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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
작성일 2011-02-17 (목) 04: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63    
믿지 아니하면(요 8:21-30)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없는 줄 압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음을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살다가 죽습니다. 성경은 이런 삶을 죄 가운데서 사는 삶이요, 그 결과는 죄 가운데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 세상에서 죄의 대가를 영원히 치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24절이 중심요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인(I AM WHO I AM) 줄 믿지 아니하면 즉, 구약에서 예언되어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되는데 이는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받는 삶을 말합니다. 성경이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일반 세상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죄가 의미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비도덕적인 나쁜 행동에 국한해서 말합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유럽 사람들보다 미국 사람들이 두 배 정도의 비율로 지옥이 있음을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히틀러나 이디 아민, 김일성과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인간의 교만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모든 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죄 가운데 방황하며 헤매고 삽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죽음을 이야기 할 때에는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 둘째 사망, 지옥을 말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죽음은 그것을 의미합니다(참고- 히 9:27).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의 결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그 분의 인도를 받으며 교제하고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기 보다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위하여, 좀 더 연봉을 많이 받기 위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좀 더 편하고 큰 집에서 살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엄청 노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라면 오히려 실패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이 되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삶이야말로 축복의 삶입니다. 진짜로 성공한 삶입니다. 할렐루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약 세 종류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자기 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겠고 자신이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예수님이 자살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그 자신을 지옥에서도 가장 무서운 곳으로 떨어지게 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쌓은 의로 말미암아 천국에 간다고 가정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그런 지옥에 간다면 당연히 못 가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자신 스스로 죽음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요 10:17-18). 하지만 자살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손에 자발적으로 잡히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 살아계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인간의 의로,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가 쌓여지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 각종 예식과 규례를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으니라”(롬 10:3)고 하였습니다.
   결코 자기의 의로, 공로로 죄 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금욕적으로 살고 도덕적으로 산다고 해도 죄인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얼만큼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 대가를 다 지불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세상에 속한 세상적인 사람들입니다. 23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자살을 해서 지옥에 가는 줄 오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상(world)이라는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다스리는 영역을 말합니다. 잠시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조종을 받는 영역입니다. 물질주의, 이기주의, 인본주의, 비도덕주의 등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것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5-1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며 진리를, 의를, 거룩함을 적극적으로 대적합니다. 오히려 정욕과 쾌락, 불의, 부패와 자기 자랑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그런 세상에 속하여 세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죄 가운데 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세상으로부터 나신 분이 아니고, 위로부터 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믿는 자라고 한다면 비록 이 세상에 몸 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이중국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참고 요 17: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의지적으로 무지를 택하는 사람들입니다. 25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네가 누구냐”라고 그들이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누군데 우리가 죄 가운데 죽는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기적들도 행하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하고 강퍅하게, 의지적으로 무지(ignorance)를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고 묻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25절하-26절)고 하셨으나,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27절). 그래서 성경은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귀가 없어서 못 듣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안 듣는 것입니다.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27절에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온 자란 무슨 말입니까? 아마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언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신 여자의 후손을 뜻하거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예언한 그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참되시다고 하신 것은 모든 의의 기준이 하나님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의와 일치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의 의 갖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의 절대적인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28-29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의와 연결되기 위해서 이 세상의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열심 가지고 안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직 한 길 밖에 없는데, 그것이 인자(Son of Man)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인자”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다는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셨고, 그 육체 안에 모든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다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쏟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치르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분리되었던 관계가 완전히 연결되어 정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자 삼으셨습니다. 그 아들과 같은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은혜를 체험하기 전에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는지, 사람들의 잘못이,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무지는 무서운 상태인 것입니다. 죄 가운데 죽는 것을 모르니 말입니다. 마치 식물인간이 되어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분이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의사나 간호원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그가 기적적으로 깨어나고 난 후에야 비로서 자기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몇 달을 있었고,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자기를 치료한 의사가 얼마나 탁월한 의사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애 썼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불신자들 즉 자기 의를 쌓고 있거나, 세상에 푹 빠져 살고 있거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무지한 분들과 신앙적으로 아무리 토론을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신령한 일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구원하시도록 눈물의 기도로 호소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게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믿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부어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나의 죄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승천하셨다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믿으십니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줄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할렐루야!” 입니다.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고 영원히 삽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단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뿐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다시 합쳐져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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