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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1-14 (월) 09:32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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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909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고전 11:1)


저의 목회철학이기도 한 말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고 말씀한 후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니리”(13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말씀이 바로 주님을 닮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을 닮기 위하여서 입니다. 바꾸어 말씀 드리면 아무리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알고, 전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더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이 안 보이면 그런 종교적인 활동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가 가장 힘든 분들이 어떤 분들입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에게서 신앙 인격은커녕 보통 사람들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부정직, 불의, 사기, 탐욕 등이 지나친 것을 보고 실망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앙 됨됨이(인격)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생긴 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격과 성품을 가진 우리가 무엇을 본받느냐,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느냐 하는 됨됨이가 사실은 믿음의 핵심입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분을 닮아가지 않고야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자녀라고 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 11장 1절은 사실 지난 주일 살펴본 10장 23-33절 말씀과 연결되는 마지막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외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자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절제할 것을 말한 후에, 자신 있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절)고 명령합니다. 이미 자신이 복음으로써 그들을 낳아 영적인 자녀가 되었으니 영적 아비로 생각하고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었습니다(고전 4:16). 왜냐하면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그렇게 말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 주님을 본받아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도,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1-2)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늘 높은 분, 두려운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꾸 하나님을 능력과 권세의 차원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에 중요한 초점이 죄냐 아니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될 것이 우리 하나님은 또한 자비와 은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문맥은 7절,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에게 알리셨도다”는 말씀에서 이해하여야 하는데, 구약 출애굽기 34장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10장 강해에서도 설명을 드렸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기적과 능력으로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 율법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진노를 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화를 내시면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고 너를 중심하여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면서 그들을 살려달라고 간청을 하자,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하시기로 합니다. 그런데 같이 가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모세가 ‘하나님께서 같이 가시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기도하자 그것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주시는 장면이 출애굽기 34장 1절 이하 내용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5-6)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어 마땅한 백성들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특히 그 사랑의 속성 가운데 긍휼히 여기며 아량, 관대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하기를 천천히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그러한 긍휼, 아량, 관대함과 같은 인격이, 성품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를 ‘죄’를 갖고 볼 때, ‘우리가 해서는 안될 짓을 했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라는 차원에서 그 형벌은 물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생명과 진리와 복과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어 오는 고독과 외로움인 것입니다. 사랑도 없고 평안도 없고 안식도 없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하심은 하나님이 바로 긍휼, 아량, 관대함의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차적으로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관용과 용서, 아량을 베푸는 것, 즉 사랑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야 저들의 아비인 사탄처럼 거짓말하고 남을 헤치는 것이 저들의 재미인 것이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맞다, 틀리다’ 라는 쪽으로만 가서 옳은데도 불구하고 사납게 거칠어지고 서로 헤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이 없다고 예기를 듣는 것도 이‘맞다, 틀리다’는 심판의 개념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고, 본인들의 신앙도 그 기초 위에 서 있어서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기의 옳음을 자꾸 주장하며 증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시기 전 4장 마지막 절에,“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하였습니다. 해석이 필요 없는 구절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하나님을 닮느냐, 사탄을 닮느냐는 것인데,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닮는 게 무엇이냐 하면 첫째로 사랑 가운데 이 아량, 용서함, 관대함,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을 닮지 않으면 십자가가 아무 쓸데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에, 우리의 생각과 습관에 이것을 못박아 두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인격이 있는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실천적인 삶이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입니다. 바로 바울이 본문에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라고, 희생하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먼저 채우고 남은 것으로 고결한 척 자기 이름을 내세웁니다. 세상의 사랑은 결국 자기 욕심이고, 고상한 덕목은 전부 자기 증명입니다.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섬기려 왔다, 자신을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다는 말씀이야말로 주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사랑은 상대방을 좋게 하기 위하여 내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공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면서 자신을 증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널 도와주었다. 내가 널 사랑했다. 네가 받은 모든 것, 얻은 모든 것은 내가 해준 것이다’ 라는 공치사가 없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다 함은 가진 것이 없이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 있는 낮은 자리까지 쫓아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의 영광된 보좌에 계셔야 하는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흙탕물에 떠내려가는 죄인을 구원하려 그 흙탕물 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끊임없이 하나님께 ‘내가 누구를 도우려고 해도 가진 게 없어서 도울 수가 없어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테니까 돈 주시고 건강 주시고 능력을 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능력이나 재주,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지고 못 가지고가 아니라 마음 자세입니다. 희생하려는 자세입니다. 세상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다 자기 유익만 생각합니다. 세상이 사랑을 예기할 때에는 다 그것으로 자기를 자랑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이라는 행동을 합니다. 그 사랑이 명분도 아니고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신앙인격, 성품의 본질입니다.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고 하였습니다. 희생하는 아가페 사랑이 없이는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아무 것도 아니라도 합니다. ‘희생하는 사랑이 없으면 난 존재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네가 능력이 있느냐? 네가 열심이 있느냐? 사랑이 없으면 그 능력과 열심과 그 어떤 종교적인 행동도 다 소용없는 것이다. 본체가 없는, 실속이 없는 헛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 다른 사람을 향하여 시기 질투나 자존심이 섞이지 않고 ‘저 사람이 잘 되기 위하여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면서 고민하고 조마조마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인생살이에서 이런 고민과 조바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자리에서 맡은 일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로 인하여 저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며 더욱 그 사랑에 깊어가도록 하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요12:24). 주님처럼 내 자신이 죽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희생으로 시작해서 희생으로 진행되고 희생으로만 결실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버려서 향기로운 제물(offering)과 생축(sacrifice)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본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자고 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지며, 신앙생활의 열매를 맺고, 말씀에 젖어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신앙생활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 됨됨이를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내 안에 심겨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 성품들 가운데 본받아야 할 것이 많지만 오늘 성경말씀들의 문맥에 의하면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아량을 베푸는 것입니다. 관용,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 있는 영혼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알게 된 이들, 우리들이 기도해 주어야 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하여 여러분이 늘 조마조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라면 우리들은 마땅히 엎드려 그 분이 내 등을 디디고 올라가게 해주며, 편안할 수 있게 내가 엎드린 등에 앉아서 쉬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 13:7). 이렇게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지고 죽어야 하며, 오해 받고 모욕당하는 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내내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게 하소서!’ 부르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생하는 사랑뿐만 아니라, 변해야 할 기질과 성품이 점점 바뀌어 주님을 닮은 모습이 나타나기 바랍니다. 변하여 가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주님을 닮아간다면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가 강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가이오 장로를 위하여 기도한 것처럼, 저도 일년 내내 여러분의 하는 일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에서는 육체적인 건강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육체도 건강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닮은 부모 아래서 자녀들도 그렇게 닮아간다면 얼마나 그 가정이 강건하겠습니까? 아니 그런 가정들이 우리 교회에 가득찬다면 얼마나 우리 교회가 강건하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올 한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건강하게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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