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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
작성일 2011-02-21 (월) 22:5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47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믿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믿음들이 있음을 봅니다. 믿음의 대상들도 여러 가지이지만, 같은 대상을 놓고도 믿는 정도와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들을 하나 같이 다 다르게 창조하셔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은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봅니다. 다 입으로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데 너무 다르기도 하며, 어떤 믿음은 의심이 가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참)믿음에 있는가 하고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지난 주일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세상에 속하여 살거나, 의지적으로 무지를 택하면 죄 가운데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며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한다고 하시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30절). 사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였다면 그 믿음이 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보시고 그 믿음을 칭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1-32절)고 하는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나를 믿는다고 하지만 내 말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 제자가 아니다. 너희는 진리를 모르고 있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를 모르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들의 믿음은 입술로만 고백하는 피상적인 믿음이지 참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참 믿음이라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진리를 깨달아 알아 자유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귀한 것이 자유입니다. 우리 인간이 개나 돼지 같은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이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인간, 즉 노예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옛날 노예들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언제나 발과 목에 쇠사슬을 매어 놓았습니다. 노예들은 오직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의지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노예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으라고 매를 맞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립니다. 만약 노예가 아이를 낳으면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라면 팔아버립니다. 마치 집에서 키우던 닭이나 개, 염소를 파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1941년 1월 6일 미국 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네 가지 자유를 언급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는 미국을 이 네 가지 자유를 충분히 누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쩌면 그 이후로부터 미국은 이 자유들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 네 가지 자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공기나 물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런 네 가지 자유들을 누리기 위하여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근본적인 자유입니다. 바로 영적인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죄의 권세, 사탄, 마귀들로부터의 자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죽음, 둘째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가 치열하게 전쟁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알듯이, 오늘날 온갖 악의 세력이 얼마나 무섭게 사람들을 죄의 소굴로 끌고 가는지 뉴스를 보기만 하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죄의 쇠사슬에 묶여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이 쇠사슬의 고리들 중에는 탐욕과 미움, 불안과 시기심, 두려움과 저주 등도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늘날이 옛날보다 더 잘 사는 것 같고, 많이 편리해진 것 같아도, 앞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언급한 자유들을 누린다 하여도 죄의 쇠사슬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권세 아래 빠져나가지 못하면 참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희희낙락하고 산다고 해도 죄의 노예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핵 폭탄이 아닙니다. 죄입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공해가 아니라, 죄의 공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가 이 참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한번도 종이 되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자유케 한다는 말이냐고 되묻습니다(33절). 물론 이스라엘 나라는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 바사, 헬라 제국의 종 살이를 해 보았고, 그리고 지금도 로마의 속국으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죄의 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육체적으로는 종살이를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34-36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죄를 범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실수로 죄를 짓는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Life style or pattern)가 죄 가운데 거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자들은 죄의 노예이기에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없지만, 그 아들은 종이 아니라 영원히 거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유케 하면 참으로 자유를 누린다고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찾아 읽으셨습니다(사 61:1-2).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리고는 “회당에 있는 자들에게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포로된 자들과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받아들인 자들은 이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자신을 옭아매는 그 어떤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왜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계속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까? 본문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는 주님의 참 제자들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참 제자는 주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입술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여기 ‘거한다’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 112번이나 사용되었는데, ‘믿음’의 주제를 가진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에만 반이 넘는 66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한 장소를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문다는 의미와 그 곳의 식구들과 사랑의 교제를 계속 나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적 자유를 누리는 참 제자가 되려면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죄에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속 머물면서 주님과 교제하여야 합니다. 말씀 중심의 삶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 안에 거하면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기분 좋다고 듣고 기분 나쁘다고 듣지 않고, 일이 잘 된다고 귀를 기울이고 일이 잘 안 된다고 말씀에 귀를 막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주는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 말씀이 잘 안 들어오면서 좀 영적으로 침체된다고 생각할 때에는 자신이 노력해야 합니다. 죄가 있나 살피며 회개하고, 찬송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제자”라는 말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배운다는 말은 마음이 끌린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지도자, 스승에게 끌리지 않으면 배우지 않으니까요. 끌리기 때문에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예수님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큽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배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진리의 말씀이 바로 “진리를 알지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마음이 끌려서 사랑하게 되면서 겪어 보고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경 말씀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성령은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만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성도의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라고 했으며,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162)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전쟁터 일선에서 한 사병이 무선통신으로 포로를 잡았다고 본부 상관에게 보고를 합니다. 상관이 즉시 포로를 데리고 본부로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사병이 포로가 안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상관이 그럼 너라도 빨리 오라고 하자, 잠시 후에 보고하기를 포로가 가지 말라고 한다고 하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영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죄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돈의 노예, 정욕의 노예, 술이나 담배, 마약의 노예, TV, 비데오의 노예, 인터넷 게임의 노예, 혹은 미신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나쁜 습관을 잘 끊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몰라서, 깨닫지를 못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 . .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에게서 해방이 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6-7,11-12,14,18)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아! 나는 죄에 대하여는 죽었구나. 죄의 쇠사슬에서 풀렸구나. 죄에 종이 아니라 이제 의의 종이 되었다’ 라고 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야 합니다. 나의 감정과 상관 없이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의 최고의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는대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묵상하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통하여 인격화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그 말씀대로 사셨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라 살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4)고 한 것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인 말씀이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 5:1)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죄에 붙들려 있어서 자기 자신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진정한 삶의 목적도 모르면서 인생 전체를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싶지 않습니까?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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