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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3-19 (월) 05:1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52    
신앙양심을 따라(요 19:4-16)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양심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이 양심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양심대로 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빌라도의 모습에도 적나라하게 더럽혀진 양심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은 그 양심이 회복이 되어 신앙양심을 소유하게 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종종 신앙양심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신앙양심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빌라도가 재판장으로서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장면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판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인간에 대하여 죄의 유무를 가려서, 죄가 있으면 벌을 정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죄인인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미국의 배심원 제도가 보다 성경적으로 공의로 재판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공의를 위하여 정당한 자격을 갖춘 재판장이 죄를 지은 사람을 재판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재판장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언급하였듯이 본문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인줄 알고 무죄를 선언하려고 애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4절, 6절). 그가 아무리 심문을 하고 판단을 해도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생각이 되면 양심에 따라 무죄를 선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니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6절) 외치는 유대인들의 위협이, 대제사장들의 협박이 두려웠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무죄 선언을 하고 풀어주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총독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질 것이고, 또 유대인의 왕이라는 자를 놓아준 것이니 가이사 로마 황제에게 불충한 것이 됩니다.
   무죄라 생각이 되어 놓아주려는 그에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7절)라고 하니 빌라도는 상당히 놀라서 더 두려워합니다(8절). 그래서 예수님께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너는 어디로서냐”(9절)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이유는 이미 다 할 말을 했으니 이제 빌라도가 스스로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답답해서 다시 심문을 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풀어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데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하니(10절), 예수님께서 분명히 대답하시기를 그 권세는 위에서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1절). ‘위에서 주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잠시 빌려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잠시 빌려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빌라도에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네 양심대로 판단하여 재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비위를 맞추어 재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양심에 따라 판단하여 재판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금 예수님은 빌라도의 권세에 복종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또 다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힘쓰는데,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절)라고 합니다. 여기 ‘가이사의 충신’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는 가이사의 지지자, 가까운 관계에 있는 자, 측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소리야 말로 가장 큰 협박이었습니다. 그래도 빌라도가 너희 왕이라고 하면서 머뭇거리자(14절), 다시 저희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없애버리라고 외치자(15절) 결국에는 그들에게 굴복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고 맙니다(16절). 아마 자기가 예수님을 놓아주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학식이나 재산이나 권세나, 심지어 우리의 가정이나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때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너는 지금 나를 십자가에 내어준 결정을 내렸는데, 그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네가 잘못 사용하고 있기에 네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유명한 신학자 D A Carson 은 그의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같이 아무리 악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 가운데 정해놓으신 범위를 넘어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그 주권 아래 행동하는 도덕적인 주체들의 책임과 죄를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떠한 그들의 자원적인 결정과 악한 반항에도 결코 의존하지 않으신다(예- 창 19:20, 사 5:10이하, 행 4:27-28). 특히 십자가의 사건을 기록해 오는 과정에서 사복음서의 저자들은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을 주장해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 만일 하나님의 주권이 사람들의 책임을 모두 삼켜버리고 마는 것이라면, 애초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올 이유도 없어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어린 양이 지고 갈 죄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서 우리 인간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알지 못한 채 본문에서의 예수님 모습처럼 우리 예수님을 너무나 힘이 없는 자로만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때로 마치 죄인의 모습으로 비춰지며, 힘없고 가난한 전도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그래서 그 큰 사랑으로, 영생의 길로 초청을 받아도 고민하고 예수님을 놓고 맙니다. 좋은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나를 귀찮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원래 네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지위나 권세도 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빌려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릴 결론은 분명합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셔도 된다는 믿음입니다. 결국 신앙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져가셔도 나는 주님 뜻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우리에게 위협하고 협박을 합니다. 즉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신앙양심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잃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가져가시나 보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빌라도는 자기 안에 양심의 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대로 하지 못하고 군중의 여론에 지고 말았습니까? 서론에 언급하였듯이 진리에 속하지 않은 이상, 중생함을 받지 않은 이상 사탄에 의해, 사람에 의해 조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총독의 자리에 있어도 양심이 옳다고 하는 대로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회복된 신앙양심의 힘이 있어서 양심이 옳다고 하는 대로 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신앙양심대로 판단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책임져주십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빌라도의 연약함도,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악함도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에 사용하셨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종종 악한 자들이 악한 짓을 하도록 하시면서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룰 때가 많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도, 마귀들도, 악한 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그들을 남겨두시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나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 생활 속에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건강을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는데 병이 생겼습니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만 쫓겨 났습니까? 사업체를 나름대로 열심히 운영했는데 문을 닫게 되었습니까?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악하게 사는 사람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삽니까? 이 모두가 사탄의 역사요, 악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악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미리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며 모든 결과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에 때로 답답하고 안타깝게 마음 조아리며 살 때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임을 아셔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가끔 악하게 보이는 것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시기 위해서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요셉처럼 선으로 악을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아 멘!!
  그러려면 우리가 십자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려주신 보혈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악한 자에게까지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베푸셨던 복으로 우리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신앙양심을 따라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양심에 떳떳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위축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니 결국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신앙양심을 따라 얼마든지 당당하게, 담대하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제발 비굴해지지 마십시오. 비겁하게 살지 마십시오. 영광의 왕의 자녀답게, 하나님 나라 왕자답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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