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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0-08 (금) 00:2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26    
[10/6/10] 수요예배 -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마 17:14-21; 막 9:14-28; 눅 9:37-42)
    오늘 본문은 바로 앞 변화산에서 엄청난 체험,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세 제자들에게는 완전히 하늘의 경험에서 땅 밑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향한 귀한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그 첫째가 믿음에 관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 영생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듯이, 우리의 이 세상의 생활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산 성도들의 끊임없는 증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모세 앞에서 백성들에게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고,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고한 것도(민 13:30)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죽음을 앞에 놓고도 소망을 가졌던 욥도(욥13:15) 하나님의 돌보심을 굳게 믿었던 믿음이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라고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끝까지 믿는 믿음이요, 사자굴에 던지우더라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예배를 드렸던 다니엘도 믿음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요, 주위 사람이 뭐라 하든지 귀한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눈물로 그 발을 씻으며 주를 사랑하며 주의 죽으심을 예비한 죄인 막달라 마리아도(눅 7:37-50) 자기의 죄를 용서하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여러분들이 잘 아는 히브리서 11장에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이름과 그 능력 있었던 삶의 모습들이 기록되고 있는데, 그 모두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한 첫번째 교훈이 바로 이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 기막힌 체험을 하고서도 자신들이 얼마나 능력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무리 가운데서 예수께로 나옵니다(14절).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 무리 중에는 서기관들이 그 병을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과 변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아버지는 겸손히 주님께 꿇어 엎드리어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15절)고 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이 아들은 외아들로서(눅 9:38) 어릴 때부터 이 병을 앓아왔다고 합니다(막 9:21). 아들의 병 증세가 너무 심하여 불 속에도 들어가고, 물 속에도 들어가 넘어진다고 합니다. 간질병은 정신병 종류로 신경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지요. 언제 경기(seizure)가 생겨 그런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것입니다. 단지 정신적, 신경성, 생리학적 문제일 뿐 아니라, 18절 말씀에 의하면 귀신, 마귀가들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병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를 묘사하기를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막 9:18)고 하였으며,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눅 9:39)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먼저 그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 왔는데 그들이 고치지를 못하였습니다(16절). 이 시간 이전, 약 1년 전만해도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권세와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는데(마 10:6-8; 막 6:13) 왜 실패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아주 떠나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약속과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 아들을 고치지 못한 것일까요? 문제는 믿음이었습니다.
    17-1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능력 없는 믿음은 그 병든 자의 아버지만 실망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까지 실망시켰습니다. 특히 그 동안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가르치고 능력과 권세를 준 제자들의 무능한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 전부가 패역하고 믿음이 없는 세대였습니다. 그 아들의 아버지조차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서 예수께 소리지르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모양이 삐뚤어졌다, 꼬였다 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그 뜻을 잘못 보고, 삐딱하게 행동함을 말합니다. 불신자들의 삶, 이단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이지요. 제자들의 믿음이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자신은 곧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고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텐데, 지금 사탄은 이 백성들을 사용하여 ‘예수여 당신이 지금 그들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당신이 여기를 떠나 하늘에 가버리고 나면 어떻게 그들이 당신을 온전히 믿고 의지한다는 말이냐? 그냥 여기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계속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해 갑니다.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신 후에 귀신을 꾸짖어 나오게 하십니다. 마귀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꾸짖으시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귀신은 나오면서 아이에게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고 죽은 것 같이 됩니다(막 9:26).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아이가 죽은 줄 압니다. 그러나 귀신이 나간 후에 아이가 그때부터 낫습니다(18절).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이에 일어서니라”(막 9:27)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기적을 베푸신 중요한 목적이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믿음이 적어서였다는 것입니다. 아주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어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예비해 주셔서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에는, 즉 내 손 안에 무엇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만사형통 할 때에는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여 어려워지고, 불확실해지고, 삶의 위협을 느낄 때에는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믿음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건강할 때, 삶의 필요한 것들이 다 있을 때는 믿음이 크고 강한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믿음이 작고 약하여져서 의심하게 되고 전혀 능력 있는 삶이 되지 못하는 믿음 말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그렇게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이 땅을 떠나가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예를 보여줍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이야기 나눌 수도 없을 때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믿음이 이 모양이냐고 야단치고 계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주님께서는 끈질긴, 꾸준한 믿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기도하며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한 번 해 보고 그만 포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처음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세상으로 내 보내셨을 때에는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능력과 권세가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과는 다른 그들입니다. 오직 그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놀라운 은사를 받은 사도들조차 능력 있고, 효과적인 사역을 하려면 끈질기게 주를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위로가 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더욱 주를 의지하게 하도록 주님은 그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 응답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합니다.
    20절에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양(quantity)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질(quality)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습니까? 분명히 제자들이 그만한 믿음은 있었습니다. 믿음이 전혀 없었던 제자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아도 문제는 겨자씨처럼 살아있어서 물을 먹고, 양분을 취하면서 열매를 내는 믿음이냐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산을 옮긴다는 것도 문자적으로 믿음으로 내가 산을 명하여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으로 우리 앞에 놓은 산 만한 어떤 큰 장애물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21절이 빠져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셨습니다. 다른 성경 사본에는 금식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너희가 끈질기게 끊임없이 주를 의지하고 기도하면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끈질기게 기도한다는 것은 그렇게 주를 의지한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6하)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눅 11:8)고 하시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11:9-10).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 18:1) 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을 만난 한 과부의 강청을 비유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완전히 헌신되고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끈질기게 드리는 기도가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며 좋아하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어떤 믿음입니까?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능력 없는 작은 믿음입니까? 비록 겨자씨 만해도 생명력이 있어 능력을 나타내는 믿음입니까? 어떤 큰 장애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끈질기게 붙잡고 간구하여 이겨내는 믿음입니까? 제자들처럼 전에는 그런 능력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며 매달리며 사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 말씀 생활, 예배 생활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영적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이기며 능력 있는 삶을 사는 데에 지름길(shortcuts)이 없습니다. 제자들도 분명히 과거에 했던 것처럼 올바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가며 했지만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살려는 마음이 적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적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장애가 놓여 있습니까? 산처럼 높고 커서 막막합니까? 본문 사건 이야기의 중간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 9:23)고 하였습니다. 확신하고 비록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라도 능력 있는 믿음을 갖고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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