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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0-03 (월) 10: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03    
나의 평안을 주노라(요 14:25-31)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두려워서 피했습니다(창 3:10).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 숨었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들에게는 여러 두려움들이 찾아 왔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경외함의 두려움이 아니라 공포로 떠는 두려움을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높은 곳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많은 군중들을 두려워하거나 사람 만나는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시험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사고가 날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병(균)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근심과 두려움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잘 못 자며, 심지어 정신병을 비롯한 질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11제자들도 이제 주님께서 그들을 떠난다고 하시니 근심하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주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1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하셨습니다(2-11절).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보다 더 큰 일을 제자들이 앞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절). 복음 전파, 영혼을 살리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3-14절).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 사랑하면서 그 계명들을 지킬 수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5-24절).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평안이라는 단어는 샬롬(shalom)입니다. 약 250번 가량 사용되었는데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단순히 인사말로 사용되기도 하였고(삿 19:20, 삼상 25:6,35), 사람들 사이나 나라 사이에 분쟁이 없는 상태에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창 26:29, 왕상 4:24). 또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시 85:8).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peace)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저 분쟁이 없는 정도의 평안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함에서 오는 평안입니다(빌 4:11-12).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축복으로서의 평안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와 달리 하나님에 대하여서 조금도 두려움이 없기에 사람들이나 어떤 환경,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평안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일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입니다. 아프지도 않고, 고통 당하지도 않고, 분쟁 가운데 있지 않는 것이 평안한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 있지 않아 어마어마한 태풍이, 환란이, 죽음이, 심판이 몰려오는데도 당장은 평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주님의 평안은 태풍을, 환란을, 죽음을, 심판을 이긴 평안입니다. 악한 마귀의 세력과 음모와 모든 힘을 이기고 난 후의 평안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참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 영혼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앞으로 보내실 보혜사 성령님으로 인하여 진리를 알게 되어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아직 저희들과 함께 계실 때 이런 주옥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시지만(25절), 앞으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절)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실 때 제자들은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다 생각이 나게 되었고 그 의미를 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상, 하나님의 놀라운 뜻도 다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사도들이 후에 신약성경을 기록할 때에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님의 말씀이 다 생각이 나서 하나의 오류도 없이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딤후 3:16, 벧후 1:20-21). 그래서 성경 말씀이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도 성령님께서 내주하신 이후에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지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인간들 중에서 마귀보다 더 머리가 좋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무지하여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셔서 의의 종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마귀보다 더 지혜롭게 하셨습니다. 더 잘 보게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귀는 앞을 보지 못하는 괴물로서 싸움을 걸어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에 마귀에게 붙잡히지 않게 됩니다. 즉 성령을 받은 우리는 마귀를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아니하고, 의심하며 화를 내고, 죄성을 따라 성질을 내면 절대로 마귀를 이기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오히려 믿음으로 감사하면 마귀는 스스로 미쳐서 나가 자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 마귀들은 오늘날도 인간들을 자극하여 세상의 온갖 악한 짓은 다 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 이 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을 지연하고, 오히려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과 부흥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령의 물고를 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며,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의 환경이 어렵게 되어 두려운 상황이 될 지 몰라도, 그런 세상을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십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28-2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28절에서 주님이 “아버지가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신보다 아버지가 크다고 하신 말씀은 본질상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보다 작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과 역할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겸손히 순종하는 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참고- 빌 2:5-11).  
물론 이제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망으로, 극히 소수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승리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수차례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주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있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보다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죄 사함과 구원의 근원이 되고,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확신이 되며, 그 후에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29절에서 ‘만약(if)’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때(when)’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은 만약이 아니라 분명히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니까 십자가의 죽음도 두렵지 않았고, 제자들을 남겨두는 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믿고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였고,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믿게 하려고 미리 말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우리 자신의 야망이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30-31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세상 임금은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기로 한 후부터 온 세상은 사탄의 권세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 온갖 타락과 부패의 원인이 된 타락한 천사 말입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들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탄이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말씀을 저가 주님과 관계가 할 것이 없다고 30절에 우리말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다만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 세상이 주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며,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시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들은 이 세상 삶에서 대체로 다음 네 가지에 초점을 두고 삽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self)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자신과 연관을 시킵니다. 주님 안에서 자존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납니다. 둘째는 환경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환경을 탓하며,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 쉽게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셋째는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물질을 많이 소유하면 영혼에 만족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사람들과 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초점이 되면 그들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나 성령의 내적 조명 대신에 사람들의 말을 따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나 환경, 물질,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평생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우리의 환경을, 물질을, 주위 사람들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이 네 가지를 다 주께 맡겨드린다고 하면 근심할 이유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마땅히 보아야 할 눈으로 보게 되고, 환경이 하나님 섭리의 도구가 되고, 물질이 축복이 되고, 주위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로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아무리 천지가 진동한다 하더라도 여러분 심령에 고요한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과거의 아픈 상처를 계속 붙들고 있거나, 현재 당한 어려움 때문에 근심하고 있거나, 미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견하듯이 걱정하고 있다면 정말 내가 믿는 사람인지,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지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을, 성령님의 능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두려움이 여러분의 심령에 찾아 온다면 이길 능력을 주실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십시오.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성령님께서 나를 주장해달라고 말입니다. 매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면 감사를 드립시오. 어떤 환경에서도 부정적인, 비관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부정적인 습관을 긍정적인 습관으로 바꾸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면, 여러분의 미래를 안다면 부정적인, 비관적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비관적인 태도를 계속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기 때문에 현재는 그렇지 못해도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무너질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할 일은 주님 사랑하며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사탄이 우리를 두렵게 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과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라고 속삭입니다. 넘어가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런 열악하고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놀랍게도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몸으로 주님을 높여 드리며,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망을 주며 적극적으로, 낙천적으로 살 때에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이 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을 향한 저의 기도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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