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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3-12 (일) 08:2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37    
신앙양심에 의한 거룩한 열망 (요일 3:19-24)


3월 8일자 미주 기독일보에 난 기사를 소개합니다. ‘지난 2월 8일 켄터키주 애즈베리 대학교(Asbury University) 강당에서 있었던 채플 후 기도 모임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학교 채플을 마치고 선포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품고 기도하던 19명의 학생들이 강력한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18일간의 연속 집회!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그들은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이를 듣고 달려온 학생들과 교수들에 의해 찬양과 기도, 간증의 시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500석의 강당은 가득 찼고, 소식을 듣고 미국은 물론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8 ~ 9시간 기다리며 기도회에 동참했다. 인파가 몰려 강당이 차고 넘치자 길 건너 애즈베리 신학대학원 채플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기도 모임이 생겼고 비상한 집회가 계속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학사 운영의 마비와 안전사고를 우려한 학교 당국은 2월 24일 채플을 마지막으로 연속 집회를 마감한다고 선언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부흥의 불길이 많은 대학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애즈베리 부흥의 현장을 방문한 200여 개 미국 대학 캠퍼스 사역자들과 학생 대표들은 각 대학교에서 기도, 찬양, 간증 그리고 말씀이 어우러진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바이블 벨트라고 불리는 미동남부 텍사스, 테네시, 앨라배마 그리고 루이지애나 주의 등의 기독교 명문 대학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고 있음이 주목할 만하다.’
정말 이 미국 땅에 오랜만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부흥의 손길입니다. 바이블벨트에만 아니라, 미국 전 지역에 퍼지기를 바라며, 우리 교회에도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길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흥의 시작은 회개운동입니다. 1907년 평양의 대부흥이나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한 제1차 미국 대각성 부흥도 성도들의 회개로 시작하였습니다. 신앙양심에 의한 거룩한 열망(affections)이 그들의 심령에 불타오른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우리 마음이 바로 신앙양심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면서 타락했던 우리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책망하여 회개하게 하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3장 10-18절에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마귀의 자녀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즉 구체적으로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19-20절)라고 합니다.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믿는 자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 문단의 말씀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사랑하고 살면 우리 마음, 양심을 굳세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굳세게 한다’는 단어는 확신을 뜻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 양심에 찔려 고통 당할 때가 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붙들어야 할 말씀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고 하신 말씀과,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고 하신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결코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21-22절)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게 되면 죄 사함의 확신이 있으니 자동적으로 기도응답의 확신도 생기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22절에서 말씀하시듯이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3절)고 한 것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다면 가장 큰 계명을 지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John Stott 목사님은 그의 요한서신서 주석에서 이 구절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 요한은 우리가 신앙양심이 거리낄 것이 없다는 주관적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기도 응답을 해주신다기 보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 분이 기뻐하시는 계명을 지킨다는 객관적인 내용 때문이다. 순종은 기도 응답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도 응답을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회개함으로 거룩한 열망이 일어나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담대히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끝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계명들을 지킬 수 있고, 주님 안에 거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24절)!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신 약속이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주님 안에 거한다는 축복을 말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확신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수 있고, 그리하여 성령님이 우리가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확증해줍니다.
사실 서론에 언급한대로 우리의 신앙양심이 우리를 찔러 회개하게 하는 것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요, 거룩한 열망으로 사랑하게 하는 것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요, 그리하여 담대하게 무엇이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확신도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부흥이 필요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이 계십니까? 믿는 사람이라고 항상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때로 염려와 근심으로 영적인 침체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계셔도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은 상태입니다. 아니 고통이 너무 심하여 견딜 수 없는 절망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혼자서 바알 선지자 450명, 그리고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그를 죽이고자 달려들 때에 두려움에 싸여 절망하며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했던 적이 있습니다(왕상 19:4). 사도 바울도 종종 견딜 수 없는 절망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갔을 때 전도의 문이 열렸지만 침체를 이기지 못해 전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이 디도를 만나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다고 고백합니다(고후 2:12-13). 마르틴 루터도 종교개혁의 불을 당겼지만, 로마 천주교회의 핍박이 너무 심해서 아예 두문불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의 공격이 심할 때 영적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 거장들도 그럴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또한, 엄청난 죄를 짓고 나서 혹은 반복되는 죄로 말미암아 신앙양심이 찌를 때에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혹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침체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육체적인 어려움이 속히 해결되지 않고 오래 지속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너무 육체적으로 피곤하여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도 영적침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심령의 부흥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선 신앙양심이 작동하여 회개하게 할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부흥(revival)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열망이 솟아오를 때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며, 성령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다시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성령님의 은혜로 사랑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양심이 진리 편에 속하여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하실 것입니다. 혹이라도 양심이 책망하게 되면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부흥의 첫 단추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죄 사함의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반드시 기도 응답을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주신 계명을 따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확증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신앙양심에 의한 거룩한 열망을 따라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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