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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1-13 (금) 00:3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99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이 영광이라 (벧전 4;12-19)
주후 64년 여름이었습니다. 7월 19일부터 9일동안 로마시에는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네로 황제가 일으킨 불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에게 불을 끄지 말라고 하면서 즐기던 네로였습니다. 그리고는 신자들이 불을 질렀다고 뒤집어 씌우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는 신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핍박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때 엄청나게 많은 신자들이 죽었습니다. 바로 이 대화재와 민심 수습을 위하여 신자들을 박해한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 바로 센키에비치의 ‘쿼바디스’ 입니다. 영화로도 나왔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에 로마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이 그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12절에 ‘불시험’이라는 표현을 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고난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종교개혁 당시에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화형에 처하여 순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우선 어떻게 그러한 불에 타는 듯한 고통스러운 시련에 대처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Slide 2-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12-13절상)고 합니다. 보통 우리에게 불시험이 닥치면 ‘어떻게 내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이상해, 믿을 수가 없어’ 라고 반응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인생을 교실에, 선생님을 하나님에 비유한다면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 보시기 위해 종종 퀴즈를, 시험을, 학기말 고사를 치르게 하십니다.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올 때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잘 견디는 자에게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3절하)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무런 고난을 겪지 않고 평탄하게만 사는 인생이라면 주님 재림하실 때 그렇게 즐거워하고 기뻐하겠습니까? 불시험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 날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결국 주님을 만나면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험이 올 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절)고 하였습니다. 믿음 때문에 욕(비방)을 받는다면, 인격모독의 핍박을 받는다면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종종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육체의 고문이나 고통에서 보다 그런 비난에서 더 많은 쓰라림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복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0-12절상)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을 때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우리 위에서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능력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Slide 2-2]
한편, 베드로는 우리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닌,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아서 받는 고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15절) 하였습니다. 만약 불시험이 우리의 죄악된 행실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는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미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20)고 하였습니다. 살인을 해서, 혹은 형제를 미워해서(요일 3:15) 벌을 받거나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벌을 받거나 악한 행실로 벌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니니 하나님에게 칭찬이 아니라 꾸지람을 듣겠지요. 또한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에 훈수를 두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 원어의 의미는 ‘선동자, 분열을 야기하는 자, 말썽꾸러기’ 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활에 간섭함으로써 교회의 평화를, 화합을 깨뜨리는 자입니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고 꾸중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은 마치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있다고 반응을 보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당신 자신 스스로 합리화하며 그렇게 말하지만, 결코 당신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착각하지 말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 버릇을 버리라고 합니다. 하여튼 우리는 죄 때문에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Slide 2-3]
하지만, 그런 고난이 아니라 진실로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또 강조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6절)! 선지자들도, 사도들도,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Christian’ 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어서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17-18절) 하였습니다.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는 자들을 심판합니다. 물론 여기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이 받는 심판과는 다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순결하게 정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시려고, 더욱 거룩하게 하시려고 허락하시는 고난입니다. 또는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는 고난입니다. 고난을 잘 감당하는 자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을 구별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Howard Marshall 은 “핍박의 효과는 교회에서 정말로 믿고 확실히 주님 안에 있는 자들과 정말로 믿지 않는 자들이 고난이 올 때 배반하는 자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심판은 참된 신자들을 정결케 하며, 부끄러운 행위를 하지 않도록 그들을 격려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라지들,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수 있습니다. 그들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2-14) 하였습니다.


[Slide 2-4]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19절)! 여기 핵심단어가 ‘부탁하다(parati,qhmi, commit, deposit, entrust)’ 입니다. 그 의미는 ‘보물을 금고에 넣어두다, 믿을만한 손에 맡기다’ 입니다. 불시험이 올 때 우리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의 안전한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맡기듯이 말입니다(눅 23:46). 선을 행하는 가운데,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이, 불시험이 오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어쩌면 고난을 기대해야(expect) 합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 고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교훈입니다.
물론 고난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죄의 대가라면 다른 이야기입니다. 남의 일을 간섭해서 오는 어려움이라면 마땅히 치러햐 할 것입니다. 아니 그런 고난은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믿는 예수님 이름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시험을 맡기십시오. 괴로운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0:13). 곧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받았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칭찬을 받으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요약 Slide 2]
올해 표어인 다음 세대와 함께 주님의 은혜와 지식 안에 자라가려면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시험이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필수과목입니다. 반드시 패스해야 실력이 자라게 됩니다.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하고,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여 성숙해집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어떤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drop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혀 도와 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계속 맡기십시오.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잘 견디면 앞으로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1832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Lina Sandell 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리나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종종 아버지와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그녀가 26살 때 아버지와 함께 배로 선교여행을 하며, 함께 갑판 위에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갑자기 풍랑을 만나 배가 기울어지면서 리나의 아버지가 바닷물에 떨어졌고, 구조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리나가 보는 눈 앞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아버님을 잃고 나서 주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성령님께서 평안을 주실 때에 이런 노랫말을 쓰게 됩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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