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9,321
오늘방문 : 1882
어제방문 : 10789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5-06 (금) 00:1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015    
두 번째 축복의 기회(신 10:1-7)
만약 우리들이 때때로 자기 자신을 한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사람들은 다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주위의 성숙한 분들에게 가끔 물어보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완전한 삶을 살 수 없기에, 다들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하여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패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미래가 여기서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패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실망하고 자신을 학대합니다. 주위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실패의 자리에서 방황의 자리를 박차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그 일을 교훈 삼아 더 열정적으로 노력하여 자신의 미래를 바꿉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위로만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Up and Down 이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으로 밑바닥에서 헤맬 때에 어떻게 일어서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실패를 했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열정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축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현재의 열악한 환경에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를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이 기회를 붙잡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과거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실패를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목격했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면서 육지 같이 걸었던 체험도 있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경험은 그들에게는 기업이요, 영원한 축복이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천둥과 번개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며 율법의 말씀을 받은 것이야말로 최고의 체험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는 언약을 맺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축복의 순간에 큰 실패를 했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방인들처럼 그 앞에서 춤추며 숭배했습니다. 이 금송아지 우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가 하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모든 축복을 다 무효로 하고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이었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하나님께 탄원하여, 중보하여 그 백성들을 살려 냈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두 번째 돌 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에게 주신 두 돌 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 만드시고 글씨까지 새기셔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출 32:16). 그런데 두 번째 돌 판을 주실 때에는 처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다 만드셔서 주지 않으시고 모세에게 돌 판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1절상). 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직접 다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무슨 뜻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두 번째도 첫 번째와 똑같이 하나님께서 돌 판을 만들어서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다면 그들은 자칫 자기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처음과 똑 같은 돌 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큰 죄를 지은 과거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처음 것이 깨져버렸는데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뻔뻔스럽게 행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용서 받은 것과 죄를 아예 짓지 않은 것과는 분명히 틀리지 않습니까? 죄를 용서 받았다면 더 겸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 돌 판과 두 번째 돌 판을 다르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즉 이 1절의 돌 판은 처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 주어지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반역,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첫 번째 것이 깨어졌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이 두 번째 돌 판을 주신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두 번째 돌 판을 만들면서 쉽지 않은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축복은 그들이 처음부터 잘 믿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실수를,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그들에게 믿음의 기회를 주셨을 때에 말씀을 붙들고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두 번째 돌 판을 볼 때마다 기억해야 했습니다. 큰 죄를 용서함 받아 다시 기회를 주셔서 열심히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큰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는데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두 번째 돌 판이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그 큰 죄를 사하여 주셨음을 기억하고 이제 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죄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복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이 두 번째 돌 판을 언약궤 안에 넣어서 보관하게 하셨습니다(2-3절). 2절의 궤(ark)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언약궤를 말합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보좌를 의미합니다. 이 언약궤 안에 십계명의 돌 판을 넣으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그 놀라운 능력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번 실패했더라도 말씀을 붙들면 죄 사함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아 멘!!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보잘것없는 종이에 복사되어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이 성경을 우습게 아는, 교만하고 건방진 자들에게는 축복하지 않기 위하여 그 영광을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기회를 세상적인 출세나 쾌락의 금송아지와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6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동참한 아론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이 그 백성들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책임지겠다고 하고 형 아론도 살려냈습니다. 아론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뒤 아론은 죽도록 충성해서 정말 죽을 때까지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사명을 잘 마치고 영광스럽게 그 후임자인 아들 엘르아살에게 제사장 옷을 벗어주고 죽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엄청난 사건이 있은 후 아론은 다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저주까지 한 후 닭 우는 소리만 들으면 자신의 허물이 생각났던 것처럼 아론도 송아지만 보면 자신의 허물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론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함으로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대제사장으로 쓰임 받았던 것을 봅니다.
   얼마나 우리 하나님이 멋진 분이며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까? 우리는 아직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죄를 내어 놓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애통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더 불쌍히 여기시고, 더 사랑해 주십니다. 더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93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4)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으나- (요 11:45-57) 한태일 목사 2011-06-27 1677
392 수요설교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모범(신 12:1-7) 한태일 목사 2011-06-23 1712
391 주일설교 아버지들에게 감사(잠 13:1) 한태일 목사 2011-06-20 1781
390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3) -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38-44) 한태일 목사 2011-06-13 1614
389 수요설교 선택은 우리에게(신 11:18-25) 한태일 목사 2011-06-10 1617
388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2) - 말씀을 네가 믿느냐- (요 11:17-37) 한태일 목사 2011-06-06 1575
387 수요설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신 11:8-17) 한태일 목사 2011-06-02 1712
386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요 11:1-16)- 한태일 목사 2011-05-30 1643
385 주일설교 주님의 참된 양들은(요 10:22-42) 한태일 목사 2011-05-23 1738
384 수요설교 믿는 자들의 자원(신 11:1-7) 한태일 목사 2011-05-19 1816
383 주일설교 성경적인 부부관계 한태일 목사 2011-05-17 2029
382 수요설교 믿는 자가 복 받는 길(신 10:9-22) 한태일 목사 2011-05-12 1844
381 주일설교 어머니의 믿음(딤후 1:3-5) 한태일 목사 2011-05-09 1873
380 수요설교 두 번째 축복의 기회(신 10:1-7) 한태일 목사 2011-05-06 2015
379 주일설교 자녀 양육권(출 10:1-20) 한태일 목사 2011-05-02 1983
378 주일설교 복음의 증인입니까?(행 3:11-18) 한태일 목사 2011-04-25 2011
1,,,6162636465666768697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