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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2-18 (화) 04:05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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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91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3)



성도들 사이에 가장 많은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시험에 든다’는 말입니다. 자신도 시험에 들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시험이 들었다고도 말합니다. 물론 이 시험은 테스트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유혹(temptation)을 받아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을 시험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든 어른들이든 다 싫어합니다. 하지만 시험이 없으면 실력을 측정할 수 없고, 자신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들이 믿음의 진보가 있으며, 시험에 실패한 사람도 어떤 분들에게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험이 그 사람을 겸손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 동안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우상에 제사를 드린 고기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사람들에게 그 자유와 권리를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포기하고 살라고 권면했습니다(8장). 그리고 자신이 그런 자유과 사역을 하고 사례까지 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포기한 것을 말했습니다(9장).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마음껏 자유롭게 생활하는 자들에게 시험에 빠져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조금 긴장을 하고 살아야지, ‘나는 괜찮아’ 하고 여유를 부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을 하는 선수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달려야 면류관을 받기에 넘어질까 경계하라고 합니다(9:26). 만약 그렇게 자신을 과신하고 자만하면 넘어져 시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합니다.
   먼저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1-4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세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라는 원어의 뜻은 죄 씻음이지만, 그 의미는 ‘하나가 된다, 연합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4-5)고 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구름 아래 있었고 또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들이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애굽을 떠나 홍해를 통과함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그들의 인도자인 모세와 연합되었습니다. 함께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음식이란 만나를 뜻합니다. 만나라는 원어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음식은 세상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음식이기에 신령한 음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은 어떤 물입니까? 반석에서 나온 물입니다. 어떻게 반석에서 물이 나올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나왔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음료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40년을 먹이시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만나와 물을,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그것을 귀한 줄을 모르고 기회가 있는 대로 하나님을 또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백성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지요?
   4절을 다시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는데,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진행 중에 반석을 만났고, 모세가 반석에게 명하라 했는데 지팡이로 쳐서 물이 나와 마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신령한 반석이 그들을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즉 그들이 가는 곳마다 있는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뜻입니다. 반석을 두드렸더니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목마르다고 아우성일 때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했는데, 그 놀라운 축복을 생각하지 않고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다시 원망하다가 출애굽 1세대는 거의 다 망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죽었습니다.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5-6절) 하였습니다. 즉 출애굽을 하고, 모세와 연합이 되고,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들 안에 죄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치면 시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고, 세례를 받았으며, 그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닥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들면 바로 그 어려움이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1세대가 멸망한 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서 그런 동일한 악을 즐겨하지 말라고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오히려 감사를 드릴 때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나타내 보일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왜 지금 고난이 찾아왔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말입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기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의 시간이 오히려 축복의 기회입니다. 믿음을 사용할 기회입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바울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시험에 빠쪄서 세 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 언약의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사건을 가리킵니다(출 32장).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백성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춤춘 사건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쉽게 출애굽한지 1년 만에 다시 우상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송아지 신, 우상을 섬겨왔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에 섬기던 신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던 우상을 섬기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어려웠다는 말입니다. 우상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며 참여하는 신앙에 젖어있던 그들이 모세 혼자 설교하면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하고, 죄를 지적하는 말씀보다는 옛날 우상신을 섬기던 것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비주의로 신앙생활하던 분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일 중심의 신앙생활하던 분들은 말씀 중심의 신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가만히 앉아서 말씀만 듣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자꾸 죄를 지적하면 불편해 합니다. 그냥 자주 사람들 하고 어울려야 하고, 아무 일도 안하면 은사가 없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일 저일을 참견하며 해야 하고, 가만히 있으면 믿음이 퇴보하는 것 같아서 좌우지간 먹고 마시며 떠들고 춤을 춰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싫어하셨습니다.
   둘째는 성적인 죄를 지적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8절)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우상숭배의 죄는 출애굽한지 1년 만에 있어진 사건이라면, 이 간음한 죄로 심판을 받은 사건은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였습니다(민 25장).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 받기를 원하여 발람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고 그 백성들을 저주하게 했습니다(민 22-24장). 그런데 발람이 아무리 저주하려고 해도 그 입에서 저주의 말보다 축복의 말이 나왔습니다. 모압 왕이 항의를 하니까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고 발락 왕이 물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니 그들이 가는 길이 모압 여인들로 벌거벗고 유혹하여 모압 신을 숭배하게 해보라고 합니다. 정말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 계교에 빠져서 모압 여인들과 간음을 함으로 하나님께 벌을 받아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게 됩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억제하고 삽니다. 특히 성적인 죄는 더 경계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억제되었던 성적인 욕구가 폭발되어 큰 죄를 짓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가정입니다. 부부끼리는 아무리 성관계를 한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자기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아내나 남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죄지요.
   또한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서로 약한 부분을 내어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역사하셔서 치유가 되는 것을 봅니다. 또 서로 붙들어 주며 격려하다 보면 죄를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죄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주위의 형제 자매들과 진솔하게 마음을 나누면서 투명한 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숙하게 자라고,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을 불명하며 원망한 죄를 말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을 당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9-11절)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음식 만나를 싫어하여 거부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한 결과 불뱀에 물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을 말합니다(민 21:4-9).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신 것은 그들이 그 어려움을 통하여 더욱 겸손하게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디면 자신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 대한 불평과 원망에 대하여 멸망시키는 천사가 원망하는 자들을 죽인 사건(출 15:24, 신 1:27)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모세를 거역하자 그들과 함께 당을 지었던 모든 사람들이 땅이 갈라져 죽임을 당한 사건(민 16장)을 염두에 두고, 이런 일들을 거울삼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믿고 난 후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멸망을 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 믿음이라면, 진짜 구원 받은 사람들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부족함이 많기에 더욱 주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한 순간도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오늘과 같은 말씀을 경계 삼아 조심합니다. 그래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2절)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교만하면 안 됩니다. 나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자임을 늘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어려운 시험이 닥치면 화를 내기가 쉽고 신경질과 짜증을 내기 쉽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시험이 찾아올 때, 사탄의 유혹이 올 때 그 시험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을 확실히 믿고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까 당한 줄 알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시험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감당하지 못할만한 것은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셔서 감당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미쁘다는 말은 하나님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면, 붙들지 못하면 우리 마음속에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오면, 유혹이 오면 입으로 자신과 사탄 마귀들에게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장하십시오. 그래서 나의 모든 염려와 근심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눌러버리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 원망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욥처럼, ‘나는 이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어. 절대로 이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지 않을거야. 오히려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잘 통과하면 정금과 같이 될거야’ 하면서 스스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아니야, 아무리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를 해도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나 그렇게 하지. 나에게는 해당이 안돼’라고 생각하면 사탄 마귀들에게 지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 뜻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몰려와도 완전히 나를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문제는 양 다리를 걸쳐 놓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이렇게 안되면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 주님께도 한 발을, 세상에도 한 발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리가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이 두 쪽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8)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7절). 주님 편으로 완전히 두발 다 깊숙이 들여놓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감격하게 됩니다.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여러분들은 늘 넘어질까 조심하며 어떤 어려움도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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