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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8-23 (월) 21:4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38    
[8/22/10] 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주님
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주님 (요한복음 5:24-30)

    여러분들 생각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마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믿는 우리들이 모두 인정하듯이 바로 예수님보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예수님의 가치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모릅니다. 다른 것들은 다 일시적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하여 그렇게 무관심하게 살거나, 주님을 짓밟고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나중에 후회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인간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큰 질문은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후에 다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을 가르쳐서 인간은 전생에 짐승이나 벌레, 어떤 식물이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혹은 인간이 죽었다가 짐승이나 벌레로, 혹은 어떤 식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영적으로도 다시 태어나고, 육체적으로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욥 19:26, 계 20:11-15). 영적으로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죽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혼이 새로 태어나 새 생명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참고- 롬 6:4)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도 주님 재림하시면 다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마 22:29-32, 25:41,46, 눅 14:14, 요 6:39).
    오늘 본문이 이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데, 우리 예수님이 의로운 심판주이심을,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이 어떤 심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강조하시면서,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신 후(17절-23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인간을 심판하실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27절에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약에서 다니엘 선지자에게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종종 예수님을 ‘인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종말론적인 예언서에서 ‘인자’라고 할 때에는 심판하는 주님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의 전 인류를 놓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자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자를 갈라놓는 권세를 그 아들 예수님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심판하되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심판하시기에 의로운, 공정한 심판이라고 하십니다(30절).
    그러므로 38년 동안 병자로 살다가 주님의 말씀으로 고침을 받고 자유롭게 걸으며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으로 살아야 하겠기에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기준이 예수님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믿는 반응을 보인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어서 영원히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며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받아 영원히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영적인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영적인 부활을 의미합니다. 24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Amen) 진실로가 두 번이 나오면 강조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영생을 얻었다는 동사는 우리 말에서는 과거 시제이지만, 원어에서는 현재 시제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지금 소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육체적인 생명은 가지고 있어서 숨도 쉬고 먹고 마시며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없습니다. 즉 영적으로 죽었으니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능력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모두 다 죽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기 전에는 다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져서 영적으로 산, 부활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심판이 앞으로 없다고 하였습니다.
    25절에서 예수님은 이 진리를 다시 부연 설명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기 듣는다는 말은 그저 귀로만 건성으로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의 귀에 주님의 음성, 복음이 들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을 이 사랑의 음성을 듣고 믿으면 살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26절).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그 아들 예수님에게도 그 생명을 소유하게 하여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런 말씀은 나중에 일어날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믿으면 새로 태어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반면에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계속 영적으로 죽은 상태, 영적 심판을 이미 받은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든 인간이 맞이할 최후의 심판도 있습니다. 육체적인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미 죽었던 자들도 그 육신이 부활을 합니다(28-29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최후의 심판 때에도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납니다. 여기 무덤 속에 있는 자는 육체적으로 죽은 모든 자를 가리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지금 듣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때는 최후의 심판을 위하여 듣는 것입니다. 살아나라는 명령이겠지요.
    그 최후의 심판의 기준을 2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 선한 일을 행한 자라고 하는 것이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한 일, 열매를 말합니다. 반면에 악한 일은 원어에 의하면 빛 되신 주님을 미워하여 상습적으로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요 3:19-20).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은 다 악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 책 끝 부분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1-12)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속 마음을 다 꿰뚫어 아시고, 그 믿음 따라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심판은 때때로 오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에게는 오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 원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30절). 그래서 의로운, 공정한 심판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삽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목사님에 의하면 지옥에 가면 사람들의 전부 다 ‘걸걸’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누가 자기에게 전도를 할 때 믿을 걸, 친구가 예수를 믿자고 할 때 믿을 걸 하며 영원히 후회의 나날을 보낼 것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으로 믿기만 하면 당장 영원한 생명이 축복으로 임합니다. 새 생명으로 여러분의 영혼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지금 당장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이 있는 날에는 자기 운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설마 하다가 영원히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으십시오. 마음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아니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믿으시는 여러분!
   이미 시작된 예수님의 심판에 의하여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갈 2:20). 그러니 얼마나 가치가 있는 여러분들입니까?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깨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 주위의 계신 성도님들도 다 여러분과 같이 귀중한 분들입니다.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최후의 심판의 시간에 우리는 육체적인 부활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 때가 되면 우리 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처럼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죽음 가운데서 헤매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에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고 살아 갑니까? 여러분의 집을 무엇으로 쌓고 있습니까? 불 심판이 임할 때 다 사라질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쌓고 있습니까? 아니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이 타지 않을 것들로 쌓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마지막에 남는 것들을 말합니다. 나중에 우리 주님과 계산되어 질 것들입니다.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다 없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 야망을 버리십시오. 쓸데없는 고집이나 생각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십시오. 우리에게 이미 영생은 주어졌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께 의존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없어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틈도 생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연약한 육체로 살아가지만 그 얼굴들은 환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살까요? 우리 주님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란과 핍박 중에 생명을 바친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가치를 알았기에 몸 바쳐 영혼들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정말 나중에 남는 일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그렇게 내 몸처럼 사랑한 것 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 가치 있는 일에 삶의 전부를 투자하고 살아갑니다. 날 위하여 몸 버려 주신 우리 주님의 사랑에,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았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에게도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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