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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0-28 (월) 09: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93    
진심으로 용서하면 모두가 복을 받습니다(고후 2:5-11)


언젠가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한 그 배후 세력인 사탄, 마귀를 극도로 증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은 불쌍히 생각해야 하며, 그의 인격이 존중되어져야 합니다. 특별히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진심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첫째는, 죄를 용서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닮는 모습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느 9:17; 시 99:8; 단 9:9; 눅 15:11-32). 주님 십자가의 메시지는 용서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닮으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쓴 뿌리를 가지고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15; 마 5:21-22). 이는 곧 십계명 중에 여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셋째, 우리가 이미 지옥에 가서 영원히 벌을 받을 큰 죄, 모든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그보다도 작은, 혹은 적은 죄를 지었을 때 반드시 용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마 18:21-35).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셨는데 우리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넷째,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마 6:14-15). 이 말씀이 용서하지 않는 우리의 죄 때문에 지옥에 보내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용서할 때까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며,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섯째, 믿는 형제 자매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집니다(마 18:31).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궤계에 넘어간 자들 때문에 그 공동체 전체가 힘들어집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여서 모두가 어렵게 됩니다. 여섯째, 형제, 자매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마 5:23-24). 화해를 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번째, 사실 누구든지 형제, 자매에게 죄를 지은 사람은 우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먼저 직접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살인하였을 때 “내가 주께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4; 삼하 12:9 참고)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에게 범죄한 것보다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리라 믿고 우리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 사람이 진정 회개를 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이 용서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게 자신에게와 교회적으로 범죄한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죄를 용서하는 사람이 근심에서 해방되는 복입니다.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즉 이 범죄한 사람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무시하며 비방함으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 전체를 힘들게 한 사람이든, 아버지의 여자와 관계를 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사람이든 확실하지 않지만 바울의 서신을 읽고 회개하였다면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에 근심하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근심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죄는 밉지만, 그 사람도 믿는 형제이기에 그의 인격을 존중해서 그렇게 심하게 징계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심하게 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는 말입니다.
   보통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죄는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퍼집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은밀한 죄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갑니다. 없는 줄 알지만 사실 독버섯처럼 그 자신은 물론 주위에 번져가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공개적으로 드러난 죄는 다른 교인들이 경계하므로 더 이상 나쁜 영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즉 이미 교회적으로 그 사람이 죄를 지은 자로 드러났다는 자체가 벌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족하도다”(6절)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가 형제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는 것이지, 형제가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당연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도 그렇고,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근심을 덜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고 나면 얼마나 평안합니까? 성령께서 하라고 하는 대로 순종했으니 평강과 기쁨이 있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교만한 사람들이 잘 용서를 못합니다. 잘못을 했으니 마땅히 엄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못하니까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용서를 받는 본인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7절)고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그 범죄한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한다면 그 사람은 안도하면서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정말 그 사람은 많은 근심과 고통으로 지낼 것입니다. 죄를 용서함 받고, 오히려 위로를 받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8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의 능력은 죄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죄를 덮어주고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죄인으로부터 분리시켜, 죄는 정죄하고 사람은 살려냅니다. 회복시킵니다. 그러므로 회개한 형제에게는 위로와 축복과 사랑의 교제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찌하든지 죄를 인정하고 자복한 사람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퍼부어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였을 경우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회개하였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범죄자도 바울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말에 순종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여자와 관계를 했던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 여자를 내 보내든지, 자기가 나오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한 증거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여튼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인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실제로 그런 죄인들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마치 자신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의인처럼 행동합니다. 위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여전히 죄인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사함을 받고 치유함을 입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치유 받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용서하면 온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궤계를 물리쳤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9-11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보기 원했는데, 바로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사랑으로 얼마든지 용서하는데, 그들도 그렇게 용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를 완전히 용서하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그 사람과 교제가 회복이 된다고 하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범죄한 교린도교인을 정죄하며 출교하라고 서신을 쓴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범죄자와 교인들이 말씀에 순종하는지 보고자 했을 뿐이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서로가 용서하며 하나가 되었다 하기에 뿌듯한 마음으로 이 서신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탄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공작을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합니다. 믿는 형제, 자매들이 서로 다투고 분쟁하여 교회에서 있어야 할 치유의 역사를 못하게 합니다. 내가 지은 죄는 가벼운데, 다른 사람이 짓는 죄는 너무 크고 중해서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교인과 교인을, 교회를 나뉘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이도록 조장합니다. 목사 혹은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서로 싸우며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사탄, 마귀는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이나 내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목사와 지도자들, 교인들의 흠을 잡고 충동질하여 갈라 놓으려고 합니다. 교회를 망치려고 합니다. 한 사람 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죽이는 것은 한 순간인 것을 잘 알고 있는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단순하고 우직하여 하나 밖에 모르는 사람을 충동질하여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비방하게 합니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을 잘 이용합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 시켜서 쓸데없는 자존심을 건드려서 싸우는데 정력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용서는커녕 내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복수합니다. 또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퍼뜨립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발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기도 외에는 이런 마귀 궤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사탄,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시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혹시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죄성은 용서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복수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성령님은 용서하라고 합니다. 명령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성령님의 힘으로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을 따라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까? 용서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는데, 당연히 용서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용서하지 않아서 근심하며,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불행하게 살아갑니까? 용서하면 근심도 사라지고, 마음도 가벼워져서 평안을 누리고 기쁘게 살텐데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죄 지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편하게 사는데, 오히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쓴 뿌리를 가지고 불편해 합니다. 그저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했으면 잊어버리셔야 합니다. Forgive and Forget! 많은 사람들이 용서했다고 하면서 잊어버리지는 못합니다. 그건 반쪽 용서입니다. 제대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잊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시 103:12).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 43:25). 더군다나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 보혈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가 이런 죄 사함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용서하면 용서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복이 아니겠습니까? 축복의 통로인 우리가 용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도 용서를 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겠습니까? 그리고 교회 전체적으로도 하나가 되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러면 상대방이 사과를 하지 않는데도 용서합니까? 그렇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를 그냥 넘어가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죄는 지적을 받아야 되고, 노출이 되어서 지은 사람이 용서를 받고 십자가의 은혜로 심령이 치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장난을 아예 차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나 교회에 이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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