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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1-30 (금) 00:39
분 류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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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002    
거룩한 백성으로서(신 23:1-14)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고,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다 기도 응답을 받으며, 부흥을 일으키며 사탄,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을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체 적으로 복을 받으려면 어느 한 두 사람이 뛰어나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부패하여 부정하면 하나님의 복이 그 사람 때문에 중간에 막히거나 새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한 사람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믿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복이 임하려면 바로 나 한 사람이 은혜를 받아 거룩해져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들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1-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총회”라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모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여호와의 총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많은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을 탈출했고 지금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총회”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이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전체 모임을 여호와의 총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모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이 있고, 수많은 천군 천사들의 무리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일 때 우리는 우리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수많은 천군천사들과 함께 합니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여호와의 총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에서는 ‘거룩한 공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총회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빠지는 그 시간에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기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남성으로서 모두 성기에 이상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구절의 깊은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올바른 성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총회에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이미 2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 생활을 문란하게 하면서 예배에서 은혜를 받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남자들은 언약 백성의 표시로 성기에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기가 손상된 사람은 할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성기가 손상된 사람들일까요? 우리나라 옛날에 궁중 내시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지요. 허나 당시 이방신에게 바쳐진 자들이 성기를 손상시키는 전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미 이방신에게 바쳐서 성기에 손상을 입은 자는 이미 마귀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의 사고방식이 그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가 박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예배를 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생자도 여호와의 총회에 십대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생자는 부모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닌 경우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생자 본인으로서는 참 억울한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하나님께서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안에 있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음란한 성향을 인정하지 않고 위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하는 자를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10대까지 기다리는 이유는 예외가 있겠지만 보통 음란한 피가 깨끗해지려면 열 번의 세대가 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바람을 피워서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커서 바람을 피울 확률은 아주 높습니다. 그 음란한 성향을 완전히 끊으려면 그 아이가 철저하게 부모와의 육신적인 관계를 끊고 새로운 피조물로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사 입다입니다. 입다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창녀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였습니다(삿 11:1). 그런데 입다는 아버지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유산을 다 청산하고 집에서 쫓겨나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믿음으로 철저하게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좋지 못한 정신적, 영적 유산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부모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좋지 않는 것들을 다 끊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애굽 족속 사람들은 삼대 후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합니다(3-8절).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딸들의 후손입니다. 모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살아난 자들의 후손입니다. 문제는 그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아버지와 딸이 불륜으로 자식을 낳아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 조금이라도 믿음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을 고생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모압 땅을 통과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영접하고 돕기는커녕 메소포타미아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훼방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영영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이고 형제들이라 해도 믿음의 선한 영향을 받지 않고 시기 질투하며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등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 자손이라고 해서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못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외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모압의 모든 지위나 자격을 포기하고 개종하면 이스라엘 백성으로 귀화가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룻 같은 모압 여인입니다. 그는 모압 여인이었지만 다 포기하고 나오미를 좇아 이스라엘 백성으로 귀화하여 복을 받았고,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에돔도 마찬가지로 야곱 족속과 형제 관계였지만 믿음의 선한 영향을 거부하고 세상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압이나 암몬 족속들처럼 불륜의 자식들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서 믿음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삼대가 지나서야 들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세상의 교만이나 자랑을 버리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전쟁 중에는 더욱 정결해야 했습니다. “네가 대적을 치러 출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들어올 것이요”(9-11절)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에 임하는 데 모든 부정한, 불결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긴장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포자기하듯 문란하게 술을 마시거나 성적으로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남자가 몽설하는 것은 사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좋지 않는 생각을 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진 밖으로 나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목욕을 하고 진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잠깐이라도 좋지 못한 생각이나 음란한 생각을 한 것까지도 정결하게 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영적 전투를 해야 하는 우리는 깨끗하지 못한 생각이나 생리적인 현상을 잠시라도 아주 없앨 수 없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여 완전히 깨끗해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런 본능적인 일조차 철저하게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덕스럽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은 알아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이미 화장실을, 즉 변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12-13절). 당시 사람들에게 위생 관념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어디든지 화장실을 보면 그 나라의 문명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부터 3500여 년 전에 광야 생활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장실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광야에 무슨 화장실이 필요하겠는가 생각하겠지만, 사람이 엄청 많으면 배설물 처리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화장실을 만들고 삽을 두어서 각자가 변을 본 후에 흙으로 덮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전쟁 중에 이스라엘 진중에는 하나님이 돌아다니시는데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이 변을 보는 것은 생리적인 일로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게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14절)고 하였습니다. 적군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데,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해야 하나님께서 거기 계셔서 함께 하시니 전쟁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교제를 끊으신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 죄와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회개하여야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부흥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거룩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 레 11:44절 인용)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Jerry Bridges 는 그의 저서 ‘경건에 이르는 연습’에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거룩함을 설명합니다. 첫째, ‘정직’의 측면에서 거짓말과 도둑질과 속임수를 멀리 해야 합니다. 둘째, ‘화평’의 측면에서 어떤 종류의 쓴뿌리나 분노나 다툼도 없어야 합니다. 셋째, ‘순결’의 측면에서 입이나 표정이나 생각이나 행동으로 음란한 것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거룩한 생활을 하면, 여호와의 총회, 예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상 생활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매일, 매 순간 거룩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지십시오.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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