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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7-16 (일) 10: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9    
진리에 행하는 자 (요이 1:1-6)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 변화된 새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마치 철들은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하듯이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믿는 자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절하)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지 아십니까?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자녀를 보고 부모가 자랑스러워 하고 기뻐하듯이,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진리에 행할 때입니다(4절).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와 마찬가지로 주후 90년 이후에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쓰여진 1장으로 된 짧은 성경으로,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거짓교사들에 관하여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베드로처럼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합니다(1절; 벧전 5:1). 당시 11사도는 다 순교를 했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아마 80대 후반 혹은 90대 노인으로서 사도직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1절) 라고 하였듯이,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택함을 받는 부녀(부인, Lady)와 그 자녀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합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이 잘 아는 남편을 잃은 부인과 자녀들을 생각하고 쓴 것입니다. 많은 개혁주의 신약학자들이 이를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한 것을 보면, 요한이 이 부인의 자매가 에베소교회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동일하게 택함을 받은 우리들에게 적용을 할 수 있는 말씀으로, 요한이 이 부인의 가정을 혹은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가 사랑하는 이유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2절)고 한 것입니다. 즉 진리가 그들 안에 거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1절에도, 2절, 3절, 4절에서도 말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에서 말하는 객관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요 14:6).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전인격적으로 믿는 자가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안에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진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4-6절). 얼마든지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 말씀이 예수님입니다(요 1:1, 14).
그래서 요한은 이 서신 서두의 문안 인사를,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3절)고 한 것입니다. “은혜(grace)”는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 혹은 호의(favor)를 말합니다. “긍휼(mercy)”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자비(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런 은혜와 긍휼을 바탕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평강(peace)”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즉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 안에서 나타났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는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4절)라고 합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이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니 심히 기쁘다고 합니다. 거짓교사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명을 지키며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들을 기특하게 여긴 것입니다. 사실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진리에 행하는,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요일 1:7). 삶이 진리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빛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원래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며 살던 사람들이 변하여 예수님에게 속한 자로, 그 분의 소유, 종이 되었음을 자랑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 구원(구속)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그 분에 뜻에 따라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달라진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과 동행하며,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강조한 ‘사랑’을 또 말합니다. 진리에 행한다면 사랑하게 되어 있으니 사랑하며 살라고 합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5절)고 합니다. 이미 60여년 전에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말씀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주어진 의무가, 지켜야 할 계명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이기에, 처음에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성령이 임하셔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5:5).
끝으로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6절)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진리 가운데 행하는 자들입니다. 사실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1-2절상)고 하였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니라”(엡 4:15)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를 엄청 박해한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에 핍박이 심했던 남부 빈 지역에 사는 상투스(Sanctus) 집사에 대한 기록이 교회사에 나옵니다.  그는 심한 고문과 심문을 받으면서 항상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는 한마디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 이름도, 자기 민족도, 자기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노예인지 자유인인지도 밝히지 않고, 다만 모든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문하는 사람들을 더욱 화가 나게 했고, 결국 화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자신의 고백을 지키다가 불에 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순교한 것입니다. 즉, 그는 ‘나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에게 속한 종입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복음이, 진리와 사랑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복음이, 진리와 사랑이 아닙니까? 알고는 있지만 우리의 삶에 복음의 능력이, 진리와 사랑이 드러나지 않으면 머리로만 아는 지식일 뿐입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요한일서에서 계속 강조한 산 지식, 경험적인 앎이라면 반드시 삶에서 복음의 능력이, 진리와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자신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가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는 진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고 심히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Walk in truth!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처음 복음을 받아들일 때부터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Walk in love! 그것이 바로 진리로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리와 사랑은 언제나 함께 갑니다. 진리대로 행한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진리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 자매, 이웃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이요(마 22:37-40),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 안에 행하는 자들이 이루는 공동체에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우화를 들어 보셨나요? 옛날 옛적에 작은 연못 안에 개구리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이 개구리 두 마리는 날마다 물고 뜯고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계속 서로를 미워하며 원망하던 어느 날 개구리 한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남은 개구리는 이제 보기도 싫은 그 개구리를 안 봐도 되니 이제는 내 세상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자 그 죽은 개구리 때문에 연못이 썩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그 죽은 개구리 때문에 살아 있는 개구리 역시 썩은 물에서 죽고 말았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가인과 아벨의 예를 들며 미움이 곧 살인이라고 한 말씀이 생각납니다(요일 3:15).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형제와 자매가 되었는데 미워해서 되겠습니까? 진리에 행한다면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에 행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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