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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8-11 (월) 10:4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11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고후 11:21-33)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북한 땅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중동 지역의 모슬렘 권에 사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하는 그런 엄청난 고난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이 세상에 사는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반드시 어떤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고, 이어서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우리 성도들 가운데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형제들 때문에 고난을 받는 분이 있다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주님의 일꾼이기에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등장한 거짓 사도들이 그들의 외모를 자랑하자, 자신의 약함을, 어리석음을 용서하라고 하면서 자신도 담대히 몇 가지 자랑하겠다고 합니다(21절). 아마도 유대주의자들로서 바울을 대적하던 그들이 자랑한 것이 자신들은 히브리인라고, 이스라엘인이라고, 즉 선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출신 성분을 이야기했다면 바울도 그렇다고 합니다(22절). 오늘도 그렇지만 당시에 유대인들 가운데 팔레스틴의 정통 유대인들, 유대 문화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헬라 이방 문화를 받아들이고 조금 자유적인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팔레스틴 정통 유대인들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바울도 사실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 3:5)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당대 가장 유명한 유대교 석학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 가지고 따지자면 거짓 사도들 보다 바울이 더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도 한 때는 이런 외적인 것을 자랑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빌 3:8).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는 그렇게 화려한 이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그런 외적인 자랑거리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이 있었기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유대주의 거짓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자화자찬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흥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23절상) 라고 주장하며, 정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더욱 말이 안되는 것은 바울이 받은 그 많은 고난은 그런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신 없는 말이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그런 자랑을 버렸어야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광명의 천사처럼 다가오지만 실제로는 유대주의를 퍼뜨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핍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3절 하반절부터 27절까지 보면서 우리가 놀라는 것은, 바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빌립보에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채찍에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행 16:23), 그는 매도 수없이 맞았는데 유대 율법에 의하여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차례 맞았다고 합니다(신 25:3).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을 태장, 즉 쇠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행 16:22), 유대인들의 충동으로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행 14:19). 또한 선교 여행 중에 배가 파선하여 일 주일 동안을 깊음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깊은 웅덩이 같은 곳에 갇혀 지낸 것을 말합니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지요.
그리고, “여러 번의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26-27절)고 하였습니다. 선교 여행 중에 유대인들에게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가는 곳곳에서 위험을 당하며 순간순간 고비를 넘겼는데, 얼마나 수고를 하였으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을 것이나 마실 물도 없이 굶으며, 춥게 지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주님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당시에 바울이 당한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 땅에서 고생하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사실 바울은 맨 처음 주님을 만난 직후부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다메섹에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32-33절)고 하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나 눈이 멀게 됩니다. 다메섹으로 끌려가서 며칠을 그런 상태에 있다가 주님 말씀대로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안수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간 있게 됩니다. 삼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하면서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혹자는 그가 아라비아 사막에서 삼 년을 지낸 것이 아니라 그 부근에 있던 나바티아 공화국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다메섹은 나바티아 공화국의 아레다 왕의 지배아래 있었고, 그의 방백은 유대인이었다고 추측합니다. 즉 다시 다메섹에 돌아온 바울은 아레다 왕의 방백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한다는 계획을 눈치 채고는 성벽에 광주리를 내려 그곳을 탈출하게 됩니다(행 9:24-25). 이 때부터 바울은 유대인들의 추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유대교의 열심 당원으로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주의를 넘어서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외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유대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결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무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길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고생한 일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유대교의 거짓 사도들의 실체를 밝혀내어 고린도교인들이 더 이상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이라면 적어도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체험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끝까지 견디어 낸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으로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28절)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수많은 고난은 고사하고, 오히려 바울에게 짐이 되는 것은 자신이 개척해 놓은 교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항상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교회들이 사탄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고 있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러 교회에게 서신을 쓴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막 믿게 된 초신자들이야 자기 신앙만 잘 지켜도 대단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을 잘 감당해도 주위에서 칭찬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좀 자라면 주님의 몸인 교회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전체를 살피면서, 약한 지체들이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며 찾아가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복이 되는 것을 보면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와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교회 안에 어떤 문제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우려고 합니다.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섬김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애쓰게 됩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수고를 많이 했으면 수고한 대가를 받고 싶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고,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못하면 섭섭함이 마음을 지배하여서 침체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이전에는 정말 순수하게 주님만을 위하여 일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했는데, 왜 내가 이럴까’ 하면서 말입니다. 바울이라고 그런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고난을 참고 이겨내면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주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니 육체적으로 연약한 부분이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겸손히 주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고후 12:7-9). 그래서 그만큼 고생하고 수고했으면 자만해질 수 있었고, 좀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만 그는 겸손히 끝까지 주어진 길을 힘써 달렸습니다.
바울이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29-30절)고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남들보다 우월한 장점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점을 자랑하고 살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것, 많이 배운 것,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 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에는 그런 자랑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주위의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주님을 만나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약하면 나도 약해져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아픔을 당한 사람을 정말 잘 이해하려면 그와 비슷한 아픔을 당해 보아야 합니다. 실족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그렇게 실족한 사람이 잘 이해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는 연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연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얻습니다.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외적인 것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자기 잘 난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자랑을 듣는 사람은 뭐가 됩니까?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추함을 자랑할 것입니다. 부족함을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자신의 부족함, 연약함을 말하면서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싶어 서로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증거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줄 알고 말하기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31절)고 단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인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은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훗날 주님을 만날 때에는 큰 위로와 함께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십여 년 전에 우리 교회를 다녀간 연변과기대, 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이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 지하 교회 형제들이 예배를 시작할 때 외우는 결의문을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전사들의 수칙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표어는 “예수로 혁명화하자!”(딤전 1:12) 이며, ‘1) 예수 믿는 사람은 천대 받게 되어 있다. 그것이 긍지요, 기쁨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요 승리이다. 2) 칭찬 받는 것보다 욕 먹는 것을 먼저 배워라. 3)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인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 눈물을 닦아 주며 주위의 모든 고통 당하는 자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4) 사랑이 사랑을 낳고 또 그 사랑이 새로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전사로 만들어야 한다. 5) 성경이라는 잣대로 제일 먼저 살아가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풍성한 미국에서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은 너무 편안하게, 안이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그렇다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 고통이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변장된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혹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 자로서 무엇에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삶으로 정직하게 살면 반드시 손해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다르게 산다면 따돌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과 합류하지 않으면 조롱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혹은 십자가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임을 잘 깨닫고 있어서 주위에 믿지 않는 분들에게 전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한번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에 반드시 사탄, 마귀가 방해하기 때문에 어렵게 합니다. 힘들게 합니다.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애정이 있는지요? 형제, 자매들의 고충을 알고 있는지요? 상한 심령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는지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 전체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알고, 주님 뜻 안에서 염려하며 애쓰고 수고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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