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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2-15 (월) 22:0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82    
[2/14/10] 말씀과 생명의 빛에 대한 반응
말씀과 생명의 빛에 대한 반응(요 1:6-13)
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광고를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말씀과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달라집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경우의 놀라운 축복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곧 하나님이요, 생명의 빛이심을 1-5절까지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 세상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취기만 하면 많은 사람이 그 빛을 반갑게 환호하면서 맞이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빛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에게 이 빛을 설명하고, 증거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기에 빛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빛인 줄 모르는 영적 소경인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6-7절)고 하였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에 대하여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도 세례 요한에 대하여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권세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된 사명은 바로 생명의 빛, 참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8절). 하지만 아무리 권세있는 설교가라도 결코 빛이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종,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종이었습니다.
증거하는 이유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서’ 라고 합니다. 바로 이 생명의 빛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믿게된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까?
세례 요한이 그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믿으라고 증거한 내용은 첫째, 이 세상에 참빛, 각 사람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9절). 둘째는, 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은 오래 전에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는 것입니다(10절). 세상에 그를 알만한 일반은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는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1절). 세례 요한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중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말씀과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에 대한 불신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2-13절)고 증거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증거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믿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누구든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자신의 축복입니다. 믿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친아들처럼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고 믿는다는 것은 특별한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40일만에 승천하시고 약속대로 성령을 주셨고, 훗날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예수님께 다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12절에 권세라는 말은 당당한 자격,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인정받는 자격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 천사들조차 우리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이 진리를 13절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과거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자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마귀의 종으로 어두운 감옥에서 살다가, 죄의 쇠사슬이 풀려나서 이제는 의의 종 노릇을 하게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믿는 자들이 이렇게 된 것은 결코 “혈통으로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혈통으로 나지 아니한다 함은 부부의 결합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낳지 못함을 말하며, 육정으로 나지 아니한다 함은 육체는 하나님의 자녀를 낳지 못함을 말하며, 사람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그 외의 인간적인 원함, 노력을 말합니다. 세상에 육신적으로 태어남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남으로 다 죄 아래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 만나서 왕족으로, 귀족으로, 돈이 많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는 죄의 종입니다. 영적 소경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고 하였습니다. 즉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영적인 눈이 뜨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영안이 열리기 전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체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교회를 다니는 것과 영적으로 살아 믿음을 갖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년을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가롯 유다도 그랬듯이, 교회를 오랫동안 들락날락하면서도 전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르는 영적 소경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도 구원 받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선행을 많이 해도 구원 받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영안이 열리지 않으신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이 시간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전혀 구원 받지 못할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셔서 그 귀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그것이 곧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믿어져서 수용이 됩니까? 그렇다면 ‘할렐루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옛 본성이, 죄성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새 본성이 창조되어 여러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저 단순히 진리를 머리로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리를 가슴으로 체험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오늘날의 세례 요한이 되셔야 합니다. 믿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증거하는 자가 있어야만 듣고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은“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3-14)라고 했습니다. 전파해야 합니다.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을 감당하려면 우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안이 열리게 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만난 체험이 없으면 전할 수가 없지요. 성경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서 만난, 성령의 역사로 체험한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감동이 있지요.
그런데 증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들이 체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만 믿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엡 2:8-9). 오늘 본문의 13절 말씀이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역사, 기적이지요. 그래서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상징하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기도만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본인도 용기가 생겨 생명의 빛을 전할 수 있고, 성령이 내가 전할 사람에게 역사하여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세, 태도도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부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제자로 따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다. 나는 그저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자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신 끈을 풀기도 부족한 사람이다’, ‘그는 잘되어야 하고 나는 잘 안되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자기에게 주목하는 관심들을 다 예수님께 돌려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증인들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눈에 띄게 드러나 버리는 바람에 복음 자체,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 있는 대단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면서 ‘이만큼 대단한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증거하는데 . .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참된 증인은 자기가 증거할 대상인 예수님에 관심이 쏠리게 하지,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성경은 연약한 자들, 보잘것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세가,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잘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존심과 고집을 다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고,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면 내가 이해가 안 되어도 그렇다고 끄떡끄떡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니 자녀로서 당연한 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반응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무슨 말에든지 어떻게 반응을 하는 가가 여러분의 앞날을 좌우합니다. 특히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 생명의 빛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은 얼마 지나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입니까? 한 나라의 왕의 아들이어도, 대통령의 아들이어도 그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할텐데, 하물며 온 세상의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시는, 다 알고 계시는 분이 아버지이신데 무슨 염려를 하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상속으로 받는 아들입니다. 믿음으로 선물을 받은 것 밖에 없는데 주신 축복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자신감을, 자긍심을 가지고 사십시오.
다만 그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증인으로 사십시오. 생명의 빛을 반사하며 사십시오. 여러분의 기도와 증언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살게 될 하나님의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세례 요한처럼 겸손히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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