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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0-19 (화) 01: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71    
[10/17/1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요한복음 6:41-59)
헤밍웨이가 쓴 유명한 소설 ‘노인과 바다’를 보면 노인이 자면서 자주 꿈을 꿉니다. 주로 자신이 젊었을 때 배를 타고 아프리카 해변을 지나갈 때 해변에 나와 놀고 있는 사자에 대해 꿈을 꾸기도 하고, 어느 흑인과 팔씨름 내기를 했는데 얼마나 팔 힘이 세었던지 하루 꼬박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팔씨름을 해서 결국 흑인을 이기는 꿈을 꿉니다. 노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를 자꾸 꿈을 꿉니다. 사람들은 늙으면 늙을수록 옛날을 꿈꾸면서, 추억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한 이야기를 또 하곤 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젊은 상태에서 살 수 없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원했던 것 아닙니까? 특히 몸에 병이 들거나, 가족이나 이웃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을 때에는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그런 영원히 사는 세계가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젊은 상태에서 살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사는 세상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폐쇄된 세상만 알고 있기에 이 세상 사는 인생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살펴본 내용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떡,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참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유대 군중들이 수군거렸다고 합니다(41절). 여기 ‘수군거리다’라는 단어 원어는 ‘불평하다, 투덜거리다’라는 뜻입니다. 불만이 가득차 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받기 전과 또 받은 후에도 불평했을 때 사용한 단어인데 70인역에서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와 같습니다(출 16:2, 8-9, 민 11:4). 즉 그 당시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수군거린 내용은 ‘자기들이 아는 예수는 그 부모를 잘 아는 요셉의 아들인데, 지금 하늘로서 내려왔다니 무슨 말이냐’(42절) 라고 하면서 야유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며 이미 37절부터 40절에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요약하여 44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셔서 이끌어 주시는 자는 다 예수님께 와서 생명의 떡을 먹고 구원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45절)고, 이사야서 54장 13절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심령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듣고 배우지 못하여서 예수님께 오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의 교만과 편견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영생에 대하여 또 다시 교훈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47-50절)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오래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죽은 후에 있는 영원한 삶을 모르고 육체적으로만 오래 사는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생명의 떡을 먹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라는 말씀은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늙어가고 죽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롬 5:12).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주어진 이 육체만 가지고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서 한평생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만약 죄가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영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죄의 사슬을 풀어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영생을 누리고, 죽은 후에도 영생을 누립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우리의 속 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점점 새로워지고, 감정도 아름다워집니다. 새로운 의지가 생깁니다. 새 생명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고 하였습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영생을 얻으려면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고 또 말씀하십니다(51절).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비록 하늘나라를 맛보게 하는 떡이었지만, 단지 이 세상에서 굶어 죽지 않도록 목숨을 연장시켜주는 떡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하려면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많은 유대인들이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영생하고는 싶은데, 그러려면 예수님의 살을 뜯어 먹어야 한다니,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님의 살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냐’ 하면서 서로 다툽니다(52절). 혹은 예수 자기가 뭔데 자기 살을 먹게 하여 살 수 있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53-55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무슨 드라큘라나 식인종들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뜯어 먹고, 그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니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우리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린 것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삶을 누린다고 하는 것이 단지 예수님의 사상, 철학을 배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 아가페 사랑에 감동받는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외에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영생하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의미가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성찬식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여기 먹고 마신다는 동사의 시제가 현재가 아니라 단순과거 혹은 부정과거입니다. 과거의 일회적으로 있었던 사실입니다. 즉 이 영적 체험은 한번 일어나는 것으로,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이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모르는 것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말씀을 여러분이 깨달아 알게 되었다면, 반응을 보이셔야 합니다. 알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 책임입니다. 언젠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날이 옵니다.
   왜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수군거리기만 했을까요(41절, 61절). 생명의 떡에 대한 굶주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들어 다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자기가 죽어있는 줄 모르거나, 그 사실을 의심하여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아마 아직도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서 여유를 부리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위암인데 그냥 소화불량 정도로만 알고 지내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모르니까 태평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어 이 병원 저 병원 뛰어 다닙니다. 왜 이전에는 뛰어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까? 자기가 무서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복은 자신이 죽을 죄인인 줄 알고 예수님에 대하여, 생명의 떡과 피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마 5:6)고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름을 체험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재물이나 명예, 정욕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은혜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 진리를 빨리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으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 말씀의 중요성,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 주님 앞에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충성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는 영적인 갈급함을 통하여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입니까? 어느 성도가 능력있는 성도입니까? 항상 주님의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름이 있고, 주님께 충성하는 일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성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시며 배부르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여러분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은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그렇게 십자가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이 시간까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였으면 바로 오늘 이 시간에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게 됩니다. 아 멘!!
이미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여러분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인생은 끝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했어도 지금 잘못하면 상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그 나라로 부르실지 모르기에 오늘이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잘못했어도 오늘, 앞으로 잘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으로, 복된 인생으로 마무리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지속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 주리고 목마르시기 바랍니다. 채워주시는 은혜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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