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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5-17 (화) 03:2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32    
성경적인 부부관계
결혼식 주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신랑 신부가 사랑하며 살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반지도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금으로 합니다. 모두가 영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survey 에 의하면 결혼한 지 10년 이상이 되는 부부에게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사람과 부부로 살겠느냐고 물어보았는데 90% 이상이 ‘NO’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지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결혼하면 사랑의 결말을 다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사랑을 배워가며,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뜨겁게 사랑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그냥 삽니다. 더욱 사랑을 배워가며 부부관계를 더욱 친밀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혼 시절이 지나고 나서 아이가 생기게 되면 모든 초점은 아이에게로 맞추어 집니다. 부부는 그냥 정 때문에 살아갑니다. 너무 성경적이지 않은 부부관계입니다.
사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여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몸이 되어 살아가면서 참 사랑을 배워가며 가정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함입니다. 배워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배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값을 지불하는 희생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하였습니다.
현대 교인들의 비극은 머리로만 사랑을 알고, 입으로만 말할 뿐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식과 실천을 겸비한 지성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준민 목사님의 지적은 현대 교인들이 설교를 비판하고, 목회를 비판하는 지성은 있어도, 말씀을 실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쓰여진 성경입니다. 유명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신랑과 신부, 즉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물론 영적인 의미로는 마치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을 사랑한 것처럼 비천한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능력이 있습니다. 불화한 것을 화평하게 합니다. 나누어진 것을 연합하게 합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합니다. 무능한 자를 유능하게 하고, 병든 자를 낫게 합니다. 이 사랑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 생명의 역사, 화목하게 하는 구원의 역사, 치유의 역사, 인생을 새롭게 하는 역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모든 기적의 배후에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민망히 여기시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배워 사람을 세워야 하는데, 일으켜야 하는데 혹시 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여 반대로 사람을 허무는, 무너뜨리는 자가 아닌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아마도 솔로몬이 밤늦게 힘든 일을 마치고 이슬을 맞으면서 술남미 여인에게 달려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외칩니다. 이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였으면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여”(2절; 1절상)라고 부르면서, 영어로 쉽게 표현하면 ‘honey, darling’ 하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문제는 술람미 여인이 비록 잠을 자고 있었어도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음성을 듣고 깨어나 빨리 문을 열고 솔로몬을 맞이했어야 하는데 망설이는 것을 봅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2절)!
즉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첫 단계는 사랑하는 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 음성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참 사랑을 실천하려면 우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잘 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기술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랑한다면 듣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다릅니다. 사랑으로 듣는 것은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관심이 있고, 그를 존경하기 때문에 건성으로 듣지 않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또 아셔야 할 것은 듣는다는 것이 단지 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귀로 듣는 것은 의사소통의 10%도 안 된다고 합니다. 얼굴 표정으로, 몸짓으로, 눈짓으로, 음성의 강약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90%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듣는다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아마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잘 들었다면 금방 문을 열어주고 그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3절) 하면서 망설입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미는 것까지 보고서는 마음이 동하여서, 옷을 입고 일어나 문을 열었으나 그가 이미 떠난 다음이었습니다(4-6절). 문빗장에 몰약의 즙, 사랑의 흔적인 남편의 향수를 맡았지만 이미 늦어서 그를 찾아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즉 이 여인은 남편의 음성을 들었으나 참으로 들은 것이 아닌 결과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청종했다면 즉각 일어나 그를 맞았을 것입니다. 참 사랑의 들음은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가정을 세우는 아내의 특징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사랑 받는 비결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 24)고 하였습니다. 물론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해서 모든 가정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어떠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은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순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을 세우는 남편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 목숨을 거는 사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5, 28)고 하였습니다. 또한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위하여 자기 외아들을 내어 주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을 당하게 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들은 남편을 잘 순종할 것입니다. 물론 아내가 어떠냐에 달려 있습니다만.
