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6,058,258
오늘방문 : 9776
어제방문 : 18029
전체글등록 : 3,892
오늘글등록 : 1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0-06 (월) 10:0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22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롬 1:1)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아주 귀한 선물, 그 엄청난 복의 가치를 모를 때 그 인생은 불행한 것입니다. 가정, 건강, 생명 등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없어도 되는 것 같으면 괜찮겠는데,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하고도 아주 중요한 것이라면 정말 심각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정말 중요한 책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로마서라고 할 것입니다. 66권 모두가 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책들이지만 말입니다. 이유는 로마서는 인간에 대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로마서가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를 방문해서 머무는 동안, 즉 주후 56년말-57년 초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행 중에 로마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이유는 로마가 당시에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였고 세계 선교를 위하여 전진기지로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기에, 로마를 거쳐 당시 세상 끝으로 여겼던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롬 15:24, 28). 하지만 3차 전도여행은 주후 57년 말-58년 초에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마게도냐 교회들의 연보를 전달하기 원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책략을 알아냄으로 로마로 가지 못하고 밀레도에서 고스, 로도, 바다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됩니다(행 21:1). 물론 나중에 로마에 가게 되지만, 그 길은 그가 예상했던 전도여행이 아닌 죄수로 쇠사슬에 묶여 재판을 받기 위하여 가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할 때 로마에서 온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세례를 받고 로마로 돌아와서 세웠을 것입니다(행 2:10). 그 이후에 바울이 세운 마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 가운데 로마에 이사를 와서 이 교회를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도들이 세운 교회가 아니며,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섞여 있던 교회이기에 바울은 서신을 쓸 필요성을 느꼈던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해야 했고, 모든 사람이 죄인인데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구원 받은 신자들의 삶에서 어떤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지 그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또한 왜 바울이 로마는 물론이고 스페인을 비롯한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그의 사명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약속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9-11장). 그래서 하나님의 의, 죄의 실상, 인간의 타락, 율법과 은혜, 육체와 성령, 하나님의 주권, 구속 계획에서의 이스라엘의 위치,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삶과 사랑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못할 것이며,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갈등이 생겨 교회가 분열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로마서의 서론(1-7절) 중 첫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인데 바울은 우선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로 대부분의 바울 서신은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문안 인사로 시작되는데, 로마서에서는 7절에 가야 인사가 나옵니다. 이유는 그들이 바울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에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종(slave)”이라는 것은 주인에게 속한 노예를 뜻합니다. 그 배경은 구약 성경에서 일정기간(6년)의 의무적인 종살이를 마친 후, 자원해서 주인과 함께 머물 것을 택한 종을 의미합니다(출 21:5-6; 신 15:12-17). 주인은 자원하는 종의 귀를 송곳으로 뚫었습니다. 이는 종이 영원히 주인의 소유임을 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이 시키는 것을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 때문에 자원하여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않겠나이다”(신 15:16)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인구 거의 대부분이 가장 낮은 노예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예들은 자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 자신이 자유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예수께 기꺼이 복종하는 노예라고 하니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겠습니까? 헌데 구약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은 거의 다 주의 종으로 불렸습니다. 아브라함(창 26:24), 모세(민 12:7-8), 다윗(삼하 7:5, 8), 그리고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사 20:3; 암 3:7)은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종이 아닙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고전 12:3)?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종, 노예가 아닙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주님께 우리 모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자원하여 ‘제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 때에 고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의지합니다’ 하면서, 눈과 눈을 맞대고 만나볼 그 날까지 내 맘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둘째로,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도(apostle)”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12제자가 사도가 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12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행 9장, 22장; 롬 11:13).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서 옥에 가두도록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고자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탄, 마귀의 포로된 자들을 풀어주고, 죄의 권세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눅 4:18-29).
즉 누구에 의하여 보냄을 받았느냐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정해집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도는 아니지만, 명저 ‘평신도를 깨운다’의 고 옥한흠 목사님의 말씀처럼 사도직을 계승 받은 주님의 제자들이 아닙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이미 여러분의 가정에, 직장에, 사업체에, 학교에, 교회에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제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진실로 믿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즉 성도들은 내가 있는 자리가 주님의 뜻에 의하여 보내진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그 길에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보내심을 받아 맡겨준 사명을 반드시 성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냥 우리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택정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우리 말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함을 받았다는 뜻이지만, 원어에 의하면 구별되어 드려졌다는 제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기 위하여 구별해 놓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될 때까지는 다른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만족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야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택정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믿음 때문에 이 세상에서 손해 본 것에 대하여 너무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께 택정함을 입은 자라고 소개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목적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 되고 보니 종이 감당해야 할 근본적인 일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함이요, 택정함을 입은 이유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서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우리 인간들에게 말 그대로 좋은 소식이요,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을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위대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종이요, 부르심을 받은 자요, 택정함을 입어 구별된 자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존재 목적은 분명히 하나님의 복음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이 세상의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영생의 소망이 주어졌기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며, 하나님의 일이 내 일이 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나도 기뻐하는 일이 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아직 죄성을 갖고 있기에, 죄의 욕망이 때로 솟구쳐 오를 수 있습니다. 전혀 죄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드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자체가 기적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으로 가득찬 삶만큼 생기가 넘치고 역동적인 것은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한다는 것만큼 행복한 삶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이유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은 힘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참아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삽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을 믿으십니까?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처럼 주님의 종이요, 부르심을 받은 자며, 택정함을 입은 자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요, 선물인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자원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이요, 복된 삶이요, 남는 삶이요, 훗날 크신 영광을 누리게 될 삶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09 주일설교 아담의 범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롬 5:12-21) 한태일 목사 2015-03-23 1633
608 주일설교 믿음을 알고 있습니까? (창12:1-4) 김성곤 목사 2015-08-07 1632
607 주일설교 세상적인 신자입니까?(고전 3:1-9) 한태일 목사 2012-08-13 1632
606 수요설교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롬 12:1-2) 한태일 목사 2014-05-29 1631
605 주일설교 죽음과 그 이후(시 49:12-20) 한태일 목사 2014-04-21 1629
604 수요설교 심판 중에 구원(수 6:15-27) 한태일 목사 2014-07-25 1628
603 주일설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고후 5:1-10) 한태일 목사 2014-02-17 1628
602 수요설교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후(계 1:9-20) 한태일 목사 2015-05-21 1625
601 수요설교 피난처 되시니(수 20:1-9) 한태일 목사 2014-12-05 1625
600 주일설교 성경적인 연보(고후 8:1-8) 한태일 목사 2014-04-28 1625
599 수요설교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신 16:18-22) 한태일 목사 2012-04-19 1625
598 주일설교 양심의 개혁(히 9:1-14) 한태일 목사 2017-11-27 1624
597 주일설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고후 11:21-33) 한태일 목사 2014-08-11 1624
596 수요설교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수 23:1-16) 한태일 목사 2015-01-15 1623
595 주일설교 참 목자와 거짓 목자(고후 11:7-20) 한태일 목사 2014-08-04 1623
594 수요설교 하나님의 작전 지시(수 6:1-14) 한태일 목사 2014-07-10 1623
1,,,4142434445464748495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