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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10-08 (일) 23:39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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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33    
교회 가운데 계시는 영광의 주님 (계 1:9-20)


보통 신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말하라고 하면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의 얼굴이라는 성화나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의 예수님 모습, 아니면 다른 화가들이 멋지게 그린 그림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은 다 화가들이 상상해서 그린 것이지, 예수님의 참 모습은 아닙니다. 성경에 표현된 모습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절하) 라고 한 것과 오늘 본문 14절-15절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십시오. 과테말라에 갔더니 어느 성당에는 예수님이 흑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외모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본론은 9절부터입니다. 1-8절은 서론으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환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것을 강조하고서(1-3절) 이 서신을 받을 수신자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주님을 찬양했고(4-6절), 주님의 재림을 알리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들려주신 첫 음성, 곧 하나님 자신은 영원한 전능자라고 선포하였습니다(7-8절).
그리고 나서 이제 이 계시록을 쓰고 있는 자신이 누구며, 어떤 상태에 있으며, 자신이 계시를 받게 된 경위와 주님께서 누구에게 쓰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밝히며, 그가 본 주님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놀라운 체험을 한 후에 그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그들의 형제라고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환란과 그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9절상).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하나님 나라 때문에 환란을 당하지만 참으며 인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9절하)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도미티안 황제가 온 백성들에게 자신이 주(lord)이며, 신(god)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경배하기 원하였으나,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요한은 결코 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Lord)이시며, 참 하나님(God)이심을 증거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은 밀레도 항구에서 약 25 마일 떨어진 섬으로 당시 중죄인의 귀양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마치 옛날 조선시대에 역모를 꾸미다가 걸린 죄인을 제주도나 거제도에 귀양을 보냈듯이 말입니다.
즉 요한은 귀양살이 중 어느 주의 날, 곧 주일에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뒤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10절).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행 20:7, 고전 16:2). 요한 자신도 밧모섬에서 홀로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들려주는 계시를 책에 써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보내라는 것입니다(11절).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에 놀라서 뒤돌아 보니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12절하-16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12절과 20절에 나오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마 구약 이스라엘 장막에 놓여 있는 일곱 개 가지로 된 촛대(menorah) 같은 것을 일곱 개 보았는데, 주님이 그 사이에 계셨습니다. 즉 우리 주님은 관심이 늘 교회에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계신 것입니다. 이 촛대들을 살피시고 그들이 불을 잘 밝히는지 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즉 교회 가운데 거하시며 복음의 능력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주님 재림하시기 전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진리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어 그 사명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모양을 인자 같은 이라고 했는데(13절), 이는 아마도 다니엘이 본 환상,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13)라고 한 인물과 동일하기에 그렇게 표현했고, 무슨 영물, 귀신이 아니라 분명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입으신 옷이 발에 끌리는 옷이며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했는데, 이는 마치 이스라엘 대제사장의 옷과 비슷합니다. 옷은 신분을 나타내는데, 이는 하나님과 교회(성도들) 사이의 대제사장으로서 중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고 하였듯이, 중보기도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머리털이 양털 같이 희고, 눈 같이 희다고 했는데 당시의 흰 머리털은 나이 많은 노인들을 아래 사람들이 존경했어야 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유는 그들의 오랜 삶의 경륜을 통한 ‘지혜’ 때문이었습니다. 즉 흰 머리털은 예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의 지혜입니다.
또한 주님의 눈이 불꽃 같다고 했는데 이는 모든 것을 다 보시는 눈, 죄를 꿰뚫고 있기에 심판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발은 풀무에 단련한 주석(bronze) 같다고 했는데, 한번 밟으면 살아남을 자가 없는 것처럼 주님의 대적을 정복하여 자신의 발등상을 삼는 전능한 왕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다고 했는데, 요한은 아마 지중해로부터 밧모섬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연상한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많은 물 소리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과 20절에 나오는 주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messenger), 즉 목회자를 가리킵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일곱 교회 교인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사자들입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오른손에 붙들고 지켜 주신다는, 주권적으로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목회자가 주님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거짓 사자, 삯꾼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런 거짓 선지자들과 선생들이 있어서 사도들이 경고를 했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참 목회자들은 주님께서 붙들고 있으며 지키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들이 불순종하고, 충성하지 않을 때에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검은 계시록에서 주로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 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계 19:15)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였듯이, 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예리한 말씀을 듣기 원하고, 그것이 나를 불쾌하게 하고 아프게 하더라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복종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다고 했는데,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듯한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에 해 같이 빛난 얼굴로 변형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마 17:2).

사도 요한은 이런 주님의 모습과 음성에 너무 놀라고 두려워 그 발 아래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17절상).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그 음성을 들을 때 경외감으로 가슴이 떨려야 합니다. 엎드려 나 자신은 죽은 자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단지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영향을 받고, 두려워 떨며 전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반응을 해야 합니다. 감동과 감격을 입으로 고백하며, 온 몸으로 결단하여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비록 지금 요한과는 달리 주님을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있지만 여전히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두려워 떨면서 엎드린 요한의 머리에 우리 주님께서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7절하-19절)고 하셨습니다. 17절은 이미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8절)고 하신 첫 음성과 동일한 말씀을 다시 하시면서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히 계시는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 삶에 주인이시니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산 자로서 생명의 주인이 되시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이 한번 죽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 죽임을 당하셨는데,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세세토록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영으로 살아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물론 재림하시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더욱 함께 사는 것이 실감나겠지만 말입니다.
이 주님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뜻은 최후의 심판자로서 사망의 문을 열고 모든 영적으로 죽은 자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영원한 사망(불못)으로 보내고 열쇠로 그 문을 잠그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잠그시면 아무도 열지 못합니다.
이런 놀라운 분이 요한에게 사명을 주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지금 본 것과 앞으로 볼 것들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19절). 지금 본 것은 1장을 말하며, 이제 있는 일은 2장과 3장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들려주는 말씀이며, 장차 될 일은 4장부터 22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결론적으로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20절)고 하였습니다. 16절에서도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하였는데, 20절에서도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를 들고 있다고 합니다. 즉 주님께서 교회를 오른손으로 붙들며 주장하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22)고 하셨듯이, 머리가 되셔서 몸인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사람들만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이 이 곳에 계신다고 믿나요?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잘 이해하고 확실히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속히 잘 반응을 하고 따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특히 교회 가운데 거하십니다. 머리가 되셔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못하실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영생과 영벌의 둘째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 주님은 그의 몸인 교회를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계속 펼쳐 가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관심은 온통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이 일곱 촛대, 일곱 별의 비밀입니다. 이 세상 역사의 물줄기는 바로 빛과 어두움, 즉 교회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세력들의 영적 싸움이며, 때로 교회가 일시적으로 핍박을 받으며 사라지는 것 같아도 결코 교회의 역사,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설교요약 - Slide 1] 즉 우리 주님은 오늘도 1) 교회 가운데 거하시며 복음의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2) 하나님과 교회(성도들) 사이의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역할을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참 목회자들은 주님께서 붙들고 있으며 지키고 계십니다. 4) 교회를 오른손으로 붙들며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포되는 말씀에 가슴 깊이 영향을 받고, 두려워 떨며 전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반응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의 군사들로서 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전진해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요한처럼 놀라운 성령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할 자는 처음이요, 나중이며, 산 자이신 그리스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전능하신 분임을 늘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냥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큰 감동으로 교회 가운데 계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복음의 능력으로 모든 사명을 감당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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