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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9-28 (화) 10:2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57    
[9/26/10] 정말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정말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요한복음 6:16-21)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실제 무슨 일에 부딪히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 믿고 있는지, 정말 그 주님을 믿고 있는지, 의지하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세어도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것이 12 바구니에 채워지는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은 주님과 헤어져서 해 저물 즈음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16절). 주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이 흥분 속에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는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흥분은 성령의 역사가 아님을 아셨고, 저들의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산에 올라 가셨던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다가, 해가 저물어 그냥 자신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17절). 문제는 저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심하게 쳐서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도 약 십리, 3 마일 정도나 왔습니다(19절). 원래 갈릴리 바다는 해저 700ft 정도 되고, 주위의 산 혹은 언덕들은 해발 2000ft 나 되기 때문에 그 차이로 인하여 낮에 불었던 뜨거운 바람과 갈릴리 바다의 온도 차로 인하여 때때로 광풍이 분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사건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공관복음에 기록된 병행구절(마 14:22-33, 막 6:45-51)에 의하면 그날 밤에 그 광풍이 불어 비록 제자들 가운데 어부들이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어려움 속에 당황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산에서 제자들이 풍랑과 싸우며 노 젓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막 6:48). 그리고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와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을 향하여 물 위로 걸어 오셨습니다. 한밤 중에 사람이 물 위로 걸어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기에 제자들은 처음에 예수님이 유령(ghost)인 줄 알고 떨며 소리를 질렀습니다(마 14:26).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니 두려워 말라”(20절) 라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기뻐서 예수님을 배 안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이 잔잔해 지면서 풍랑이 그치며 제자들은 가려던 가버나움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21절).

이 표적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메시아 임을 증거하는 또 다른 표적, 다섯 번째의 표적으로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이 표적 기사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오늘 이 사건은 몇 가지 기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병행구절들에 의하면 물 위를 걸으신 주님께서는 자신 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주님을 쳐다보지 않고 바다를 쳐다보다가 물에 빠지기 전까지 물 위를 걷게 하셨습니다. 또 바람도 잔잔하게 하시므로 풍랑이 멈추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 왕의 신하의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신 기적,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기적,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과 아울러 오늘 본문의 기적도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표적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셔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향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마 14:33).
우리 모두도 제자들처럼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표적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빠져 있지만, 사실 제자들은 이미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마 8:23-27, 막 4:35-41, 눅 8:22-25). 광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의 배 안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 지는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또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십니까? 그 동안 제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자랐는가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헤어져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신 후에 계속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무슨 상황에 있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옛날 다윗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 139:1-3) 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정말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서 노를 저어 갈 때에 광풍을 만나 애쓰고 있음을 다 보고, 알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두 번째 교훈은, 우리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뿐 아니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를 돕기 위하여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항상 함께 하시면서 언제나 도우시는데, 특별히 상황이 어려울 때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찾아오셔서 위험에서 건져내십니다. 길이 없으면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찾아오셔서 도우십니다. 정말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그 마음에서 두려움을 쫓아주신 주님을 체험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분들도 있고, 사랑하던 가족이 내 곁을 떠나 눈물 짓고 잠 못 이룰 때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을 경험한 분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인생의 광풍을 만나 고난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풍랑을 만났는데 아무리 주님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풍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도와주시지도 않는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많은 기도를 하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기다렸지만, 풍랑은 잔잔해지지 않고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편 기자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시 44:23-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 주님이 주무시고 계시는 분 아니지요. 우리를 영영히 버리시는 분 아닌 줄 믿습니다. 이런 주님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믿겨지지 않으시면 욥기를 읽어보십시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아니며, 또한 도와주시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팔짱만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 지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항상 함께 계시며, 우리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는 아닐 지 몰라도 말입니다. 만약 주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현재와 같은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고 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것도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손이 우리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풍랑 속에 잃어버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확실하게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분명히 얻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돈을 잃으면 돈이 다시 손에 들어와야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고 말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을 다시 찾아야 비로서 주님께서 도와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대로 회복해야만 주님께서 도우셨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또 주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실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지 아니할 때도 주님께서 다른 것으로 도우시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돈을 잃었는데, 건강을 주시기도 하시고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게 하시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실패를 거듭했는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삶을 사는 데에 탁월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세상에서 잃은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열심히 주님을 믿고 살다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괴로워서 슬퍼하며 주님께 기도하며 매달리는데도 그것을 회복시켜 주시지 않는 경우, 내가 주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을 우리 주님께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면, 훗날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전 15:19)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불쌍하다는 동정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가난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지 마십시오. 비굴해지지 마십시오. 우리 가정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고난이 닥쳤습니까?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고난은 잠시 잠깐입니다만, 우리 앞에는 놀라운,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순교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자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으로 너무나 시달렸지만,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주님을 바라 보았더니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은 꿈에 있었던 일 같이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때문에 겪은 고생이 크면 훗날 천국에서 주님과 누리는 행복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주님의 제자들은 풍랑으로 거의 파산의 지경에 있는 배를 저으며 캄캄함 밤을 헤쳐나갈 때 두려웠지만 계속 노를 저어 나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막 6:48)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피곤해 하며 지친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작은 믿음이지만, 두려워 떨고 있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계속 힘써 노를 젓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워 벌벌 떨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풍랑 때문에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 같아도 계속 저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는데, 문제가 하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노는 열심히 젓고 있는데 앞으로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더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종들은 거의 다 괴로이 노 젓는 과정을 통과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사도 바울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 앞에 풍랑이 일어도,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아도 그 있는 자리에서 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주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노 젓기를 계속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인생의 항로에서 광풍을 만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하루 하루를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 삶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주님이 어떤 분입니까? 입으로는 전능하신 주님, 전지하신 주님 하시면서도 실제로는 의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세상은 불의가 가득하고, 불공평하지만 우리 주님은 공의로시며, 공평하신 분입니다. 아니 풍랑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자연도 주님 앞에서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 주님께서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며, 도우시려고 하시며, 붙드시는 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더 좋은 것, 큰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따라 살면 하나님 앞에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확실히 믿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조금만 참고 인내하십시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주님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고생하고 고통 당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큰 위로와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을 풍랑 속에서도 힘써 노 저으며 찬양하며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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