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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09-12-18 (금) 01: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89    
[12/16/09] 수요예배 -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전 7:15-29)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그 방법은 다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에 우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서 기꺼이 도움을 받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난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실제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부지런히 찾아가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일단 한번 믿고 맡겼으면 끝까지 그를 믿고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방 결과가 안나오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도자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너무 중요한 사고방식의 전환입니다. 15절에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 장수하는 의인이 있으니”라고 합니다. “내 헛된 날”이란 전도자의 과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전도자도 자신의 가치를 몰라 방황하고 헤매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암흑기입니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사용했던 시간들 말입니다. 남이 공부하니까 공부하고, 남이 일하니까 자기도 일하고, 남이 결혼하니까 자기도 결혼하고, 남이 애를 낳으니까 자기도 애를 낳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기간에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무지와 미신입니다. 알지를 못하니까 전에 들어왔던 말이 마음에 굳어져서 신념이 되어 따라갑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면 자기 생각이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어있습니다. 즉 독선과 아집으로 일시적인 충동이나 분노에 따라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독선과 아집을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위대한 생각의 전환은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책을 가르쳐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전도자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인이라고 반드시 잘되는 것이 아니고, 악인이라고 금방 망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성공하고 양심대로 행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16절도 살펴보면 지나치게 의인이나 지혜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옳게 생각하는 것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내 생각이나 판단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비로서 외부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고집을 버리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더라는 말입니다.
또한 “지나치게 악인이나 우매자도 되지 말라”(17절)고도 합니다. 이것은 독선과 아집의 다른 극단을 말하는것입니다. 아예 자신을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일종의 자포자기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는 극단적인 양면은 고집과 자포자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교만해서도 안되고, 자포자기한 채 되는대로 살아가도 안됩니다. 그 말씀이 18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극단적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 극단적인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면, 두려워하면 자신이 미련하고 부족한 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리가 없으니 마음과 생각에 혼돈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부터는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열명의 유사들에게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19절). 유사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어려운 문제를 재판하고 판단해 줍니다.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아주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인생의 궁국적인 가치는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세상에 완전한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20절; 롬 3:23).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도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아닙니다. 사람의 선은 상대적일 뿐입니다. 모두 모순 속에 살고, 어리석음 속에 헤매고 삽니다. 그저 좀 나은 수준에서 헤매던가, 더 바닥에서 헤매던가 그 차이입니다. 좀 착해 보여도 악한 충동이 생기면 죄성 때문에 금방 악한 자로 변합니다. 즉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사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선해서가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더 악해지도록 막아 주는 것은 양심과 체면입니다. 그들도 양심과 체면을 버리면 짐승처럼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 죄를 씻으면 죄에 대한 수치심이 생겨, 다른 사람이 보던 보지 않던 죄 짓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선한 마음과 생각을 불어 넣으십니다. 셋째로, 이 세상 사람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21-22절). 사람은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서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태도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정중하게 대하면 자존감이 높아가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함부로 대하고 욕하면 자존감이 파괴되어 비참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21절에 자신의 종도 저주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저주해 보왔고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기들의 기준에 따라서 말하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하 평가일 수 없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평가는 거울로 말하면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습니다.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남이 하는 말을 참고는 해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오히려 자기가 남을 대하는 태도가 자기 상태를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자기 상태가 좋은 것이지만, 남의 잘못을 따지며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너무나도 흉한 상태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우리가 쉽게 소유하게 된 것은 몇 백년 전부터 입니다. 독일의 쿠텐베르그가 1455년에 처음으로 성경을 인쇄한 후 1800년대에 들어와서야 상용화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늘날은 인터넷으로도 성경을 보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성경을 쉽게 대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진리를 캐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도자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23절). 하나님의 지혜를 맛보고 그것을 더 얻기 원했는데 오히려 멀리 하더랍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진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교회를 통해 주어진 것입니다.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비롯한 말씀이 주어졌고, 신약에서는 두말할 나위없이 대부분 초대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무궁한 진리를 캐내는 금광의 입구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금을 캐는 광부의 심정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가 지혜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보석으로 가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캐내는 것이 원석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치를 가지려면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완전히 녹여 자기 보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가진 사람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다릅니다. 지식은 성경공부를 통해 얻지만, 지혜는 삶 가운데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며 부딪치며 실패하면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24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로 만드는 것,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경을 무시하고 영지주의자들처럼 꿈이나 환상을 더 믿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꿈이나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꿈은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 표출되는 것으로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던 온갖 생각들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전도자는 25-2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깨닫고 말합니다. 이유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미친 것 즉 무지나 미신과 인간의 광기입니다. 이를 빗대어 28절에 말하기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언뜻 보면 남자 중에는 그래도 지혜자가 있지만, 여자 중에는 전혀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 남자나 여자는 다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남자는 세상의 지혜를 말하고, 여자는 육체의 정욕을 말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아주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정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정욕을 피한다고 했습니다(26절하). 즉 세상을 바르게 사는데 정욕적으로 방탕하게 사는 것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초점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데는 정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세상 지혜도 그저 약간의 도움이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올바로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를 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29절).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여 아무리 연구하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해도 인생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부지런히 예배와 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진리를 갈고 닦아서 자신의 보배로, 삶의 지혜로 만들 때 진정으로 부요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 구하십시오. 여러분 주위의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응답하십니다. 다만 세상적인 지혜에 목매달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완전한 의인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리로 문제들을 해결하며 부요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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