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9,845
오늘방문 : 2406
어제방문 : 10789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0-04 (월) 22: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61    
[10/3/10]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요 6:22-29)
인생을 살면서 아무 목적도,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헛된 생각이나 허무한 목표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인생의 결국은 후회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것을 분명히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례를 받았거나, 우리 교회에서 1년, 2년 정도 신앙생활하셨으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것을 붙들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이 다음 날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바닷가에 배가 두 척이 있었는데, 한 척이 남아있고 지난 밤에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이 배 한 척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22절). 그래서 아직 거기 있는 줄 알고 찾았으나 없어서,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물론 지난 밤에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던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셔서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한 배를 타고 건너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군중들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랍비여 어느 때 여기 오셨나이까”(25절)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뜻 밖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진실로 진실로” 두 번을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강조하시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무리들이 자신을 또 찾은 것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은 까닭이 아니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찾아 왔는데, 그것은 바로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또 공짜 떡이나 얻어 먹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27절)고 하셨습니다. 썩어져 버리는 것들을 위하여 찾지 말고 썩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인쳤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그 주권을 대신할 수 있도록 위임하셨습니다. 즉 우리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 받고,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특권도 위임 받아서 오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을 때, 주님을 찾을 때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서 라는 것입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병을 고치기 위하여, 출세해보려고, 혹은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여 교회를 찾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현실적인 필요와 욕구를 초월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 그래서 교회를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서도, 예수님을 알고 믿은 지가 꽤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썩는 양식을 위하여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군중들과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보일 수 있는 표적을 보았으면 12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예배하며, 주님으로 받들고 섬기려 해야 하는데, 계속 자기의 개인적인 욕심을 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합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감사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육신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운동의 한 도구로서 주님을 따르기도 합니다.
   유명한 C. S. Lewis 는 하나님은 처음 믿은 초신자들에게는 굉장히 너그러우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초신자들이 ‘주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대부분 그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너무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구하는 대로 주시지 않는 적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싫어서 실망하고 주님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애초 믿음이 잘못되었거나 아직도 갓난아기 수준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군중들처럼 말입니다(66절). 한때는 그렇게 좇아 다녔던 사람들이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기 위하여서 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복을 누리며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때로 세상에 있는 것들을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뒤로 돌아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영생의 축복, 하늘의 축복,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좁은 길도, 험한 길도 담대히 가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어도, 환란 중에도 찬송을 부르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 뒤에는 찬란한 영광의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마치 검은 구름 뒤에는 태양이 있음 같이 고난 뒤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던 군중들이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이 질문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다른 종교들은 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마치 유대교 어떤 관원이 주님을 찾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공짜일까?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좀 어려운 말로 ‘공로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이 공로의식을 아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인인 인간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인간 편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착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도덕적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할 때 선한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고, 선하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지, 하나님에게도 좋게 보이고 선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구원을 받기에는 부족합니다. 심지어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선한 일을 해서 그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엡 2:8-9).
   이 진리를 모르는 군중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주님께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고 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 속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에는 그 어떤 선한 행위나 공로로는 전혀 불가능하며,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그 믿음이 하나님에게는 선한 일로 인정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죄의 대가, 형벌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다 치루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압니다.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며, 내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인정합니다. 다만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셔서 역사하시면,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니 모든 권리를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사는 것이 믿음 생활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셨다고 믿고 나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 놓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혹자는 어떤 교인은 믿는 것 같은데 행함이 없고, 열매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야고보서 전체의 주제가 바로 믿으면 행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닌다면서 행함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행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안 믿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믿으면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아브라함을,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진짜 믿음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 믿음에 대한 열매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지 진짜 믿음, 산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이 산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됩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혹시라도 여전히 떡을 위해서,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위하여, 세상적인 축복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다른 아무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주님 말씀 안에서 자라가도록, 성숙해지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인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믿는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믿는 일의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성령님께서 할 수 있도록 힘 주시니, 그 은혜로만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목적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내가 그들을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 .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7, 21)고 하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입니다. 늘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시기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45 수요설교 항상 기도하고 한 태일 목사 2010-12-03 1962
344 주일설교 구역교회(1) 한 태일 목사 2010-11-29 1775
343 수요설교 말씀의 멍에 한 태일 목사 2010-11-26 1866
342 주일설교 감사의 생각으로 바꾸면 한 태일 목사 2010-11-23 1716
341 수요설교 하나님만 섬기라 한 태일 목사 2010-11-19 1817
340 주일설교 [11/14/10] 여호와께 감사하라 한 태일 목사 2010-11-15 1774
339 수요설교 [11/10/10] 언약의 말씀의 현재성 한 태일 목사 2010-11-12 1791
338 주일설교 [11/7/10]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한 태일 목사 2010-11-09 1856
337 수요설교 [11/3/10] 어떻게 준비를 하십니까? 한 태일 목사 2010-11-04 1909
336 주일설교 [10/31/10]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십니까? 한 태일 목사 2010-11-01 2006
335 주일설교 [10/27/10] 수요예배 -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하는 길은 한 태일 목사 2010-10-28 1915
334 주일설교 [10/24/10] 진짜 제자입니까? 한 태일 목사 2010-10-25 1805
333 주일설교 [10/20/10] 수요예배 - The Gospel of Grace 한 태일 목사 2010-10-22 2429
332 주일설교 [10/17/1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한 태일 목사 2010-10-19 2071
331 주일설교 [10/13/10] 수요예배 - 성도의 위험 한 태일 목사 2010-10-14 1833
330 주일설교 [10/10/10]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한 태일 목사 2010-10-13 1796
1,,,6162636465666768697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