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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3-22 (금) 00:3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80    
심판 받을 행동들(신 27:11-26)
오늘날 이 사회에서 우리 기독교가 욕을 먹는 이유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불신 사회에서도 기독교인이라면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불의를 싫어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백성들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이 기대를 저버리면 전도는커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주님까지 욕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실로의 북쪽으로 세겜에서 가까운 곳에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산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그리심 산이고 하나는 에발 산입니다. 작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산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나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12-13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레위 사람이 큰 소리로 말씀을 선포하면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을 하게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로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면 모든 백성들이 ‘아멘’이라고 화답을 하게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받고 사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느냐 아니면 불순종하고 사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가나안에서 많은 복들과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며, 아무리 적들이 쳐들어와도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는 방법이 얼마나 쉽습니까? 군사력을 강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농업이나 목축업을 잘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살면서 주위 사람들을 보니까 꼭 그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잘 살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 생각보다 더 나아 보이더라는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아서,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생각이 되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망하고 맙니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였지요?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이 누군가 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을 벗하여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그의 소유된 백성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하신 언약을 지키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430년의 포로생활을 벗어나 광야 40년도 기적으로 건넜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떠나 산다고 하면, 교만하게 자기 자랑이나 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산다고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그 주위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말씀을 지켜 살면 복을 받게 되고, 그 주위는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15절부터 25절까지 모두 12개의 저주의 말씀이 나옵니다. 우선적으로 나오는 것이 십계명에서와 같이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15절)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자신의 소원을, 욕심을 위하여서 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종교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다 그렇게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잘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암 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때로 참 선지자들을 보내어 암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싫다고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 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허락하신 은혜를, 말씀을, 기도를 지키지 못하면 결코 참된 부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을 따라가면 결국 그나마 주어진 은혜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대요,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부모 공경입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처음 네 계명들 다음 나오는 첫 계명이 부모 공경입니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식이 있으면 호로 자식이라고 하면서 욕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모를 우습게 알고 공경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합니다.
   시부모님들도, 장인, 장모님들도 다 부모님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는 다 부모님이십니다.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7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모든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각 가정의 땅의 경계를 정하는 지계표를 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주신 땅으로 만족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땅을 넓히려고 할 것이기에 동족들 가운데 땅을 빼앗기는 가난한 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때로는 노예로 팔려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저주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욕심을 내서 남의 것을 탐내면 안되고, 다른 사람을 헤치면서 높아지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 범위 안에서 필요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 다음으로는 긍휼을 베풀고 살라는 것입니다.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8-19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자신을 닮아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소경이 길을 잃었다면 찾아주고, 고아나 과부가 가족이 없다고 억울하게 소송을 당하여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아도 아름다운 행동이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라고 하면 더더욱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적인 범죄입니다(20-23절). 여기 나오는 성적인 죄는 도저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성적인 죄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족속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거의 짐승 수준의 성적인 죄들입니다. 계모라든가, 짐승과 관계를 갖는다든가, 근친과 관계, 장모와 관계 등 도무지 구역질이 나는 그런 성적인 죄를 짓는 그런 족속을 닮지 말고 성적인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안 그러면 저주하신다고 합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다 싫어하시지만 특별히 더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들이 있는데 우상숭배와 성적인 죄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타락하여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본문에 열거된 성적인 관계들도 용납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믿는 자들은 절대로 금해야 합니다. 사실 불신자들도 거의 기본적인 양심들이 있어서 그런 행동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더욱 그런 죄를 경계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을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연하지요(24-25절).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인간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형제, 자매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을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요일 3:15).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를 미워하면 안 됩니다. 미워할 마음을 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얼른 기도하여서 미워할 마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바꾸어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복된 자리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자리에 거하면,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하며 목숨을 걸고 말씀을 지키면 우리의 미래는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하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순종 아니면 불순종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사탄, 마귀는 계속해서 유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씀을 멀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하려고 말입니다. 아니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저주는 없지만, 이 땅에서 심판을, 징계를 받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2-13)고 하였습니다. 즉 자유의 율법,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율법인 진리대로, 복음을 받은 자처럼 말하고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복음대로, 진리의 말씀대로 살 기회를 주셨는데, 긍휼을 베풀고 살면 심판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선포하게 하시면서 그들이 듣고 속으로만 생각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두 산 사이에서 큰 소리로 ‘아멘’ 하고 반복하여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오늘 우리가 얼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느냐에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더 욕심내지 않고, 정욕대로 살지 않으며, 지킬 것은 지키고, 긍휼을 베풀며 사느냐에 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늘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셔서 그렇게 살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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