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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1-07 (금) 01:4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522    
저주 받은 자와 은혜 받은 자
제가 종종 받는 성경에 관한 질문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이 ‘왜 하나님이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질문이 ‘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셔서 모세와 그 백성을 끝까지 보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출 7-11장). 사실 첫 번째 질문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결코 끝까지 믿지 않을 사람이기에 택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믿을 사람이기에 미리 아시고 택하셨다(예지예정론)’을 말하는데 사실 우리 인간 편에서 생각할 때에 그렇게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완전한 정답은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문제가 자꾸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와 동등하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유한하고 제한된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한하고 전지전능한 분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런 엄청난 차이를 인정하고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면 그냥 믿을 뿐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번역상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해서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문맥을 잘 살펴보면, 바로의 마음이 원래 강퍅한데 하나님께서 강퍅한 그대로 두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로보트를 다루듯이 인간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정의가 뚜렷하게 있도록 창조하시고, 인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 선택할 수 있는 의지도 주셨습니다. 억지로 주장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을 거의 다 정복한 것에 대해 요약을 해 놓은 것입니다만, 본문 20절에서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기브온 족속 히위 사람들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미리 항복을 함으로 화친하게 되었을 뿐(19절),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은 교만하여 스스로 강퍅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려고 했고, 멸망한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저주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스스로 항복하기를, 회개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워낙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에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킬 마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즉 기브온 히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회개할 마음을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회개할 마음을 허락하셨기에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기브온 족속 히위 사람들이 다른 족속들보다 좀 나아서, 착해서 그런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전혀 자격이 없는데 허락해 주시니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지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하신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었을 뿐입니다. 이 진리가 사실 하나님 사랑의 핵심입니다. 도무지 항거할 수 없는 은혜, 반항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 편에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부릅니다. 물론 아무리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워낙 마음이 악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원래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받아 들이기를 싫어하며 오히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마저 혐오하면서 핍박하여 감옥에 집어넣거나 죽이는 일에 앞장 섰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런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셔서 은혜로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로 코너에 몰아넣으셔서 항복하고 돌이킨 것이 아니었습니까?
   또,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도 처음에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되고 믿어, 그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행 16:14-1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죄와 허물로 죽었었는데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엡 2:1).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하게 되고, 믿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먹었느냐고 물으셨지, 먼저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뱀(사탄)에게 야단을 치시며 이르시기를,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4하-1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려고 여자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또한 성경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구절도,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1) 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즉 신구약 성경 66권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볼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온 산지와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또 그 성읍들을 진멸했는데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약간 남겨둔 것입니다(21-22절). 아낙 자손들은 워낙 거인들로 유명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 정탐꾼을 보냈을 때 10명은 이 아낙 자손이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거인들임을 보고 겁을 먹고는 절망적인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민 13:28). 즉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멸했지만, 가사와 가드, 아스돗 즉 블레셋 땅에 남겨둔 것이 화근이 되어 나중에 괴롭힙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 시대에 이 아낙 자손의 후손 골리앗이 하나님을 훼방하며 이스라엘을 대적하였습니다. 비록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죄의 씨앗을 남겨 두는 것은 훗날 화근이 됨을 또 다시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고, 죄 용서함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은혜에 늘 감사를, 찬양을 드리십시오. 저주를 받은 자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노라고,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에, 그 큰 사랑에 보답하겠노라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 은혜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산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옷을 입은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죄를 혐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5-9,12-1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진정으로 그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그렇게 사랑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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