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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0-17 (월) 06:4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0    
주님의 친구입니까?(요 15:9-17)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지만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진정한 참된 친구는 더 적습니다. 믿고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나눌 수 있는 친구 말입니다. 왜냐하면 ‘친구’라고 하지만 때때로 거짓과 신실하지 못함으로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친구’라는 명목으로 다가와 이용을 하고서는, 자신에게 필요가 없을 때에는 멀어져 가는 ‘친구’가 많을 것입니다.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친구는 많지만, 정말 내가 필요로 할 때에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참 사랑의 친구는 아주 드물지요.
한편, 나는 지금 누구의 그런 친구가 되어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야말로 내게 유익이 있을 때에만 친구가 되어주고 내게 필요가 없을 때에는 돌아보지도 않는,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는 자는 아닌지요.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 3년여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같이 다니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제자들 중에 자신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긴 자도 있었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하는 자도 있었고, 특별히 사랑했던 세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을 때에도 저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잘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남은 11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15절) 하십니다. 어쩌면 오늘날 실패투성이인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너는 나의 친구”(14절)라고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감히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나의 친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주님의 종입니다’ 할 뿐이지요. 여기 ‘친구’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궁정에서의 왕의 친구(a friend in a court)’를 의미합니다. 왕의 명령을 잘 따르고 섬기는 친구입니다. 왕을 두려워하는 신하로서가 아니라 왕을 잘 알고 사랑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 교제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가 19장 12절에서는 “충신”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시고, 여겨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때로는 형제라고 하시며(히 2:11),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기도 하는데(요일 3:1) 오늘은 친구라고 불러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어느 다락방에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 계속됩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면서 말씀으로 깨끗하여 지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절).
그렇게 주님께 붙어있는 것을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친구로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 사랑 안에 거하여야 주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어도 자신을 다시 살리셔서 영광스럽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주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며,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이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계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2절)고 하십니다. 이미 13장 34-35절에서 말씀하셔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중요한 단어는 “같이”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예수님의 친구라고 불려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13절에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그러한 본을 보이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진실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면서 큰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참 친구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목숨까지 버리신 우리의 참 친구이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외로울 때, 마음 아플 때, 정말 필요할 때, 아니 늘 옆에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생명 바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필요하면, 우리를 위해서라면 하락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믿을만한 분이며 의지해도 되는 참 친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유일하게 아브라함을 가리켜 “주의 벗”(대하 20:7, 사 41:8, 약 2:23)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고향 하란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수백 마일 떨어진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또한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에 기꺼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던 순종이 그를 하나님의 친구였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친구 관계가 좋아지고 깊어지려면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들어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 서로 고집을 피우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듣지 않으면서 따로 따로 행동한다면 친구 사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하물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려면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다 못 지킨다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만큼은 지킬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더러 이 세상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저축하여 잘 살라고 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며 성공하려고 하고, 더욱 많이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희생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을 하신다면 정말 주님의 친구입니다. 청교도 목사이며 18세기 대각성 운동의 주인공이었던 George Whitfield 목사님은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기 보다 닳아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라고 말입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남을 위하여 닳아 없어지는 인생이야 말고 주님의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주님의 친구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고, 계시의 말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5절)고 하셨습니다. ‘친구’ 원어의 의미처럼 왕과 가까이 지내면서 수종드는 자로서 왕의 비밀을 다 알고 있고, 왕이 하고자 하는 일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친구 사이에 비밀이 있다면 참된 친구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친구라면 계시의 말씀을 성령을 통하여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까지 감당하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주-종 관계라고만 한다면 주인이 종한테 일일이 자기가 하는 일을 다 알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성경이 주의 벗이라고 하기 전에, 주의 종이었습니다(창 18장). 하지만 친구라고 하셨기에 비밀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한 예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끝난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자기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즉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시니까 이번에는 아예 협상을 해서 열 명까지 낮추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롯과 그 두 딸을 살려주셨고 롯 때문에 소알이라는 한 성은 멸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창 19장).
우리도 주님의 친구라면 하나님 앞에서 계시의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 가지고 기도도 하며, 물어도 보며, 협상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계시의 말씀을 알아 듣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알기 위하여 애쓰셔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나의 친구’라고 하시겠습니까? 관계(relationship)에 있어서 짝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한편에서, 나 친구하고 싶다고 자꾸 사랑을 주고 관심을 베풀어도 다른 한편에서 그것을 무시하고 싫다고 하면 친구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하는 상관관계가 이루어져야 우정이 생기고 서로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고 다 예수님의 친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면서 가까이 하기 원하지만, 우리 편에서 그 사랑과 관심을 무시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친구라고 할 수 없지요. 친구를 잘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친구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친구라고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라 불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누구의 참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힘과 정성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희생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친구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입었고, 깨달은 자라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6절)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셔서 포도나무 가지가 되게 한 까닭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인데, 그 열매가 항상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면 다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 열매는 사랑의 열매를 말합니다(17절). 본문에서 몇 번씩 강조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랑하여 주님 사랑 안에 거한다면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11절)!
어떤 기쁨입니까? 승리의 기쁨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비참하지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신 기쁨입니다. 그 대속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한없이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 ‘충만하게 한다’는 의미는 완성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는 것들은 다 미완성입니다. 어떤 연구도 공부도 미완성입니다. 사랑도 성공도 다 미완성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능력이 와야 완전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완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완전히 용서가 되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능력이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몸에 큰 암 덩어리가 발견되어 사망 선고를 받은 자에게 찾아가 선물을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면 그 사람은 잠시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자신에게 있는 암을 생각하면서 슬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수술을 받고 암 덩어리가 완전히 제거되어 낳은 후에 그를 찾아가 선물을 주면 그야말로 기뻐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가 암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주님의 보혈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온전히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큰 사랑 안에서 주님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한다면 이 놀라운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혹시 누구를 사랑하지 못해서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를 사랑하려는 노력 이전에 내가 주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주님 사랑 안에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에게 신실하게 붙어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것입니다. 더욱 주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계시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를 더 해가는 것입니다. 매일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은 친구라고 불러주신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주님 사랑을 닮아 사랑하고 살면서 말씀을 잘 깨달아 알고 주님의 일이 무엇인지 아신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친구입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사모하며, 주님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며 어떻게 생각하실까 관심이 있다면 주님의 친구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무슨 일이 닥쳐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고 주님과 상의한다면 주님의 친구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자신 있게 주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주님의 친구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주님께서 “나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Johnson Oatman 목사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시는 주님께 감격하여 쓴 찬송가 97장이 우리 모두의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셨으니 기쁨으로 경배하며 찬양하리 나의 친구
내 맘 속에 늘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네 가지된 자 하나되리 포도나무 나의 친구
그 날이 와 황금 길에 그의 영광 바라보며 그의 팔로 날 안을 때 만나보리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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