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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5-13 (월) 07: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9    
어머니의 헌신, 며느리의 헌신(룻 1:15-18)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 사는 곳 어디나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는 현상 중에 하나이니까요.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 한 몸이니 시어머니나 장모가 다 부부에게 한 어머니로 각인 되어져야 할텐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내 어머니, 네 어머니로만 생각하니 갈등이 없을 수 없지요. 어머니들도 자기 아들이지, 며느리는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자기 딸이지 사위는 자기 아들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저는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이하여 모든 여자들이 본 받아야 할 성경에 나타난 귀한 어머니와 며느리를 소개하기 원합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귀하여 우리들의 귀감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 사사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아주 어두웠던 시대였습니다. 신정정치 아래 아직 왕이 없는 족장 시대였는데,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부도덕, 그리고 불법을 행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방나라들로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울부짖어 살려달라고 외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어서 건져주시던 시대였습니다. 성경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18:1; 19:1; 21:2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사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이라는 가장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여 거기 거하였었습니다(룻 1:1-2). 그런데 거기서 엘리멜렉이 죽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모압 여인들을 취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모압 땅에서 약 10년 정도 산 후에 두 아들이 다 죽고 맙니다(5절). 결국 나오미와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양식을 주셨다 하기에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서다가 두 며느리에게 권고합니다(8절). 비록 모압 여인들이었지만 며느리들이 이미 죽은 시아버지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나오미는 그녀들을 위하여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하게 대하셔서 재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며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헤어지기 위하여 입을 맞춥니다(9절). 그러나 두 며느리가 소리 높여 울면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들에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10절). 하지만 나오미는 그들이 그렇게 우니까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 제발 그냥 자신을 고향으로 떠나게 놔두고 며느리들은 그들의 땅에 있으라고 합니다(11-13절).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11절상)고 하였습니다. 며느리들이 아니라 그녀에게 있어서 딸들이었습니다.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자신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클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서 계대 결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12-13절). 정말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배려해서, 진심으로 사랑해서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떠납니다(14절).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붙잡습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룻에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15절)고 다시 권고합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서 권하는 말이었습니다. 정말 나오미가 얼마나 룻을 사랑하고, 그의 장래를 위하여 많은 고심을 했는지 유다 땅에 도착해서 있어진 2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 정말 친 딸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친 어머니가 딸에게 헌신되어 있듯이, 나오미는 룻에게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룻은 어떻습니까?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6-17절)라고 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헌신의 고백입니다. 룻은 그녀의 삶 전체를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헌신이라는 것은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어머니처럼 사랑했기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 대한 헌신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다시 그 땅에서 결혼하여 잘 살 수 있었지만 시어머니를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아니 죽는 일조차 시어머니를 따라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 만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기가 실수로라도 어떻게 하여 어머니를 떠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게 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각오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헌신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오미도 더 이상 룻을 말리지 못합니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이런 나오미와 룻과 같은 여인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헌신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허락하십니다. 결국 룻은 보아스를 만나서 아기를 낳게 되고(2장), 나오미가 너무 기뻐 그 아기를 양육을 하게 되는데,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아닙니까?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지 않습니까? 모압 여인이 말입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인생의 쓴 맛을 본 나오미에게도, 룻에게도 부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닙니까?
   이런 사실을 보면 쓴 맛의 인생, 실패한 인생을 단 맛의 인생, 잘되는 인생으로 바꾸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합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총은 바로 헌신에서 옵니다. 전심을 다한 사랑에서 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헌신, 뜨거운 하나님 사랑에서 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외쳤던 에스더의 헌신을 기억하십니까? 죽음을 각오한 여인들이야 말로 세상이 감당 못하는 여인들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룻은 이런 헌신이 가능하였을까요? 바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절하) 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면 나오미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20절, 21절). 그녀는 우리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정말 믿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삶이 괴롭고 힘들어도 그 배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 분의 절대주권을 믿었습니다. 나오미의 인생에서 경험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 그대로 앞으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남편도 잃고, 아들들도 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보아스를 아들처럼 주십니다. 룻을 통하여 맞이하는 보아스가 그녀의 아들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오히려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에 결국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불평하는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무엇에든지 헌신하는 인생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 헌신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삶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멋진 인생입니다. 향기로운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헌신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생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실 그렇게 헌신하고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헌신된 목자를 볼 때 양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 목자 아래 있는 것에 행복해 합니다. 또한 헌신된 양들을 바라보는 목자는 감동을 받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헌신된 스승을 만난 제자는 이미 복을 받은 것이며, 헌신된 제자를 만난 스승은 얼마든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기에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또한 자기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 헌신되어 있는 직장인을 보는 고용주들은 급료를 주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아니 더 주고 싶어합니다. 고용주나 자기의 상사가 자기에게 헌신되어 있는 것을 안다면 직장인이 온 몸 다 바쳐 충성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한 것 같아도 헌신된 부모를 만난 자녀는 앞날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안전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헌신에 보답하려는 자녀들을 보는 부모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헌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헌신은 그냥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헌신할 수 있나요? 무엇보다 먼저 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헌신한 것들에 대한 미래에 이루어질 일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나 룻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서로에게 헌신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헌신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의 대상을 전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끝까지 붙잡았던 것은 나오미를 믿었습니다. 나오미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을 나오미에게, 하나님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당연히 모험입니다. 그러나 믿기에 어떤 모험도 감행합니다. 또한 헌신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분별력(discernment) 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사람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지혜, 통찰력(insights)가 있어야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 힘들어도 꾸준히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사랑의 사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헌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헌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사랑이 없는 헌신은 없고, 헌신이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심령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셔서 헌신의 가치를 알고 이루어질 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사랑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신다면 나오미나 룻보다 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헌신할 수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올바로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 주위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분들에게도 헌신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특히 어머님들!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우리 가정과 교회가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나오미처럼, 룻처럼 헌신하셔서 이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소망 가운데 사십시오. 어찌하든지 믿음으로 사십시오. 어찌하든지 성령님의 지혜로 사십시오. 무엇보다 사랑으로 헌신하십시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 땅을 하직하더라도 그 훗날 여러분들의 헌신의 열매들을 후손들이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인생이 좀 고달프고 어렵더라도 잘 참고 인내하시면서, 지속적으로 헌신하십시오. 첫째는 우리 하나님께 헌신하시고, 그리고 주위에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헌신하십시오. 여러분들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주위의 영혼들이 존경할 것입니다. 우러러 보고 본 받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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