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53,472
오늘방문 : 8633
어제방문 : 17300
전체글등록 : 3,867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3-24 (월) 23: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78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7: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속으로는 엄청난 변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요 3:3-8).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그래서 믿고 난 후에는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목적과 동기가 달라졌습니다. 삶의 관점과 원리, 태도와 사고방식,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믿기 전에는 사탄이 주장하는 세상 나라의 영역에서 살았으나, 믿은 후에는 주님께서 주장하시는 하나님 나라 영역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관계는 기껏해야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모습에 국한되고, 일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식구이기 때문에, 혹은 같은 직장에 다니고, 같은 취미, 같은 학교 출신, 같은 고향이기 때문에 묶여질 수 있으나 물과 기름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존은 하지만, 섞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합은 불가능합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아주 가깝게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 가깝게 지내면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니라”(요일 2:15-16)고 하였고,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더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14절상)! 이 말은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함께 멍에를 매어) 갈지 말라”(신 22:10)고 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어떻게 송아지하고 나귀하고 함께 멍에를 매도록 하여 땅을 갈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믿는 우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책임을 지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전혀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세상과 격리된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들어가 살아야지요. 이것이 유대주의자들과 크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무조건 이방인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접촉만 해도, 말을 함께 해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만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단이지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과 좋은 이웃으로 살아야 합니다. 빛으로, 소금으로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과 교제를 하더라도 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진솔한 나눔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교감입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힘들고 외로운 것입니다. 이것이 안되어도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교감이 있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을 금하고, 동업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지 않고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하거나, 동업을 하면 1% 정도의 예외가 간혹 있지만 99%는 믿는 자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헌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지 결혼문제나 사업할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고린도시에 만연한 이교도들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아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고린도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이교도들처럼 창녀와 함께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비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끊어야 함을, 그런 세속적인 삶을 끊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왜 그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우선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14절하) 하였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의(righteousness)와 불법(lawlessness), 즉 불의가 같이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빛과 어두움이 교제(fellowship)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섞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적 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15절) 하였습니다. “벨리알”은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타락한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주로 구약에서는 “잡류” 혹은 “비류”라고 전역했습니다(신 13:13; 삿 19:22).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이 조화를 이룰 리가 없지요. 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느냐”는 의미는 앞서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그 둘 사이에 공통점이 뭐가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16절상)고 하였습니다. 이미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고 하였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느냐, 그 둘이 일치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열왕 시대에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은 성전에 우상을 세운 적도 있으며, 헬라제국 시대에 안티오커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돼지의 피로 제사를 지낸 적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각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고, 결국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임으로 우리 육체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우상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안됩니다. 정욕을 따라 살면서 범죄하면 안됩니다.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술, 마약, 도박, 혹은 창녀의 유혹에 넘어가 코를 꿴 소가 되면 무기력하게 끌려가게 됩니다. 아예 멍에를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너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16절하; 레 26:11-12; 렘 24:7; 겔 37:27;계 21:3)고 하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계속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결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17-18절; 사 52:11; 출 4:22; 삼하 7:14; 사 43:6; 렘 31:9; 호 1:10)고 하였습니다. 비록 세상에 속하여 살지만, 성별하여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의 죄를 다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모든 술집을, 사창가를 없애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 죄에서 스스로 구별하여 살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성전이 세상과 구별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죄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죄로부터 분리되고, 그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서운 죄와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성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사탄 마귀에게 찢기고 뜯긴 영혼을, 상처 입은 영혼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바로 성령의 힘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릴 때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바울은 결론을 맺기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7:1)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가졌다고 합니까? 바로 앞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너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16절하)고 하신 것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6:17절하-18절상)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경외하는 마음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육과 영혼을 온갖 더러운 것에서부터 깨끗하게 함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한 순간에 완전히 깨끗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온전히 거룩해 지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육의 더러운 것”은 몸을 더럽히는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은 이교의 사상으로, 세속주의로 정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때마다 자꾸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말입니다. 동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예배당입니다. 늘 성령의 전인 것을 기억하고 육체와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한다면 삶에 혼동과 혼란과 무질서가 찾아옵니다. 적당히 타협하려고 한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의와 불의,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사탄, 성전과 우상은 어떤 경우에도 섞일 수가 없습니다. 연합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연합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정말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향하여 마음과 뜻이 맞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실로 믿는, 하나님께 헌신된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그야말로 육체적, 정신적, 영적 연합이 이루어는 것입니다. 신실한 두 사람이 동업을 한다면 그야말로 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책임을 지고 함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교감과 진정한 교제의 나눔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가 하나님과 사탄, 마귀를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멀리하고 깨끗한 삶,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경향가든교회 교인들은 모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서, 온갖 더러운 것들로부터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깨끗이 하여 진정으로 하나됨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66 주일설교 의롭다 하심의 결과(롬 5:1-11) 한태일 목사 2015-03-16 1991
1065 수요설교 지도자와 따르는 자(수 1:10-18) 한태일 목사 2014-03-07 1991
1064 주일설교 자녀 양육권(출 10:1-20) 한태일 목사 2011-05-02 1990
1063 주일설교 [12/23/09] 수요예배 - 지혜의 가치 한태일 목사 2010-01-01 1989
1062 주일설교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요 14:1-11) 한태일 목사 2011-09-12 1987
1061 주일설교 거짓 믿음(2)(요 8:48-59) 한태일 목사 2011-03-14 1986
1060 수요설교 질투하시는 하나님(신 29:20-29) 한태일 목사 2013-07-05 1985
1059 수요설교 기회를 주실 때에(신 9:1-5) 한태일 목사 2011-04-01 1985
1058 주일설교 [2/8/09] 서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09-02-08 1984
1057 주일설교 [2/3/10] 수요예배 - 지혜와 어리석음의 영향 한태일 목사 2010-02-05 1982
1056 주일설교 [3/21/10] 다 아시는 주님 앞에 한태일 목사 2010-03-23 1980
1055 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을 지키라(계 2:12-17) 한태일 목사 2013-02-04 1979
1054 주일설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7:1) 한태일 목사 2014-03-24 1978
1053 주일설교 방언의 은사(1) (고전 14:1-19) 한태일 목사 2013-07-01 1977
1052 주일설교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23-33) 한태일 목사 2013-01-07 1977
1051 주일설교 [2/14/10] 말씀과 생명의 빛에 대한 반응 한태일 목사 2010-02-15 1977
1,,,2122232425262728293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