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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2-10 (월) 10:0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55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고후 4:13-18)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진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스스로 더 힘들게 합니다. 쓸데 없는 좋지 않은 생각 속에 오랫동안 낙담하기에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이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며, 구약 성경의 욥이나 본문의 사도 바울이 당한 어려움이 비하여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이겨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서두에 시편 116편 10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말하노라”(13절)고 합니다.
   비록 자신은 질그릇이지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사는 자이기에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믿음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16편의 기자도 엄청난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여 결국 건져주심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시 116:3)라고 기록하였고,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6절)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믿음의 말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비록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자신을 비방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기에 담대히 말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몰라 주어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중심을 알고 계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14절) 한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하나님 앞에 계신 주님처럼 우리도 다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재림하시면 산 채로 만날 것이고, 죽고 난 후에는 재림 시에 부활하여 만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5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바울과 동역자들은 힘들어도 고린도교인들을 위하여 말씀을 전하고 섬기는 것은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마치 시편 116편 기자의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 116:17) 라는 고백처럼, 고린도교인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믿음의 마음”을 가졌습니까? 더 정확한 번역으로 묻자면 “믿음의 영”을 가졌습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인생 여정 가운데 어려움을 만날 때, 고난을 통과할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줄 믿는 소망가운데 이겨나가십니까?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까? 그래서 고난 중에 잘 참고 견디고 계십니까?

   바울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고 잘 견디는 비결 세 가지를 이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겉 사람, 즉 육신은 점점 쇠하여 가지만 속사람, 심령은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16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비록 내가 나이 많아 늙었어도 속 마음은 젊다네’ 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격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어느 누가 우리의 겉 사람인 육체가 쇠하는 것을 막겠습니까? 어디가 고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월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 사람, 심령은 날로 새로워지며 더욱 강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잡으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면서 겉 사람의 부패함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좀 늦게 예수를 믿어서 ‘왜 좀 더 일찍 믿어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나’ 후회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금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도 주님께 붙들려서 말씀과 기도로 살면 됩니다. 오히려 더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뒤늦게 40세 쯤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탄의 놀이개가 되어 악한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성령의 역사로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천국을 경험하였습니다.  
   제 주위에서 가장 안타까운 분들은 겉 사람은 점점 쇠하여 가는데, 속 사람인 그 심령조차 점점 쇠하여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대화를 해 보면 압니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말을 걸었던 상대방까지 힘을 잃게 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기에 가능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전혀 생산성이 없는 일에 남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합니다.
   더 한심한 사람은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속 사람이 늙어 쇠하여져 생각하는 것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전혀 꿈이나 비전이 없이 세월을 낭비하는 분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젊었으면 젊은이답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나이 들어 비록 육체는 점점 쇠하여 가더라도 심령은 늘 새롭고, 점점 주님을 닮아가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생산적인 일을 조금이라도 감당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현재보다는 미래가 훨씬 중요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잠깐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17절)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얼마든지 현재 고난을 피하여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편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관계 없이 적당히 살면서, 남에게 대접 받는 삶으로 자기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자기 편을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적당히 하나님의 말씀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영광의 복음의 빛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시와 냉대를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은 잠시 잠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 날은 영원하며, 그 때의 받을 영광이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힘들지만 가볍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것과 미래 주님께 받을 상급, 그 영예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게로 따지면 1 gram 과 1 ton 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재의 고난이 무겁게 느껴집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냥 내려놓고 싶습니까? 피하고 싶습니까? 그래서 불신자들은 자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이 미래에 받을 영광은 훨씬 크고 좋고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오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돌아보는 것” 이라는 말은 ‘눈을 고정시킨다, 강하게 바라본다’ 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소망하는 것은, 붙드는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훗날 주님 앞에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정말 잠깐입니다. 여러분이 죽어서 가져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육체는 흙으로 지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그렇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가 영원한 것입니다. 내 힘과 지혜로, 내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주님이 일하셨다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제가 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은 미래지향적이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오늘의 삶에 급급하십니까? 현재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며 누구를 원망하십니까? 비교해 보십시오. 그래봐야 그 고난이 얼마나 오래갑니까? 한 평생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50-60년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시간은 수억 만년보다도 더 긴 시간입니다. 그러니 고난의 시간은 정말 경점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믿음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감당할 때에도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하여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주님 앞에 섰을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질 것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고전 3:13-15).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좋은 집 한 채 사서 즐기고 누리기 위하여 한 평생 죽도록 일을 합니다. 힘들게 많은 돈을 down payment 해서 큰 집을 사고 나서, 그 후에는 30년 동안 매달 mortgage payment 하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합니다. 그런데 죽고 나서 그 집을 갖고 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분은 삶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으니까 입에서 늘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경질과 짜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나은, 더 좋은 앞날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인정받으려고 한다면 그 소망은 너무 작은 것이라서 오래 가지 않습니다. 금방 힘든 것을 느끼고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치고 나서 성적표를 받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인정 받고, 칭찬 받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동기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 “믿음의 마음”을 이미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또한 확실한 줄 믿습니다. 부활의 소망이요,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만나는 고난,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고 계십니까? 바울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말을 하고 사십니까? 소망 가운데 감사의 말을 하고 사십니까? 믿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아니 말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믿음을 보이고 계십니까?
   아니면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낙심하며 침체된 상태에서 주위의 사람들조차 여러분들 때문에 힘들어 하지는 않습니까? 때로 교회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하면서도, 직분자라고 하면서도 자그마한 어려움도 못 참고, 시험에 빠져 허덕이시는 분들을 봅니다.
   감사하십시오. 고난이 없이, 고된 훈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오히려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모두 자신을 닮기를 원하기 때문에 때로 고난을 주셔서 그 형상을 닮는 모습으로 빚어가시고 만드십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자기 마음에 맞게 빚어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믿음의 마음으로 잘 참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잘 참아내는 비결은 속 사람을, 심령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겉 사람, 육신은 쇠하여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성실한 예배 생활과 섬김으로 속 사람을 성령께서 날로 새롭게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의 고난보다 미래의 영광이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실 영광에 비하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제발 사람을 상대하지 마시고, 이 세상 것들에 눈을 두지 마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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