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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2-06 (금) 01:2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91    
모세의 축복(신 33:1-5)
우리 교인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축복’입니다. 원래 ‘축복(祝福)’에 의미는 ‘복을 빌다’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빌어줄 때 ‘축복합니다(Bless You)!’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번역이 되었고,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도 그렇고 보통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빌어주는 분이 아니지요.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축복해 주세요’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고, 복을 줄여서 축복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성경을 바로 아는 분들은, 또 단어의 의미를 바로 알고 사용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바로 33장 전체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백성들에게, 각 지파에게 이렇게 복을 달라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는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요, 하나님은 그들의 사랑의 아버지가, 사랑의 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 모두를 축복하고, 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모세는 멋진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유아기에는 애굽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이 되어 궁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는 거기서 뛰쳐나와 자기 민족이 노예로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을 아파했는데, 학대를 당하는 것을 보고 성질을 부려 그만 애굽인을 죽이고 무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께 훈련을 받고,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며 그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하여 출애굽을 하게 하고, 또 40년을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앞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가데스 므리바에서 반석을 치는 바람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에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음껏 축복합니다. 마치 야곱이 죽기 전에 그의 열한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창 49장)과 비슷합니다. 다른 것은 야곱의 마지막 기도에는 축복보다는 저주의 내용이 많이 있었지만, 모세는 축복만 합니다. 그렇게 40년 동안 자신의 속을 썩힌 백성들이건만 참으로 온유한 사람처럼 복을 빌어줍니다. 그래서 1절에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표현하였고, 다른 성경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주위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온유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나를 속 썩이는, 원수 같은 사람들도 축복해 주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복 주시고, 그 사람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바울 사도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으니까요.

   모세가 마음껏 그 백성들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가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복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들은 확실하고 분명한 것입니다.
   33장의 모세의 축복은 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2-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시내산, 세일산, 바란산은 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찾아오신 장소를 말합니다. 먼저 시내산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강림하신 곳입니다. 세일산과 바란산은 에돔 지역에 있는 산들인데 광야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도우셨던 곳입니다. 특히 광야를 행진할 때 낮에는 너무 더워서 구름 기둥을 주실 때에만 움직이고, 밤에 주로 불기둥과 함께 움직였는데 아침에 세일산이나 바란산과 같은 그런 높은 산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그 백성들이 밤 사이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사이에 강림하신 이유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3절상).
   이렇게 우리도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시고 지켜주셨는지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조금도 없지 않습니까? 뭐 그리 내 놓을게 있습니까? 더러운 죄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되어져 온 일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렘 31:3)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라고 하였습니다.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내 삶에 대하여는 아무 염려를 하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그 오른손에 불 같은 율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불 같은 율법일까요? 원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신 4:11, 24; 5:22; 히 12:18-21).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율법을 주신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진노의 불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진노의 불을 복으로 바꿀 수 있는 은혜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자꾸 모여서 불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깊은 죄를 깨닫고 애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불 같은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복을 받고, 이 세상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수중 아래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붙들리기만 하면 어떤 사탄 마귀의 공격도 막아내고 오히려 승리하게 됩니다.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드릴 때 바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복을 받는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을 따라갔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달콤하게 하는 축복의 내용보다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이 더 많아서 멀리 한 것 같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잔소리로 알아듣고, 듣기 싫어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축복하는 내용도 율법이었습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4-5절)라고 하였습니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왕은 물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율법이라고 다 죄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축복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2013년도 12월을 맞기까지 걸음마다 얼마나 사랑으로, 은혜로 인도하셨습니까? 아니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과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 축복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며 살고, 말씀을 전하고 살고,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우리들처럼 변화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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