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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0-01 (금) 04:2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4    
[9/29/10] 수요예배 - 은혜를 경험한 자의 책임
은혜를 경험한 자의 책임 (신명기 4:15-2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데에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적 갓난아기 같이 살지 말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여러 번 체험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은혜를 받았으면 다른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도 잘 사는 모습을 보더라도 조금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 붙들고 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 씻음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 체험을 주시는 것은 이제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과는 구별되어 다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목적,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자랑하고 풍족하게 살아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계속 영적 갓난아기처럼 살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빠질 함정 두 가지를 경고하십니다. 그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위험입니다.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15-18절)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왜 사람들은 자꾸 이런 형상을 만들려고 할까 하고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돌이나 나무, 쇳덩이로 만들어 놓은 형상에 절을 할까요? 이유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종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교심, 조물주(창조주)를 향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지요. 타락한 종교심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올바로 그 마음을 정한다면 당연히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에게로 방향을 잡고 제대로 믿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들을, 은혜들을 많이 체험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우상을 만들어 자기의 열성을 표현하기를 좋아할까요? 이미 아론과 그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서 모세가 40일을 금식하며 하나님을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에,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런 죄를 범하였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무엇인가 보기를 원하여서 자기의 타락한 종교심을 발동하여 우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모든 죄를 밝히고 모든 더러운 것을 다 없애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죄가 드러나서 심판 받는 것보다는 타락한 종교적 열성으로 그저 복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자기 안에 병이 있는데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심정과 같습니다. 병을 고치려면 아프고 두려워서 그냥 병을 갖고 살다 죽겠다는 심정이지요. 그런데 병을 가진 채 다른 축복을 받으려고 복을 비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어떤 죄든지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순수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한 두 번째 함정은 그들의 다른 이방 종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빠지게 되는 함정입니다. 세상에서 그들만 고립되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됨으로 받는 유혹입니다. 속된 말로 왕따 당하는 것이 싫어서 타협하게 되는 유혹입니다.
이방 종교를 믿는 다른 민족들은 자기들의 기준에 의하면 다 망해야 하는데 죽은 신인 우상을 섬기고 사는 데도 버젓이 잘 사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 만이 참 신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들은 엉터리이니까 그런 신을 믿는 이방 사람들이 다 망하거나,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는 못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더 잘 사는 것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그 백성들의 성숙한 신앙자세가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이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복으로 만족하고 더 성숙한 신앙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왕따 당하는 것이 싫어서 그들의 종교와 타협하며 산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미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곤란하지요.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어야 성숙한 신앙인이지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입니다. 우상이 이스라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진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비장한 말을 남깁니다(20-22절).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쇠 풀무에서 끌어 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쇠 풀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만큼 고생을 엄청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쇠도 녹일 정도의 고난이니까 도대체 거기서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았습니다.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들면 불에 들어가도 살고 물에 들어가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 같으면 이 정도의 핍박이나 연단을 받으면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남았고, 더 똘똘 뭉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는 결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남아야만 했을까요? 물론 모세가 므리바 반석에서 물을 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혈기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친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런 것은 얼마든지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더 큰 이유는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백성들의 신앙자세 때문입니다. 21절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신 1:37). 그러므로 그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더 나은, 성숙한 신앙자세로 나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광야를 진행해온 세대들은 너무나 믿음이 약하여, 불순종했기 때문에 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기 원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자를 믿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기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체험을, 성령 체험을 주셨습니까? 죄 사함의 체험을, 뜨거웠던 첫 사랑의 기억이 있습니까? 왜 우리에게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그런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하게 하십니까? 보다 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상의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 철학이나 사상, 종교, 문화 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외로움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 마귀들은 늘 타협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만족하고, 그 말씀이 내 영의 양식이 되며,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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