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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1-30 (월) 06:1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67    
영적 전쟁(4) -평안의 복음의 군화와 믿음의 방패-
오늘은 영적군사가 무장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 세 번째와 네 번째 장비인 "평안의 복음의 신과 믿음의 방패" 에 대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 . .

   셋째, 평안의 복음의 군화를 신고 무장해야 합니다.
   15절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를 붙인 후에 신을 신어야 하는데 복음의 신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는 신발이나 구두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화입니다. 거칠고 가파른 길을 행군해야 하거나, 돌작밭이나 가시덤불의 길을 행군하는데 발을 보호해 주어야 할 군화입니다. 발에 물집이 생기거나, 찢겨져 피가 나면 굳게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행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군인들의 군화는 가죽으로 만들어 졌는데 바닥은 쇠못으로 징을 박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축구선수들이 신는 운동화 밑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튀어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즉 미끄러지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도록 만든 군화입니다. 사탄이 공격하여 흔들어도 두 발은 꿈쩍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환경을 흔들거나, 친구를, 재정을, 직장 일을, 가정을 흔들어 쓰러뜨리려 해도 굳게 서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평안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의 군화는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비한다는 원어의 뜻은 신속한 준비를 의미합니다. 신속하게 평안의 복음의 군화를 신으라는 명령입니다. 또한"평안의 복음"이라 함은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해줍니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평안(peace, shalom)을 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평안은 죄인이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한 내적 평화입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소망 없이 죄 가운데 진노의 자녀로 살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 그와 화평을 누리며 하나가 된 것(엡 2:1-5)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굳게 서는 것입니다. 전에 죄인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져 그를 대면하며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됨으로 얻게 된 내적 평안입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요동을 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평안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신 평안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하나님을 등진 인생들을 돌이켜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 복음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복음! 좋은 소식!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 승천하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자녀의 권세를 주시는 이 복음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은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점점 더 풍요로운 세상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산다 해서 점점 더 행복해지고, 내적 평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눈으로 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등진 죄된 삶 속에서 그 영혼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한, 참된 평안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화평케 되는 일이 시급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이렇게 그 아들을 믿을 때에 주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화목된 삶을 회복하여 평안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은 다만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함만이 아니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맛보기 위한 군사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평안의 복음의 군화를 신지 않으면 사탄에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악 가운데 심령이 곤고하며,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골 3:15)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평안의 군화를 벗는다면 다른 것이 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염려와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자게 하며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생각도, 말도, 행동도 나중에 후회할 것들로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 정, 의를, 심령을 평안의 복음이 주장하도록,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도록,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의 복음의 군화를 주신 것은 이 군화를 신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행군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에 넋을 잃고 있는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기도 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하셨으며, 사도 베드로도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에 대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존중함)으로 하고"(벧전 3:15)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들을 대항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지키는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기 전에 우리들의 모습처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마귀를 좇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로 걸어가서 이 평안의 복음,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군사로서 다른 무장은 다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다 할지라도 복음의 군화를 신지 아니하면 그는 행군할 생각이 없는,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사탄에게 질 수 밖에 없는 군사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영적 전쟁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고 에베소교회에게 명령한 후에, 무엇을 부탁하고 있는지 보십시요.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 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고 하지 않습니까? 영적 전투에 대비하라는 권면의 결론은 복음 전도였습니다. 이 모든 영적 전쟁에의 승리는 결국 전도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성령의 능력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로 가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평안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바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하신 것입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입니다.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그리고 복음의 군화를 설명하신 후에 믿음의 방패를 제시하면서 "이 모든 것 위에"라고 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방어용 무기가 방패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군인이 아무리 허리띠를 단단히 동이고, 커다란 흉배를 붙이고, 특별한 군화를 신었다고 할지라도, 방패의 도움이 없이는 완전한 무장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여깁니다. 당시 방패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금 작은 것으로 반경이 2 피이트되는 원형 방패(clipeus)와 다른 하나는 더 큰 것으로 높이가 4 피이트, 넓이가 2 1/2 피이트되는 직사각형의 방패(scutum)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방패는 후자, 즉 몸 전체를 보호하는 큰 직사각형의 방패를 가리킵니다. 