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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5-07 (금) 07: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27    
[5/5/10] 수요예배 - 믿음으로 간절히 부르짖음
믿음으로 간절히 부르짖음 (마태복음 9:27-31)
미국에서 크게 부흥한 교회들 가운데 California 의 Chuck Smith 목사님의 Calvary Chapel 이 있습니다. 그 분의 제자들이 개척한 교회가 미 전역에 수백개가 넘는데, 각 교회들마다 천명이 넘는 교회들이라고 합니다. 이 교회의 부흥 이유를 분석해 보면 첫째는 단순한 조직입니다. 복잡하지를 않습니다. 그저 지상대사명 성취를 위한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강해설교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쭉 강해를 합니다. 딴 소리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 가르칩니다. 셋째는 재림신앙의 강조입니다. 목사님 스스로 자신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모두 주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긴박감과 애절함이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미치지 않고는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생, 청년 시절에만 해도 제 주위에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에게 미쳤다는 표현을 그만큼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에게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거기서 나오는 집중력과 열정을 누가 이기겠습니까? 영적 부흥은 우리의 경험, 실력,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영적인 몸부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우리 주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런 두 소경, 시각장애인들이 나옵니다. 27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있는 야이로의 집에서 그 딸을 살려주신 후(23-26절) 떠나시는데 두 소경이 구원을 바라며 간청을 합니다. 옛날에는 눈이 멀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눈병이 나도 약이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간단한 항생제라도 있었으면 소경이 되지 않을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중동 지방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걸린 눈병이 빨리 낫지 않으면 시력을 잃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잘 먹지 못하여 영양 부족이나 사고로 시력을 잃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여튼 이 두 소경은 계속 주님을 쫓아다니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앞이 안보이니 자신들이 얼마나 주님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소리를 지릅니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고 죽기 살기로 미친듯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부르짖음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주님에 대해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주님을 메시아로 시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약속된 메시아에 대한 가장 평범한 유대인들의 명칭 중에 하나입니다. 위대한 다윗 왕의 뿌리에서 메시아가 나오며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호칭입니다. 신약은 계속 반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그의 나라를 세울 다윗의 자손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요 7:42; 행 2:29-30; 롬 1;3; 딤후 2:8; 계 5:5; 22:16). 두 소경의 이 고백을 들은 주위의 유대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들었던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 공적인 자리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할 약속의 메시아’로 시인하며,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도 나왔던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바른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소하기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함으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단순한 육체적인 고침뿐 아니라 죄 용서함의 긍휼을, 자비를 구하고 있는 듯한 것입니다.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기 위하여 갈급한 심령으로 나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8-9), 혹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3)와 같은 말씀을 들어 왔던 것 같습니다. 즉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인간으로서 마땅한 태도로 주께 나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주께서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자신이 의인인 양 교만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고치고 회복시키시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28절을 보면 이러한 믿음의 두 소경을 금방 고쳐주지 않으시고 아마 베드로의 집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십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합니다. 거기까지 좇아 들어온 끈질김을 보면 믿음의 인내도 대단한데, 분명히 참 믿음인 줄 아시면서도 물으시는 질문은 이상하리만치 심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아마 한 번 더 확인하시면서, 그 집에 모여든 여러 사람 앞에서 공공연히 그들이 믿음을 나타내시라고 요구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두 소경의 과거에 대하여 묻지 않으셨습니다. 형편이 어떤지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높은 지위에 있는지, 천한지, 아니면 많이 배웠는지 무식한지 이런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관심, 즉‘믿음이 있는가?’입니다. 즉 믿음을 보실 뿐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 두 사람은 ‘주여 그렇게 믿습니다’고 고백을 합니다. 즉‘능히 그 일을 하실 줄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시인합니다’라는 대답입니다. 이런 고백이 진실이라면 엄청난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두레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퍼담을 수 있는 두레박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은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부자이고 명예가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믿음은 한가롭게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사실 주님은 소경들의 육적인 고통에 대한 사랑의 동정이 크지만, 사실 영적으로 잃어버렸던 영혼에 대한 사랑이 더 크십니다. 육적으로 고침을 받아도 영적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시험하신 질문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오늘 여러분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심령을 고쳐주실, 죄를 사해주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주님으로 믿습니까? 그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두 소경의 대답을 들은 주님께서는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29절)고 하십니다. 즉 개인의 믿음에 따라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이어서 육신의 고침도 허락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신을 고치시는 기적은 당사자의 믿음과 관계없이 행해진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두 소경의 믿음을, 저들의 주님에 대한 신뢰를 인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진 후에 저들에게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0절). 이상하지요.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건을 목격하였으니 분명 그 소문이 퍼질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자신을 공식적인 메시아로 선포하기에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소동이 나게 되고, 아직은 골고다 십자가를 지실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주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지만, 눈이 밝아진 기막힌 기적을 체험하고 난 후, 구원을 체험하고 난 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을 절제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악한 마귀들의 견고한 진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건성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강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말입니다. 죽기 살기로, 미친 사람들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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