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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4-20 (월) 23: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10    
[4/19/09] 두려움이 엄습할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시편 46:1-11)
우리 인생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종종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처럼 경기가 나빠 경제적으로 힘이 들면 이러다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지 않나, 사업이 더 안되어 각종 bill 을 못 내면 어떻게 하나, 어떤 사람들처럼 집이 은행으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혹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이나 자녀들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 갑자기 찾아오는 암이나 질병으로 인한 두려움 등 말입니다. 혹은 영적으로 사탄의 공격이 너무 심한 가운데 홀로 싸우며 이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오늘 시편은 정확히 어느 시대에 쓰였는지 모르지만, 성경신학자들에 의하면 남쪽 유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쳐들어 왔다가 죽임을 당한 때가 아니면, 여호사밧 왕 시대에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쳐들어 왔을 때에 그들을 물리치고 나서, 제사장 레위 지파의 고라 자손 중 어떤 사람이 지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예루살렘 성이 철저하게 고립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목격한 이 시편기자의 신앙고백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종종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묵상해야 할 시편입니다. 영적 전투를 할 때에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시는 분입니다(1-3절).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위하는(for)’이란 의미가 사라졌습니다만, 히브리어 원어에 의한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오, 우리를 위하는 힘이시다’ 입니다. 피난처(refuge)란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방어해주는 곳을 말합니다. 안전을 위하여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피난처가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7절, 11절).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내적으로 잘 참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2-3절)고 합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린다는 것은 큰 지진을 의미합니다. 큰 지진이 한번 일어나면 땅이 변합니다. 그런 지진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성이나 집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전합니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나고 요동을 해도, 심지어 쓰나미가 몰려와 바닷물이 흉용해서 온 땅에 넘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양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0:7). 들에 방치되어 있는 양들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주위에 늑대와 같은 맹수들이 있고, 도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양의 우리(the sheep pen)에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우리’의 영적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울타리입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 바깥으로 벗어나면 위험합니다. 대게 사람들의 정신이나 생각에는 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분별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염려와 두려움의 홍수에 떠밀려 가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외의 말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을 잠그고 문 안에만, 예수님 안에만 들어와 있으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만 들어와 있으면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은 돈이나 다른 세상 일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붙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고 정직하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되면 온 세상이 덤벼들어도 절대로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고, 성도들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셔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게 하시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앞장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고, 인도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느냐, 내가 앞서느냐’는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잘 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안다면 절대로 내 마음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과 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4-1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결코 그 어떤 두려움이나 어려움 속에 혼자 두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4-5절)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에는 히스기야 왕 때에 건축한 물길이 있었습니다. 기혼에서부터 시작하여 실로암 연못에까지 이르는 시내입니다. 광야에서 시냇물은 곧 생명을 뜻합니다. 그런 성소를 드나드는 자들이 마땅히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성 안에 생수의 근원이 있어 생수가 흐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5절에 하나님께서 이 성 중에 거하시기에 요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성 밖에 적들이 많이 몰려와도 그 적들보다 더 강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요동하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이야 어려움이 닥치면 마음이 불안하여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이 어려운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잘 될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당장은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그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태우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물이 배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인 이상 두려웠겠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이 옆에 계신데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을 이겼어야 했습니다.
한편 본문 5절 하반절에 왜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하였을까요? 밤은 악한 자들로 하여금 마음껏 떠들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다가 새벽이 오면 악한 자들의 시간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라고 한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밤에 떠드는 소리를 듣고 계시다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니 한 순간에 망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이쯤 설교를 들으면, ‘그래,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정결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겠지. 나같이 믿음도 별로 없고, 약한 사람, 때때로 넘어지는 사람들에게야 함께 하시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7절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라고 합니다. 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을까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환도뼈가 부러진 후,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변화되었었는데, 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말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실수 투성이의 연약한 우리와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속이는 자, 속임 당하는 자, 실패자’의 대표가 아닙니까? 그런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도저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니 은혜이지요. 나 같은 죄인에게조차 함께 하시며 피난처가 되시니 은혜이지요. 그 은혜로 나의 대적들을 대신 물리쳐 주시니 감사하지요. 시편 기자는 계속 외칩니다. 와서 보라고 말입니다.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땅을 황무케 하였도다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는도다”(8-9절)!
한번 큰 시험이 있고 난 후에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보상을 해 주십니다. 부흥의 시기를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성도들을 힘들게 하시는 분 아니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upgrade, 진보를 위하여 연단하시며, 여러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은혜를 사모하기만 하면, 그 때에는 자신과 가정, 교회 위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볼 때가 옵니다.
그래서 정말 시련이 없이 좋은 날들로 축복의 일들만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꿈만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의 활과 창을 꺾으셔서 전쟁을 없게 하십니다. 수레도 불사르시기에 대항할 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 높임을 받으리라”(10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라고 하셨을 때가 언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앞에 두고 원망할 때입니다(출 14:13).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이 순간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 스스로 구원하실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홍해 바다 속에 고속도로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 때에는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저 기도하며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본문의 마지막을 7절과 똑 같은 말로 11절에 맺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The Lord Almighty)’라는 우리 하나님 이름의 뜻은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와 모든 자원을,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온 세상이 덤벼들어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두려움이 엄습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보다도 크시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에 돌아가신 필라델피아의 유명한 제 10 장로교회 James M. Boice 목사님의 시편 주석에서, 그는 이 시편을 마르틴 루터의 시편이라 했습니다. 이유는 종교개혁이 왕성할 때에 루터는 때때로 어려움을 겪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 때 이 시편 46편을 묵상하며 시를 쓰고 곡을 붙여 친구 필립 멜랑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용기를 내었다고 합니다. 바로 찬송가 384장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나 자신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무리 두려운 상황이라도 지키시며 평안과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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