단단한 나무에 쇠로 입히거나, 무거운 가죽에 기름을 발라 씌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군사의 몸 전체를 보호하는 믿음의 방패가 필요한 이유가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화전"은 말 그대로 불화살입니다. 즉 휘두르는 칼날이나 찌르는 창을 막는 방패이기보다 불화살을 막는 방패입니다. 칼이나 창의 공격은 적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살의 경우는 적군의 모습을 잘 볼 수 없이 공중에서 날아봅니다. 설사 적의 모습을 안다 해도 그 적을 공격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살의 공격은 하나씩 차례대로 날아오지 않고 일제히 한꺼번에 날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원어에는 "화전들", 복수로 쓰였습니다. 화전들을 쏘는 장본인은 "악한 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적인 사탄, 마귀들입니다. 마귀들이 쏘는 불화살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의심입니다. 믿어오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 여태껏 인도하신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의심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할 때에는 몰랐지만 신앙이 떨어지고 영적인 무장이 해이해지면 어김없이 이 의심의 화살이 날아듭니다. 그렇게 분명히 믿어지던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하게 잊혀집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조차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환경이라는 시위에 의심의 화살을 날려,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낙심케 하고, 낙망케 합니다. 좌절하고 두려워하게 합니다. 이 의심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방패뿐입니다. 둘째, 유혹입니다. 정욕의 유혹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좇아 살기 보다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기를 즐거워합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탄은 정욕의 유혹이라는 화살을 쏨으로 성도들이 군사로서 전투할 능력을 상실하게 할 뿐 아니라 온 몸이 정욕의 지배를 받게 합니다. 한 때 하나님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되었고 용감무쌍하던 영적군사들이 한 순간에 정욕을 위하는 육체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때로는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들을 한 개의 화살에 맞은 상처로 평생을 병상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혹의 화살이 올 때에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합니다. 셋째, 교만입니다. 사탄이 가장 잘 사용하는 화살입니다. 높아지기 원하는 사람의 죄성을 잘 알기에 무슨 일을 사용해서라도 자만, 자존심, 교만이 싹트게 합니다.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게 합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화가 나게끔, 신경질이 솟아나게끔 화살을 쏩니다. 그럴 때에도 믿음의 방패가 아니고는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 외에도 시기, 질투의 불화살, 미움의 불화살, 파당을 만드는 불화살 등 여러 가지 죄를 짓게 하는 불화살을 막는 유일한 무기는 믿음의 방패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 만이 이 모든 것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영생을 얻는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와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를 찾고 구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히 11:6).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처럼 구원받은 의인들이 믿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합 2:4, 롬 1:17, 히 10:38).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며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사탄의 모든 불화살을 물리칩니다. 할렐루야!
   우리 공동체가 이 영적 전쟁에 그토록 오래 참전하였음에도 아직 승리의 깃발을 세우지 못한 것은 혹시 이 사탄의 불화살에 맞은 많은 부상병들 때문은 아닐까요? 의심의, 정욕의, 교만의 화살에 맞아 싸울 힘을 잃어버린 군사들 때문은 아닐까요? 과거에 한 때 강한 군사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그들이 가끔 입술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시고 다시 영적 강한 군사로 무장시켜 달라고 하지만 마음이 갈라져 있다면 모두 거짓된 기도일 뿐입니다. 이미 불화살에 맞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화살에 맞아 이미 쓰러진 군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신을 포기하고 고통이 싫어서 자살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불화살을 맞는 것입니다.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치유해 주시는 의사이신 주님이십니다. 자신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음을 깨닫고, 이제는 내가 싸울 수 없음을 고백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물론 옆에 무장을 하고 있는 십자가 군대 군사들이 도와야 합니다. 동지가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는데 나 몰라라 하면 그 부대는 적에게 지고 맙니다.
   사탄의 화살을 맞아 온갖 추한 죄에 빠졌던 고린도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고 하였고, 이어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전 7:1)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화전에 맞아 부패했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회복을 약속하신 주님께서는 이 영적 전쟁에서 잠시 믿음을 떠남으로 부상당한 군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 시간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앞서서 전쟁을 진두지휘하실 뿐 아니라 실패한 군사들을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무서운 화전이 몸 깊이 박혔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진심으로 치료받기를 원하는 군인들을 고치시기에 능하신 의사이심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고침을 받고 회복하십시오. 몸에서 화살을 뽑아내시고 상처에 포도주를 부으시며 새 살이 돋게 하십니다. 치료함을 받고 회복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좇아 다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재무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실패하였다가 일어선 영적군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무리의 증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히 12:1).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성경은 "그런즉 이 일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1) 하였으며, 이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방패가 진리의 허리 띠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난 주일에 설명을 드렸듯이, 여러분의 믿음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이 많고 적음도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능력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마 17:20). 무엇을 믿고 있는지,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 큰 분이면 큰 믿음이고, 작은 분이면 작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에 나타난 그대로 믿는다면 얼마든지 불화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진리의 허리띠를 동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군화를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드셨습니까? 그리하여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함께 행군하실 수 있습니까? 삶의 폭풍이 몰아쳐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을 주장하십니까? 아니 마귀들이 쏘는 불화살을 믿음으로 막고 사십니까? 아니 이미 맞아 힘을 잃은 군사가 되셨습니까? 치료를 받고 회복하여 다시 믿음의 방패를 들고 무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평안의 복음으로 마음을 굳게 하고, 잃어버린 자를 향하여 행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탄의 불화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막아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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