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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3-10 (월) 05: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7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10)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가장 황당할 때가 상대방이 우리의 성의를 무시할 때입니다. 예를 들면 정말 나름대로 귀한 선물을 준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었는데, 진심을 몰라주고 그 선물을 우습게 알거나 하찮게 여겨서 버린다든가 다른 사람을 줄 경우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다시는 그 사람과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달리 종종 그런 경우를 당하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은혜라는 말은 곧 선물입니다. 오늘도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끊임없이 은혜를 허락하시면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1절)고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자신과 동역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간절히 권하는데 제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선물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은혜(은총)이며, 또 하나는 특별은혜(은총)입니다. 일반은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누구에게나 허락하시는 선물입니다. 예를 들면 자연(nature)입니다. 공기, 물, 햇빛 등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도 헛되이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혀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히 여기거나 오히려 악용하거나 남용(abuse)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은혜는 특별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 계시의 말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은혜입니다. 교인들 가운데서도 이 특별한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예 복음을 거부하든가,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참 고상한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생명과 죽음에 관한 말씀, 성경 자체를 그저 도덕적인 책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형식적으로는 믿는 사람 같은데 속으로는, 내용적으로는 아닙니다. 이런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을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바울이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가라사대 내가 은혜를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2절)라고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 회복이 될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포로들의 외침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포로 생활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가 성전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죄의 포로가 된 자들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 지냈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셔서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이 그에게 임한 다음, 이 땅에서 메시아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눅 4:18-19)고 하셨습니다. 여기 “주의 은혜의 해”는 곧 희년(Year of Jubilee)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가 된 자들은 49년 째인 희년이 되면 다 풀려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땅을 찾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로 희년이 찾아왔다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영적 희년입니다. 사탄의 종이 되었다가 풀려나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은혜,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선물을 들고 기다리십니다. 죄인들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시며 사랑의 품으로 초청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그냥 앉기시면 됩니다. 선물을 받으시면 됩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상관 없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죄로 고민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들으시고 능히 도우시며 용서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려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은혜로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엄청 조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직책에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3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은혜를 전하는데, 그 큰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도 훼방을 받지 않으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걸림돌이 되지 않기 원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디딤돌이 되기 원합니다.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3절에서 “않게”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지난 주일에 말씀드린(고후 5:11-17) 정직한, 투명한 삶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어느 누구에게든지 부끄러움이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완전한 삶이 아니라, 복음전도에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감당하려면 바울처럼 엄청난 고생도 견디어 내야 합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4-5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스스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추천을 해도 괜찮게 많이 견디어 냈다고 합니다. 여기 “견딘다”는 단어는 막중한 노동을 감당하듯, 전쟁터에서 살아남듯, 죽음의 직전에도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그렇게 견디는 것입니다. “환난”은 영적,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뜻하며, “궁핍”은 이 부패한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을 뜻하며, “곤란”은 빠져나갈 데가 없는 좁은 공간을 만나는 것을 뜻합니다. 얼마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입니까? 또한, 육체적으로도 매를 맞기도 하며, 갇히기도 하며, “요란한 것”은 악한 무리들이 소동을 치는 것을 말합니다. 조직 폭력배들이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수고로움”이라 함은 자신의 한계까지 노동했다는 것입니다.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고생까지 견딘 바울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생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바울이 당한 것에 비하면, 아니 우리 예수님이 당한 것이 비하면 10%나 될까요? 제발 힘들다고 하지 맙시다. 죽겠다고 하지 맙시다. 참고 인내합시다.

바울은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여러 외적인 핍박과 열악한 환경을 잘 견디어 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6-7절)라고 합니다. 정말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고 살았습니다. 우선 영혼이 깨끗했습니다. 삶이 순결했습니다. 생각과 동기가 순수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기 “오래 참음”이란 특히 사람들에 대하여 참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함”은 친절함, 온유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로 사람들에 대하여 잘 참고, 행동으로 친절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감화, 감동이 없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그런 삶이 불가능하겠지요. 또한 거짓이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아가페 사랑으로, 희생적인 삶을 살면서, 복음을 확실히 붙들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의를 좌우 손에 병기로, 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3-4)고 한 것처럼, 마치 에베소서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 마귀와 영적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선물을 받아 변화되는 기쁨이 그 무엇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일한 꿈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옆에 있고, 위로자들이 옆에 있고, 가끔은 칭찬을 듣기에 계속 직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세상으로부터는 욕을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믿는 자들은, 화목하게 하고 사는 자들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듣고, 비천하게 여김을 받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8-10절)라고 단언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려지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욕을 먹고, 악한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속이는 자라고 하지만 참된 자이며, 무명한 자이지만 유명한 자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같지만 살고 있고, 징계(매)를 받으나 죽지는 않고, 그들 보기에 근심하는 것 같지만 항상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하게 살지만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 화목하게 하는 자의 실상입니다.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가진 것이 없다고 정말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비굴하게 살지는 않습니까? 근심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근심 걱정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까? 죽을 지경인 것 같은데 정말 죽은 자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도, 아니 눈에 드러난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BUT’ 하셔야 합니다. ‘그래 가난하지만 부자야.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부자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까지 부자 되게 할 수 있어’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래 가진 것이 별로 없어 하지만 실제는 난 다 가지고 있어. 왜냐하면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버지이니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근심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른지 몰라도 속은 기뻐하고 있어’
물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것으로 부요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영적인 것으로, 하늘의 것으로 부요하게 하십니다. 겉은 보잘것없이 초라해도 속은 풍성한 기쁨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훨씬 더 중요하고, 나중에 엄청난 차이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도, 가장 큰 선물을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잘못 받아들이면 그 은혜가, 선물이 헛된 것이 됩니다. 아직도 받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미루지 마십시오. 바로 오늘이 그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미루다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주님 재림하시면 구원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사신으로서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때로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온갖 고통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순결함과 의로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 전도에 걸림돌이 되면 안됩니다.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입니다. 비록 이 세상 사람들 눈에 초라해 보이고 가난해 보여도, 근심하며 사는 것 같고 곧 죽을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요한 자들이며, 유명한 자며,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부르시는 그 날까지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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