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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6-15 (금) 05: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46    
하나님의 교회(고전 1:1-3)
재작년에 소천하셨지만 서울 사랑의 교회를 담임하셨던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21세기의 교회들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세 가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혀 말하지 않는 교회가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감격,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기 힘든 교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양육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어린 신자들을 잘 양육하여 제자로, 온전한 자로 세우는 사역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제자 훈련 사역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열심, 꿈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교인 끌어 모으는 일이 아니라 참된 전도와 선교를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가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외쳤습니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이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를 받아,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 계속 성장하도록 도와줌으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그리스(헬라) 발칸 반도가 끝나는 곳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작은 소도시이지만, 로마제국이 그리스를 정복한 후 주전 44년에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 황제가 크게 만든 도시로서 당시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서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고린도에는 이방신전이 30 여 개 있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아프로디테 신전으로 한 때 여사제가 천명이나 있었는데 모두 창녀였고, 밤에는 도시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또 바알 신전과 비슷한 멜카트 신전도 있었는데 이곳은 동성연애의 본산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인(Korivnqio")’하면 ‘방탕하고 음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곳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주후 50년경 2차 전도여행 중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 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행 18장). 그렇게 타락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오직 복음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헬라 철학과 로마 문화의 지식인들은 바울을 무식한 사람으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이 오해 받지 않기 위하여 일체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텐트를 만들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이유는 그곳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돈을 받고 그들의 교리를 파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의 복음이 오해 받지 않기 위하여 일체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가 무능하고 자신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회당 전도는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일년 육개월 이상을 그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 결과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ejkklhsiva)’란 단어는 신약성경에 114번이 사용되었는데, ‘바깥 세상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회막이나 성막, 성전에 모여든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 그 자체를 뜻합니다(예: 신 4:10; 데살전 1:1). 즉, 하나님 아버지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이는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세상 모임과 다르지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마 16:18).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첫째로 “하나님의 교회”(2절)라고 함으로 세상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이는, 하나님께 속한 회중을 뜻하며, 둘째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라고 함으로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주어진 목적을 위하여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지역 공동체로서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전 우주적인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교회와의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라면 아무리 작아도 자부심으로 갖고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린도와 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곳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졌으며, 그 교인들이 주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한 이 세상 가운데 세워져, 그 공동체에 속한 택자들이 보다 거룩한 백성들로 점점 변화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헌데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죄와 싸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이 그곳을 떠난 후에 자신들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질문 형식으로 바울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 형식으로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우선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1절)이라고 단언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아서 사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헬라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서 누가 더 고상하며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많으냐는 것을 지식의 정도로 판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인들은 자유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 자유(liberty)라는 것은 방임(방종, indulgence)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굳이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세상 지식이나 기준과 상관없이 사도를 세우셔서 교회를 세우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민주정치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왕되신 주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것으로 성도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여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인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 때부터 그리스도와의 생명력 있는 교제는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절에 나오는 소스데네라는 사람은 바울이 고린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와 함께 했던 회당장을 말합니다(행 18:17). 그가 예수를 믿고 나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여 핍박할 때에 대신 끌려가 매를 맞았던 사람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처음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가 유대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은 바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애정어린 형제의 이름을 등장시킴으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자신이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소스데네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에 옆에서 서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2절)이라고 합니다. 아마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믿기 전에 방탕하고 음란한 짓을 하거나 우상숭배하던 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완전히 거룩하여지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이 세상의 음란하고 방탕하고 우상숭배적인 삶의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주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성도라 부르심을 받기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리를 이 세상에서 아직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말씀으로 살아 더욱 거룩해져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실상 주님이 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할 마음을 주시고 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그 일을 행할 때에도 늘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우리가 했다고 칭찬하면서 상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했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하시고 우리는 오직 몸을 내어드린 것 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빌려드리는 것입니다. 죄 짓는데 사용하던 우리 몸과 마음을 주님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몸과 마음을 드리는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 안에 아직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훈련을 받으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성을 이기도록 내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 .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6,12,14)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진리로) 예배할찌니라”(요 4:2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찬양이 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평소 생활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거룩함을 추구하고 살다가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그 예배가 경건한 예배요, 감격적인 예배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둘째는, 세상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즉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을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을 기억합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하셨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였습니다. 교회는 빛과 소금으로서 바깥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하며, 타락과 부패를 막는,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로서, 제자로서 세상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르게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셋째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즉 교회 지체들의 well-being 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양육하고 돌보는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고린도교회 위에 있기를 원한다고 서두에 적고 있는 것입니다(3절).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버지이며, 교회는 어머니이다. 교회는 나태와 무지가 빚을 수 있는 인간 속성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품, 즉 어머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의식 속에 교회 안에서만 교인 티를 내면서 ‘종교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지상 교회는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apostles), 즉 보냄을 받은 사람, 사도직을 가진 사람이 오늘날은 없지만, 우리는 사도성을 계승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자신의 육체적 부활을 증명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들은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교회는 사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교회가, 온 성도들이 사도들의 교훈과 사역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증거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가 다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붙잡아야 합입니다. 사도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듯이, 모든 성도도 그 명령을 받은 소명자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사도적 본질을 부인할 수 없도록 확인시켜 주신 분이 바로 세상에 임하는 순간부터 교회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게 한 성령님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세상에서 오늘날의 사도처럼 사셔야 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목사인 John Stott 는 ‘우리는 서로 돕고 돌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둥그렇게 앉아 서로 마주볼 때에는 세상을 향하여 등을 돌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안으로만 성장한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밖으로 향하여 돌아서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은 우리가 세상으로 섬기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나면 안됩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다른 한 쪽을 주의 깊게 생각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들로, 교회로 모이게 한 이유가, 목적이 있습니다. 성령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도성을 계승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계속 죄성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잊지 말고, 정말 오늘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찬양이 올바로 드려지는지, 세상에서 증인의 삶을 사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한 양육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새 사람의 모습으로, 말로, 행동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구역 모임도 훈련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노력하여 이런 하나님의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를 세워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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