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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1-18 (금) 01:18
분 류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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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42    
공의와 사랑(신 25:1-10)





아무리 작은 공동체라 하더라도 정의,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는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며, 가치 있는 공동체로서 주위에서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있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 버렸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12지파로 남 유다의 2지파에 비하여 다섯 배 이상으로 인구나 국력이 컸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자 그 나라에 공의와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셔서 주전 722녀에 앗수르의 공격을 당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는 그래도 몇 몇 믿음의 왕들로 몇 차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였지만 결국 북 이스라엘의 길을 따라가는 바람에 북 이스라엘이 망한지 약 136년 후,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희 하나님을 바라볼찌니라”(호 12:6)고 외쳤건만 듣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한 나라든지, 어느 공동체든지 하나님 앞에서 부흥을 경험하려면, 아니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공의과 사랑이 나타나도록 기도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부족한 자라도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면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행하며, 힘들어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 욕심을 버리고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치 있게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범위 안에서 공의를 행하며, 사랑으로 희생하며 사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을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1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재판을 하게 될 경우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여 의로운 자에게 의롭다고, 즉 무죄한 자는 죄가 없다고 하고 악한 자에게 죄가 있다고 정죄하고 하라고 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재판장이 법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면 모든 것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재판장이 양심껏 하면 되는데, 어떤 경우에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재판장이 공의로 판단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의 정의가 흔들리게 되고 사람들은 점점 정의에 대한 애착이나 기대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이 아무리 권력이 있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해도, 뇌물로 마음을 사려해도 흔들리지 않고 옳은 것을 옳다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재판할 때, 죄인을 잘 가릴 때 그 사회는 정의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가 미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 나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공평정대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죄를 죄라고 조언을 해주고,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해 주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이 함께 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그러나)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2-3절)고 하였습니다. 죄가 가벼우면 매질도 가볍게 하고, 죄가 무거우면 매질도 중하게 하는데, 절대로 사십은 넘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감정적으로 때리면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십 대로 못을 박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넘기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을 짓밟게 되는 것이기에 금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그 사람의 인격까지 모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너무 냉정하거나 몰인정한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자비와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나 짐승에 대하여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4절)고 하였습니다.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훈을 주면서 사도 바울이 이 구절을 인용한 고린도전서 9장 강해에서 이미 이 구절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은 곡식을 추수할 때 곡식을 떠는 소가 일을 하면서 자꾸 입으로 곡식을 주어 먹으면 그것이 아까워서 소의 입에 망을 씌워 놓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소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눈 앞에 먹을 것이 잔뜩 쌓였는데 이것을 먹지도 못하고 일만 시키면 너무나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추수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마음대로 먹으면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추수 때가 늘 있는 것은 아닌데 이 때만이라도 실컷 먹으면서 일을 시키라는 뜻입니다. 짐승에게조차 자비와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친족 중에서 아들이 없는 과부를 그 형제가 도와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5-10절). 계대결혼(Levirate Marriage)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가까운 형제나 친족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갖게 하고 땅을 기업으로 이어 받도록 배려한 제도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룻과 보아스를 생각하면 됩니다. 룻의 남편이 죽었을 때 가까운 친족 보아스가 그를 아내로 맞아 들여서 기업을 잇게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들이 없으면 땅을 상속으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올바른 결혼 생활도 아닙니다.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뜻을 새겨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 중에 과부가 자식이 없어서 땅을 상속으로 받지 못하고 노예로 팔려가게 생겼는데 결혼을 하여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도와주지 않으면, 그 형제가 남편의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성읍의 장로들에게 이야기해서 권면을 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의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하였습니다(9절).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하여 모욕을 주고 수치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에게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라고 부르라고 하였습니다(10절). 그 집은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집안으로 추락하여 그 집 전체가, 가문이 부끄러운 명예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고 관심 없이 그냥 자기만 편하게 살려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고 있는데 신을 신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입은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을 신지 않고 다닌다면 정신 나간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이처럼 주위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도 돕지 않는 사람은 신 벗기운 자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공동체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려면 정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이 뒷받침이 되는, 죄인까지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야 하지만, 짐승조차도 불쌍히 여기며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내 형제, 자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좀 희생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닮아 실천하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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