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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8-19 (월) 11: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10    
사망을 이기고(고전 15:50-58)


George Washington 대통령과 함께 미국 건국에 큰 도움을 준 유명한 청교도 Benjamin Franklin 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묘비명(epitaph)에 들어갈 글을 미리 써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 한 ‘그리스도의 교회’ 묘지에 가면 그의 무덤 앞에 그 묘비명이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여기 Franklin 의 시신은 마치 오래된 책의 겉장처럼 낡아지고 벌레의 먹이가 되어 누워있겠지만, 그의 업적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지은 이가 잘 고쳐서 새로운 몸으로, 더 영광스러운 몸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서신서 가운데 가장 긴 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의 소망의 메시지를 바로 그가 묘비명에 쓴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1-11절), 그리고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12-19절), 그러나 육체의 부활은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말씀하였고(20-28절), 그 부활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는 유익함과(29-34절), 보다 자세한 육체의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한 후(35-49절), 오늘 본문 마지막 문단에서 결론을 짓기를, 우리 믿는 자들은 결국 사망을 이기고 우리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니 승전가를 부르면서 흔들리지 말고 더욱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치 Handel 의 ‘메시아’나 Brahms 의 ‘라퀴엠’의 찬양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바울은 우리 육신의 몸이 놀랍게 변화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몸이 변화를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먼저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절)고 합니다. 이 죄성을 가진 혈육, 썩어져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 몸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나라, 눈물과 슬픔이 없는 나라에 이 죄성의 육체가 그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때가 되면, 주님 재림하시면 한 순간에 영광의 몸으로 변하여져서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1-53절)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알 수가 없는 비밀스러운 일인데, 우리가 다 잠자는 것처럼 죽어서 마냥 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 재림하실 때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몸이 변화를 받아서 다시는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죽지 않는 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잔다고 표현한 것은 다시 깰 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때 살아있는 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재림의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아마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에녹이나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변화 받았던 그런 몸이 되어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전 4:16-17)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재림에 확실성에 대하여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이 죽으신 후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 있을 때에 천사들이 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산 사람은 그 날이 완전히 망하는 날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나는 순간 ‘동작 그만’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둘째 사망이 그들을 맞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된 사람은 눈과 눈으로 주님을 영접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 믿는 자들은 그 날을 사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바울은 주님 재림하실 때 이렇게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하는 것은 사망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4-55절)라고, 이사야 25:8절과 호세아 13:1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이 성취된다고 합니다. 그 때는 사망을 완전히 이기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죄성을 가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사망 권세를, 사탄 마귀를 완전히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 마귀의 머리를 치셨으나 아직 꼬리는 남겨 두셨습니다. 불을 다 끄지 않고 불씨를 좀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고자 잠시 그들이 권세를 가지고 휘두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라”(56절)고 하였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우리에게 왔지요(롬 5:12). 그리고 율법이 우리에게 죄를 가르쳐 주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롬 4:15).
   사실 모든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망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이 많고, 건강하고, 유명하고, 권력이 있어도 사망을 이기는 자는 없습니다. 죽지 않고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사망의 그림자가 한번 임하면, 사망의 화살에 쏘이면 여지없이 무력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죽음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히 죽은 후의 세계를 믿지 못합니다.
   헌데 사망이 무엇입니까? 인간에게서 육체를 빼앗는 것입니다. 부활의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사망이 모든 인간의 육체를 붙들어 두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도 육체 없이 하나님 앞에 영으로 안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이 패하게 될 때 모든 성도들의 몸은 부활하여 새로운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얼마든지 소리칠 수 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육체를 죽이는 것 밖에 더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망이 절대로 나를 쏘지 못합니다. 사망이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절) 라고 하면서 찬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우리 앞에 완전한 승리의 그 날이 있으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58절)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서도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거나, 아니면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처럼 우리 주님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생각하면서 흔들려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이단들처럼 아예 생활을 접고 그저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만 하려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권면합니다. 우리 앞에 그런 놀라운 영광의 날이 있으니,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가거나,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 이 세상 삶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더군다나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해서 흔들리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라는 두 단어는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며, 굳게 서서’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좀 힘들다고 해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본분, 위치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고 책임을 감당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사탄 마귀가 조금만 시험해도 그냥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시 주님을 만날 날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그 날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견고히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다 아시고 계시며, 보시고 계십니다. 다 계수하고 계십니다. 참고 인내하며 계속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주의 일에 힘썼던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오늘도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과 정력과 재능과 은사들을 사용하여서,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서 열심을 내셔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주,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많이 쓰임을 받은 사람이 큰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코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서로 사랑하는 장성한 남녀가 한 몸이 되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며 결혼 날짜를 정해 놓으면 그 때부터 그 남녀는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결혼 예식을 할 장소를 정해야 하고, 어디서 살 것인지 정해야 하고, 신혼 집에 필요한 살림도 장만하고, 예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신랑보다는 신부가 될 처녀가 훨씬 더 바쁘지요. 아니 무엇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결혼이 무엇이고,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가며, 앞으로 가정을 잘 세우려면 주례할 목사님과 미리 상담을 통하여 배우며 준비합니다. 그러다가 막상 결혼일이 되면, 특히 신부는 많은 축하객들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여 그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예식을 하게 되면, 그 동안 준비하느라고 어려웠던 것 모두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영광의 출발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신혼을 맞이하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결혼이 좋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자유를 누리면서 아무리 재미있게 산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나면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도 완전히 달라 보이지요. 노총각, 노처녀로 혼자 살 때에는 늙어 보여도 결혼을 하고 나면 다시 젊어집니다. 결혼 전에 좀 불안정해 보이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던 그들이 영 다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하루 하루를 기다리는 신부와 같습니다. 우리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날을 성경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계 19:9) 날이라고 비유합니다. 물론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우리들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영적으로는 하나가 되었으나 실제적인 혼인잔치, 즉 주님과의 결혼 예식을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전한 완성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의 예식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비밀스러운 결혼식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본 어떤 결혼식보다도 더 성대한 잔치가 될 것입니다. 모든 천사들이 다 동원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죄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완전히 거룩해집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죄인들은 영원히 심판을 받기 위하여 지옥에서 천국잔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그 날이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양과 혼인잔치를 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7-38절상)고 하였습니다.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재림을 좀 늦추시는 이유는, 여러분들을 오늘 당장 데려가시지 않는 이유는 좀 더 잘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생활 가운데 거룩한 삶을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음란하지 않고, 더럽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미리 승전가를 부르고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시간을 좀 더 줄 테니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그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십시오. 나중에 일 할 수 없는 처지에서 후회하지 마시고, 아직 이만큼이라도 건강하여 일할 수 있을 때에 충성을 다하여 수고하십시오.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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