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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0-29 (월) 08:55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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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905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고전 7:17-31)



한때 자유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해방신학 혹은 민중신학을 주장하며 사회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를 뒤엎고 데모를 하며 민중들을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그들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하여 독립을 시키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워 왕으로 오시는 것으로 믿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사탄, 마귀들의 세력들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어 부활하신 것입니다. 헌데 누구든지 이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환경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데, 누구는 부하게, 누구는 똑똑하게, 누구는 좋은 집안에서, 누구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누구는 그렇지 못하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에 그리스도인들의 결혼관에 대하여, 특히 독신과 이혼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원칙을 가르쳐준 다음(1-16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를 인정하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더 큰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에 자신의 주어진 환경이나 신분을 원망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환경이나 신분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운명론자나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인생으로 개척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17절)고 하였습니다. 아니 동일한 의미의 말씀을 20절과 24절에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환경과 신분을 바꾸어 좀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살 수 있을까 하여서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 사회의 혁명을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노예 해방을 위해서도 아니고, 굶주림에서의 해방도 아니고, 가뭄과 기근으로부터의 해방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하셨듯이,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즉 복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환경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외적인 혁명이 아니라 내적인 혁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부르신 그대로 받아들이며 만족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아무 의욕 없이 운명론자가 되어 닥치는 대로 살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 우리를 부르셨든지 간에 주님께 신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는 다 잘 알고 계시며, 함께 하시며, 반드시 나를 좋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형편에서 구해주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심령이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도록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18-20)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면, 할례 받은 것을 돌이켜 무할례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역사적 문헌에 의하면 무할례를 원해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이 아니라, 로마인으로서 개종하기 위하여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신분을 바꾸기 위하여 말입니다.
또는, 무할례자인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해서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원래 하나님께서 무할례자로 부르셨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할례자, 무할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지요.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다른 예를 더 들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20-22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 종으로 태어났다던가 종이 된 상태에서 믿음을 가졌다면 아무 염려하지 말고 종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자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자유를 찾아야 하지만, 자유인이라 하더라도 계속 주께 속해 있는 자유인이 되었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바울이 노예제도를 찬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자유인일 때 믿음을 갖고 부르심을 받았다면 자유인으로서 방종하지 말고 세상에서 자유인이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종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고 자유인이 되겠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유인도 자유 하게 됨에 대하여 자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임을, 의의 종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신분의 차별이 있는 것이 다 죄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초점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는 데는 그런 신분상의 차이가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그런 신분에 얽매이는 듯합니다. 그래서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자녀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여 잘난 체를 하는가 하면, 낮은 신분의 사람이나 자녀들은 자기를 비하하면서 학대하고 삽니다. 포기하고 삽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노예 신분이라고 해서 은혜를 덜 주시고, 자유인이라고 해서 은혜를 많이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23절)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니, 사람들의 종이 되어 사람들의 말과 사상과 행실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결혼 문제에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또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24절)고 강조한 후에, 하나님의 섭리라면 처녀가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25-26절)고 하였습니다. 많은 Single 들은 결혼하면 모든 불행은 끝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습니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행복해진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책임을 지는 일이어서 새로운 긴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면서 신앙을 포기해야 하거나, 배우자를 찾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희생한다면 지혜로운 자가 아닙니다.
여기 “임박한 환난”이라는 것은 이 세상 종말이 가까워서 다가오는 대 환란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고린도교회나 교인들에게 찾아올 환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환란이 오니 혼자 있는 것보다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 환란이 와서 둘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혼자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전쟁을 앞둔 군인이 결혼을 해서 전쟁터에서 죽어 버린다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전시라도 해도 결혼할 사람들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28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결혼을 했으면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서로가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 놓고서는 서로에게 구속되기 싫다고 헤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27절). 결혼에로 부르심을 받아서 결혼을 했으면 그 부르심 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가진 자, 높은 자, 배운 자, 건강한 자는 쉽게 자만, 교만해지고, 가지지 못한 자, 낮은 자, 못 배운 자, 건강하지 못한 자는 스스로 비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졌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많이 배웠으면서도, 건강하면서도 주님 안에서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못 배웠어도, 건강하지 않더라도 주님 안에서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깨닫고 비참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29-31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진리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웠으니, 언제든지 오실 수 있으니 그 때 주님 앞에 서서 대면할 준비를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일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긴장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있는 자는 아내에게 완전히 빠지지 말고, 남편이 있는 자는 남편에게 완전히 빠지지 말고, 세상의 슬픈 일 때문에 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울지 않는 자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잠시이지 계속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끝날 시간이 있는 자처럼 행하고, 세상 물건을 많이 갖고 사용하고 있어도 다는 못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현재의 모습은 사라질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던지, 내 자신이 죽어버리게 되면 돈도, 물건도, 집도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아내도,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나와 예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일만 있습니다. 지금 기쁜 일도, 슬퍼서 눈물 나는 일도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좌우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주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관점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훈련을 하라는 뜻입니다. 결혼하는 것이나, 돈을 모으거나, 공부를 많이 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온갖 좋은 것을 먹으며 운동하는 것이 죄 짓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잠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주인이 우리 주님이 되게 하십시오. 이야말로 정말 이 세상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잠시 후에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 허락하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어리석게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형편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 자리에서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십시오. 우리는 이 부패한 사회에서 혁명을 일으켜 사람들을 잘 살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부패한 사람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죄인들이 의인의 자리로 옮겨져서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참된 제자로 세워가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자리, 어떤 위치에 있든지 이 고상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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