지금 술람미 여인의 실수는 솔로몬의 음성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못한 것입니다. 지체한 것입니다. 사랑의 감격을 잊고 잠시 방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참 사랑은 방심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어제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오늘 그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아무리 어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하더라도 오늘 식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사랑을 가꾸어 가야 합니다. 불을 계속 지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랑을 위해 계속 기름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게으르면 안됩니다. 술람미 여인이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솔로몬이 기다리다가 떠나가 버렸습니다.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나태해집니다. 교만하면 더 이상 배우지를 않습니다. 노력하지도 가꾸지도 않습니다. 예수님도 게으름을 악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5:26).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고 변명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탓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 늦은 시간에 왜 문을 두드리냐고 솔로몬을 탓하고 있는 것입니다. 옷도 벗고 있고, 발도 씻었는데 왜 지금 왔느냐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니라, 당신 탓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피곤해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의할 것이 피곤입니다. 피곤함은 건강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까지도 해칩니다. 정말 웬만큼 성숙한 사람이 아니면 다 여기서 무너집니다. 사람이 피곤하면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것입니다. 짜증을 냅니다. 사랑은 무슨 놈의 사랑이냐는 것입니다. 내가 피곤해 힘들어 죽겠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피곤할 때에는 가능하면 대화를 삼가십시오.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십시오. 자신이 피곤함을 알 때에 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고,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아예 하지 않으면 좋지만 꼭 해야 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조심하여 말하십시오. 사탄 마귀들은 이 피곤함을 사용하여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 교포들이 힘든 것 같습니다. 하루에 많은 시간을 중노동하면서 부부가 다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민 교포 가정들이 더 잘 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민 교포들이 성경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가정을 사랑으로 세워가려면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사실 사랑은 내가 힘들어도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아닙니까? 술람미 여인은 남편 솔로몬이 가장 필요한 순간을 그냥 놓쳐버렸습니다. 좀 귀찮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이 놀다가 늦은 것도 아니고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밤이슬을 맞은 채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 날이 자주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남편은 그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3)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의무는 성적인 의무를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적인 의무에만 적용하면 안됩니다. 의사소통의 의무를 비롯하여, 육적인 건강 문제와 자녀 문제, 심지어 영적인 문제 모두에 적용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문을 두드릴 때 피곤하더라도, 힘들더라도 열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필요보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문을 두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합니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랑을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섬기기를 원할 때에 섬김을 받는 것도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 모두는 우리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최대의 명령이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물며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여러분 부부 사이는 어떠합니까? 계속 배우며 사랑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까? 매일 새롭게 변화하여 더 깊고 넓은 성숙한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서로 잘 듣고 삽니까?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들은 아내들을 죽기까지 사랑합니까?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사인 오츠 슈이치 박사에 의하면 호스피스에 들어온 말기 암 환자 100 이상에게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환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친절하지 못했던 것,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한 등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라고 한다면 살아가면서 작은 사랑의 표현이라도 매일 하고 살아야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솔로몬은 예수님의 예표(typ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보혈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여러분들이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실천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마음 문빗장에 사랑의 흔적을 남기십니다. 게으르고 교만한 신부인 우리들을 계속 찾으십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덜 사랑하고 오해를 해서 그 자리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마 급히 다른 볼 일이 생각나서 사랑의 흔적만 남기고 떠난 것입니다. 이미 그 여인을 이해하고 용서하였습니다. 참 사랑이지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난 그 여인은 남편의 사랑이 끝없이 감격할 뿐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계속 찾아오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라도 주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라도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주님은 신실합니다. 밤늦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손에는 피 묻은 못 자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마음 문을 활짝 여십시오. 예수님을 모른다면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이 사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보다 귀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일으켜주는 사랑이요, 세워주는 사랑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잘 듣고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방심하지 마십시오. 게으르지 마십시오. 피곤할 때 조심하십시오.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 아니 사랑해야 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십시오. 기회가 왔을 때 사랑하십시오.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잠시 물러갔다고 해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해하려고 애쓰십시오. 끝까지 믿어주십시오. 이 사랑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주님께 칭찬들을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성공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는 주신 만남들을 사랑으로 잘 가꾸어 열매를 많이 맺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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