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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7-07 (목) 23:0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92    
은혜를 받았다면(요 12:1-11)
제가 종종 드리는 말씀 가운데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말 그대로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데, 반대로 은혜를 저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지만, 순리를 거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11장까지 예수님의 3년 남짓한 공생애 사역에서 ‘자신이 무엇이다’핵심적인 7마디(I AM …) 말씀 가운데 5마디와 7가지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것을 중심으로 정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다면, 이제 12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1주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본문을 대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씀이라고 하여 그냥 덤덤히 들으시면 곤란합니다. ‘아! 대충 오늘 목사님 설교가 그렇고 그렇겠구나’는 식으로 가정하고 듣지 마시고, 이 사건 이후 종려주일을 맞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나흘 후에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시며, 빌라도와 가야바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한 은혜를 깨닫고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결코 마리아는 돈 많은 여인도 아니요, 유명한 사람도 아니요, 명예가 있는 상류층의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읜 삼남매 중, 마르다와 나사로의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11장에서, 죽었던 오라비 나사로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는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닷새 전에 이 삼남매 살고 있는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6장이니, 마가복음 14장에 의하면 베다니에 사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문둥이였던 시몬이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고 잔치를 베풀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감사의 만찬이었습니다. 본문 10-11절에 의하면 대제사장들이 나사로를 비롯하여 주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살벌한 상황에서도 잔치를 벌이고, 그곳에 함께 했던 삼남매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 잔치에 목숨을 걸고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마 26:7)와 발에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향유(향수)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는 장면입니다(3절). 사실 이 마리아의 행동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여인들은 결혼을 위하여 혼숫감으로 향유를 예비합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혼숫감을 주님께 쏟아 붓는 것입니다. 팔면 적어도 삼백 데나리온 이라고 돈에 밝은 가롯 유다가 말합니다(5절).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오늘의 돈을 환산하면 시간당 10불 정도를 받는 노동자가 1년에 받는 약 20,000불에 상당하는 것을 주께 바친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마리아는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어떤 은혜를 받았기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뿐만 아니라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유대 여인들에게 머리털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머리털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더러운 발, 노예만이 만지고 씻겨주는 발을 씻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충분히 주위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습니다. 창피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마리아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그녀는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제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문맥을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몰랐습니다. 이 사건을 적고 있는 마가복음에 의하면, 분명히 주님께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죽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니리라"(막 10:33-34)고 며칠 전에 말씀하셨건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참고-요 13장).  오로지 마리아만 이해하고 지금 주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늘 마리아는 주님 발 아래서 말씀을 들으며 주를 경배하였습니다(요 11:31; 눅 10:39). 주님의 말씀을 늘 귀담아 들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 놀라운 은혜가 아직도 여러분을 감동시키고 있습니까?

   둘째, 그녀는 주께 대한 사랑이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즉 매우 귀한 향유를 그 머리와 발에 부은 것은 받은 은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주님께서 이제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그 슬픔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며, 또한 살아계신 주님의 온 몸에 향유로 준비하니 그 기쁨도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5절)라고 마리아를 꾸짖자, "저를 가만히 두어라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7-8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만 그녀를 꾸짖어라, 너희는 나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탐욕적인 가롯 유다는 가식적으로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지만, 잠시 후에 은 30전, 약 120 데나리온에 주님을 팔아 버립니다. 마리아 향유의 약 1/3정도 값에 말입니다.
   여기 가롯 유다의 말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6절)고 그의 생각을 지적합니다. 나중에 그의 한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7-8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보면, 우리도 구제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주님에 대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웃 사랑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곤란합니다. 아니 절대로 바꾸면 안됩니다. 주님을 먼저 사랑하기에 이웃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랑, 자기 의 때문입니다. 불쌍한 사람 구제하는 것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주님의 몸인 교회를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한 사랑은 입으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값을 따지지 않습니다.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지 않습니다. 값을 따지며, 이해득실을 계산 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줍니다. 진실한 사랑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수치와 모욕, 창피를 얼마든지 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영광도 내려 놓으신 분입니다. 어떤 모욕과 수치도 다 당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값을 따지지 않고, 아낌없이 드리게 됩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것을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억지로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맛보고 사는 사람과 은혜가 마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자주자주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 속에 죽으신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심령에 넘치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더 좋은 것을 드릴까 하는 마음이 있기에 주님이 원하시면 시간도 아끼지 않습니다. 몸도 아끼지 않습니다. 돈도 아끼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주님께 헌신하고 드립니다. 이런 분들의 얼굴은 항상 밝습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뭐 세상적인 복이 넘쳐서가 아닙니다. 받은 은혜 때문에 주님 사랑하며 사는 것 자체가 그들의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똑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것인지 늘 모습이 어둡고 마지못해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은혜가 말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어떤 이유로든 식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드리거나, 베푸는 데에 인색합니다. 지극히 계산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기쁨, 즐거움이 별로 없습니다. 주는 자의 복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마리아처럼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고, 가진 것도 별로 없어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정말 주님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주님 사랑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 전부를 주님께 드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명예입니까? 자존심입니까? 은행 계좌입니까? 가족입니까? 자식입니까? 건강입니까? 시간입니까? 여러분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여러분의 주위가 복을 받습니다. 3절에 보면 향유 냄새가 시몬의 집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요한복음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의 결론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 26:13, 막 14:9)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 26:1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일은 주님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칭찬입니까? 사실 마리아가 자신이 행한 일이 이처럼 영광스러운 일인 줄 알고 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저 순수한 믿음으로 이제 곧 돌아가실 주님께 참 사랑의 표현으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순수한 믿음으로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사랑으로 한 행동들이 훗날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그 시간 이후 오늘날까지 이 마리아의 헌신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나 기억됩니다. 마리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에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종말론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저를 가만히 두어라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7-8절)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십시오. 사람에게 베푸는 선한 일은 늘 할 수 있지만 주님을 위한 일은 그 기회가 자주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훗날 뭇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물론 좋은 기억입니다. 여러분의 주께 대한 섬김, 헌신을 기념하는 기억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성도들에게는 누구나 때때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험을 잘 이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험에 넘어집니다. 누가 시험을 잘 이깁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그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붙들고 사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은혜가 충만하면 악한 마귀가 어떤 시험을 하더라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받은 죄 사함의 은혜를 자주 감사하십니까? 그러한 은혜를 이미 받았으니, 그리고 지금도 은혜를 부어주시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랑의 표현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기회에 대하여 새롭게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 시간, 기회를 무엇에 사용하시렵니까? 본문에서 만약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닷새 전, 베다니 동네에 찾아온 그 때에 마리아가 주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붓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향유를 부을 수 있는 기회는 평생 없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에 마리아가 헌신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그 일을 기념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귀한 것을 드리는 일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시간을 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의 일을 주시며, 맡기실 때가 정말 좋은 기회임을 잊지 마십시오.
   마리아가 향유를 주께 부었을 때에 그 향기가 온 집과 주변에 퍼져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충성할 때에 은혜의 역사가 세상 만방에 퍼져나갈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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