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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0-17 (목) 10:5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067    
반석 같은 하나님의 사랑(신 32:1-14)
32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날을 위한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하는 노래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위기를 만났을 때 기억하고 다시 불러보아야 할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반석 같은 사랑을 기억하라고 다시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1-2절)라고 시작합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하는, 하늘과 땅이 증인이 되어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하늘과 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니 자신의 말씀에 충분한 증거가 되는데,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보다 더 영원한 것입니다(사 40:8). 즉 영원한 효력과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팔레스틴 땅은 주로 가뭄이 있기에 내리는 비와 이슬이 농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백성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거나 이슬조차 내리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었고, 먹을 것이 없어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리는 비와 이슬이 내리면 풀이 자라고, 채소들이 잘 되기에 그야말로 축복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백성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물이 없어 죽게 될 때 모세의 노래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교훈,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고, 땅에 이슬이 맺히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서남북을 살펴보아도 도저히 살 길이 없다고 생각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단비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마치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나는 것처럼 살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신실하신 반석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3-4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성품들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안다면 그 위엄, 위대하심을 하나님께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은 반석입니다. 사람들은 늘 변덕을 부리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백성들을 사랑하며,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마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동하지 않는 바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다윗은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 61:3) 라고 하였고,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시 94:22)고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절하)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진실하시고, 실수가 없으시고, 공평하시며,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이런 분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배역하고 악을 행하게 되니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5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라고 할 수 없는 패역한 종자라는 표현입니다. 자녀와 사생자나 노예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자녀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가 있어도 남들이 아버지를 욕하거나 자기 집을 망하게 하려고 할 때에 못하게 막거나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 편이며,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사생자나 노예는 겉으로는 시키는 일을 잘 한다 해도 결국 자기 이익만 챙기고 집안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아버지가 욕을 먹어도 자기에게 별 관계가 없으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배반하고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자신들이 불리하게 되어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유익할 때만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책망을 합니다. “우매 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6절).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큰 위기를 만나 자초하고 맙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서 결사적으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믿고 그저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과거의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라고 합니다(7-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부터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기업을 주시고 인종을 나누어 주실 때에도 그 자손의 수효대로 나누어 주셨셨다고 합니다. 열국의 중심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합니다.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하)고 하신 복의 근원,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복이 넘쳐서 세상이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나라며,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는 세상이며, 하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들러리일 뿐입니다. 우리 믿는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곧 우리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복을 빌면 복이 임하고 우리가 저주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믿는 자들에게 복이 넘쳐야 세상으로 흘러 들어갈 복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믿는 자들이 복을 받지 못하면 이 세상도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말씀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차고 넘쳐야 이 세상도 복을 받게 됩니다.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야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됩니다. 이 구속 역사의 중심에 교회가 있으며,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을, 오늘의 우리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십니다(사 43:1; 엡 1:3-14). 성령의 인을 치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기업이, 백성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을 보호하시기를 황무지에서 만나는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지키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밤에는 사나운 짐승들의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아니 주위의 이방민족들과 나라들이 사나운 짐승처럼 공격하여 물어뜯으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대국들이 그들을 잡아먹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눅 10:3)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 사나운 짐승들이 언제나 어슬렁거리면서 물어 뜯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물려 죽지 않는 것은 목자 되신 주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치 독수리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새기들을 날개를 펴고 안전하게 받아내면서 인도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기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기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은 없었도다”(11-12절)고 하였습니다. 독수리는 절벽 끝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튼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서 나온 새기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훈련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둥지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모두 없애버리고 하나만 남겨 두어서 독수리 새기가 그 가지 하나에 서 있을 수 밖에 없게 합니다. 그러다가 바람에 흔들려서 아래로 떨어지면 살기 위해 허공에서 날개 짓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어미 독수리가 즉각 받아주지를 않고 거의 땅에 부딪치기 직전에 쏜살같이 내려가서 새기를 받아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 훈련을 수 없이 반복하게 해서, 나중에 새기가 혼자 힘으로 공중으로 날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어미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훈련시키시는 방법이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하여 떨어지게 되나 죽기 살기로 날개 짓을 하다 보면, 말씀과 기도로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등에 올라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온 힘 다해 날개 짓 하는 것이 싫다고, 귀찮다고 말씀과 기도하지 않으면 맨 땅에 떨어지는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먹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젖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13-14절)라고 합니다. 먼저는 하늘의 음식, 영의 양식을 먹게 하십니다. 13절의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마 4:4)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생만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풍성한 것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굶어 죽는 것을 그냥 보시는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나오는 음식들은 당시 가장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들로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이렇게 좋은 것을 먹이실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아직 죄성이 남아 있어서 세상의 좋은 것들의 복을 받으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어지고 세상 것을 자꾸 즐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오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입니까? 정말 요동치 않는 반석 같아서 변함없이 우리를 향한 신실한 사랑을,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분의 자녀답게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과거에도 우리에게 그렇게 역사하셨던 분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절상)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사나운 짐승을 만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공중에서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자식을 품듯이 품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열심히 날개 짓만 하면 됩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를 채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적, 육적인 필요를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그저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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