ조회: 190    
끝까지 신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자 (딤후 4:6-8)



대부분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남기는 유언은 가식이 없는, 진솔한, 그 사람의 삶을 농축한 한 두 마디입니다. 유명한 나폴레옹은 1769년 52세에 임종을 맞이하면서, ‘내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나는 죽는구나. 내 몸은 땅으로 묻혀지고 벌레의 밥이 되겠지. 참으로 이 위대한 나폴레옹의 운명은 이렇게 속히 찾아왔구나’ 라고 했다고 합니다. 간디는 1869년 79세에 임종을 앞두고 ‘내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구나. 별로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길어야 1년 아니면 조금 더! 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자신을 절망의 늪에서 발견하는구나. 나의 모든 것은 어두움이다. 빛을 위하여 기도한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가까운 줄 알고,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서신의 끝 부분입니다. 이 바울의 마지막 유언과 나폴레옹이나 간디의 유언이 얼마나 다릅니까? 만약 여러분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면 가족들에게 무슨 말씀을 남기겠습니까? 아니 내일이, 혹은 다음 달이, 아니 올해가 여러분의 인생에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시작보다 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시작을 잘 했어도 끝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새해 첫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이 귀한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 모두가 올 한해를, 더 나아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울의 고백으로부터 배우고, 실천하기 원합니다.  

우선 바울은 지금 자신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6절)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디모데에게 왜 신실하게 사역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1-5절). 가까워지는 주님의 재림, 점점 심해지는 이 세상의 부패와 거짓, 이단 사상들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등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제 자신은 주께로 갈 때가 가까웠기에 디모데가 그 뒤를 이어야 했습니다.
여기 6절의 “관제(drink offering)” 혹은 개역개정의 ‘전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 제사를 드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 위에 포도주로 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번제단 위에서 제물이 타고 난 후에 포도주가 타는 향기가 진동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향기롭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제사 의식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자신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바쳐진 제물이었는데, 이제 마지막 남은 목숨을 드리는 시간, 순교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잘 죽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죽을 때 향기가 나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죽을 때 잘못 죽으면 평생 수고한 것이 다 헛것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거나, 두고 가는 이 세상 것들이 아까워서 죽을 때 추한 모습을 보이면 곤란합니다. 아마 여러분의 믿음의 참 모습이 그 때 드러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사람은 죽을 때의 모습에서 그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잘 죽으려면, 죽을 때 좋은 향기를 내려면 언제 죽어도 괜찮은 삶, 준비된 삶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1)고 하였고,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한 것처럼, 평소에 몸을 거룩한 산 제사, 온전한 번제물로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는, 오늘도 여러분의 몸을 주님께 드리는 영적 제사로, 번제물로 드린 인생입니까? 주님을 섬기고, 주위의 성도들을 섬기는 삶입니까? 잘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할렐루야!’ 입니다. 바울처럼 관제와 같이 주님께 부음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 첫 주일에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삶의 끝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인지 모르나 그 시간까지 신실하게 살아 바울처럼 평생 나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다는 고백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요약하기를 참으로 신실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7절) 라고 말입니다. 마치 마라톤 경주자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첫째, 선한 싸움(avgw/na, agony)을 싸웠다고 합니다. 그가 싸운 믿음의 싸움은 쉽지 않았습니다. 괴로운 싸움이었습니다. 이는 안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을 비롯해서(예- 롬 7장), 밖으로는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선수는 도중에 하차하고 싶은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주위에서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리하지 말라고, 그만 두라고 유혹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달리는 데 무엇인가 튀어나와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싸움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경주자에게 선한 싸움이기에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선한 결과가 있음을 알고 믿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영적 전투가 아닙니까? 정말 성경말씀대로 살려면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하고,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또는 외부의 핍박과 싸워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잘 싸우고 있습니까? 물론 매번 이길 수 없어 연약하여 때로 패배하여 쓰러질 때도 있지만, 다시 일어서서 싸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까? 여기 저기 전투로 인한 상처는 있어도 종종 승전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립니까?
둘째로, 자신이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경주를 잘 마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골인 지점까지 왔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견디어 냈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다 마치면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신실하게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무슨 일이든 신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끝까지 달려갈 길을 잘 마쳐야 합니다.
셋째로,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사실 이 한 마디는 앞에 두 가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린 것을 모두 집약하는 결론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믿음을 떠나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면 데마와 같은 사람입니다(10절). 오늘날도 믿음 생활 잘하는 것 같다가 곁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초한 바른 믿음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미래에 자신에게 주어질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말씀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이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님 만날 때에 받을 의의 면류관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마라톤 경기를 잘 마친 자들에게 면류관이 주어지듯이 말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할 때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어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게 되지만, 완전한 의는 주님 재림하셔서 우리의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될 때입니다. 지금은 불완전하더라도 믿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지만, 완전한 의의 상급은 주님 다시 만날 때입니다.
그 때에 특별히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성도들에게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많은 상급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영광의 시간을 바라보며 엄청난 핍박을, 외로움을 이겨냈습니다. 그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고린도교회에게 설명하기를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으며 3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3번 파선하는데 1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절하-27절)고 고백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다시 만날 천국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에, 그 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확신했기에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6-17) 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놀라운 상급은 바울뿐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주님의 오심을, 주님께서 천국으로 불러 주심을 그토록 기다립니까? 현재 아픔과 고통이 있는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저 북한 땅의 지하교인들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주님이 오늘 밤이라도 오시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이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분들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정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린 헌신의 번제물로, 영적 예배로 드리고 사십니까? 그리하여 만약 오늘 밤에 주님께서 오신다 하여도 번제물에 붓는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그 향기가 퍼지겠습니까?
과거의 삶을, 작년 한해를 돌이켜 볼 때 정말 선한 싸움을, 영적 전투를 잘 치렀으며 각자 주신 여러 가지 사명들을 잘 감당해 오셨습니까? 한 눈 팔지 않고 잘 달리고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셨습니까? 환난이 있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셨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2024년 새해에는 그렇게 사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주님께서 언제 오셔도 떳떳이 잘 만나실 것이 아닙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상)고 하였습니다.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방황하지 마십시오. 모든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내려놓고 달리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참고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끝까지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고 주님에게 충성하십시오.
마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데살전 4:1)고 권면한 것처럼,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할 것인가,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 쪽을 선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비록 고난이 있어도,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의 재림을, 주님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로서 의의 면류관을 비롯한 많은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들처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23) 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Football 경기를 보면, 선수들에게 코치가 묻는 것이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승리를 원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 적용을 하면 우리는 정말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어떻게 해서든지 끝을 잘 맺으려고 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영어에 ‘End with a high note’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늘 유종의 미를 생각하고 오늘을 살기 바랍니다. 끝까지 신실하십시오.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끝까지 달려갈 길을 잘 마치십시오.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울처럼 ‘난 정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다’ 라고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감격스러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달려갈 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는 저의 달려갈 길이, 여러분은 여러분이 달려갈 길이 아직 남았습니다. 어찌하든지 인내하십시오. 훗날 주님을 만나 칭찬을 듣고, 상을 받을 날이 옵니다. 이런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신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342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436
1367 수요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한태일 목사 2024-02-15 188
1366 주일설교 예수님의 마음은 (막 1:29-39) 관리자 2024-02-12 327
1365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막 1:21-28) 한태일 목사 2024-02-04 418
1364 수요설교 하나됨을 지켜라 (빌 2:1-4) 한태일 목사 2024-02-01 147
1363 주일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한태일 목사 2024-01-28 163
1362 주일설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한태일 목사 2024-01-21 186
1361 수요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2-30) 한태일 목사 2024-01-18 140
1360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한태일 목사 2024-01-14 152
1359 주일설교 끝까지 신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자 (딤후 4:6-8) 한태일 목사 2024-01-07 190
1358 수요설교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빌 1:19-21) 한태일 목사 2024-01-04 170
1357 송구영신예배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소서 (삼하 7:25-29) 한태일 목사 2024-01-02 189
1356 주일설교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 (빌 3:12-14) 관리자 2024-01-01 170
1355 주일설교 메시아의 탄생 (미 5:2-6) 한태일 목사 2023-12-24 167
1354 수요설교 예언된 평화의 왕이 오심 (사 11:1-9) 한태일 목사 2023-12-21 153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