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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0-07 (금) 02:0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32    
참으로 사랑하시기에(나 1:1-8)
여러분이 과거에 하나님의 사랑이나 그 은혜를 의심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철없는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심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우리 육신의 부모님들은 인간인지라 그 사랑과 은혜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 말씀은 십계명 중 제 2계명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9하-10)!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계시며 그의 거룩한 성품으로 인한 질투가 있기에, 만약 그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면 삼 사대를 벌하시며,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축복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속성인 거룩함, 그리고 의로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질투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시기 질투로 참지 못하고 복수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사람의 질투는 그의 감정이나 이기적인 본능에 의한 질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질투도 사람들이 하는 질투로 생각하기에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투, 오늘 본문의 나훔 선지지가 말하는 내용은 사람들의 질투와는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감정이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하는 질투처럼 시기하여 쉽게 화를 내는 분이 아닙니다. 3절에도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나훔 선지자가 말하는 내용은 우리 하나님은 참고 참으시다가 의로우셔서 불의에 대하여 화를 내며, 우리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기에 악에 대하여 바로 서서 대항하며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나훔의 이름이 갖고 있는 히브리어의 뜻은 ‘위로하다’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그는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기를 북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 나라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언 그대로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의 홍수와 바벨론과 메데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주전 612년에 망합니다.
주전 722년 당시 가장 잔혹하고 힘이 강했던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북 이스라엘이 망한 후, 남쪽 유다까지 넘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21년이 지난 주전 701년에는 유다 변경의 많은 부분이 그들의 공격을 받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의 묵시, 계시를 받고 앗수르 나라,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합니다(1절). 비록 70여년 전에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니느웨의 회개를 선포하게 함으로 돌이킴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하나님을 잊고 악을 행하던 앗수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훔 선지자의 예언은 유다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고 참으로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장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의 묵시의 글 서두에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2절상)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백성을 보호하시는데 온갖 정열을 다 쏟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대한 열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자녀들에게 완전히 헌신되어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됩니다. 2절에 질투와 보복이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속된 범죄로 말미암아 잠깐 심판하라고 앗수르의 침략을 허용하셨지만 지나치게 약탈하는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며 그의 자녀들을 못살게 하는 어떤 무리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2절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택한 백성들을 치려하는 것을 자신에게 대적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그 앞에서 절하며, 택한 백성들을 계속 못살게 하는 그들에게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권능이 크시다고 하십니다(3절). 그 크신 능력의 예를 자연을 다스리시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회오리 바람과 광풍으로 바다를 꾸짖고 강을 말리우고(3절하-5절), 홍수로 흑암으로 그들이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8절).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마저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기에 그 진노를 더디하십니다(3절상). 오래 참으십니다. 나훔 선지자가 이 글을 쓴 것이 주전 654년경으로 믿는다면 약 42년 후에 니느웨의 멸망이 온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공의로우시기에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심판을 맞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 1:12).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지 않는 영혼들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어려움 가운데서 지켜주시는 산성이라는 말입니다. 요새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보호하시기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자들에게 진노를 품으시는 분입니다. 여기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아신다”라는 뜻은 언약 관계에서 사용된 말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그의 의무를 다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대적이 되는 사탄의 세력 즉 하나님과 경쟁하기 원하는 사탄, 마귀들로부터 ‘질투하신다’는 표현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이것을 믿고 하나님만 사랑하기 원합니다. 7절에서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아신다고 하신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다른 우상이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인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신 6:15)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의지입니다. 이유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택하고 사랑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피 값을 치르게 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세상에 속하여 우리 자신 뜻대로 세상의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을 용납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향하여 있기를 원하십니다. 전심으로, 일심으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살기 원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도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하신 것입니다. 정말 미워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으면 주님의 참된 제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랑의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생수가 배에서 강 같이 흐르도록 성령님을 주셨는데도 자꾸 우리가 그 물 탱크를 부수어버리도록 내어버리는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기뻐하시지만, 다른 것을 의지할 때 불쾌하게 여기시고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할 때 그 물질을 빼앗아 갑니다. 건강을 의지할 때 건강을 빼앗습니다. 지혜나 지식을 의지할 때 그 지혜나 지식으로 망하게 합니다. 더욱이 우리 자신을 믿을 때에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항복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서는 그 결국이 더 나빠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사귐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어머니가, 자식이 여러분과 더 친합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장 많이 교제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편이나 아내입니까?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입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과 교제하시면서 살아갑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가장 가까이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은 그 즐거움을 맛보고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당하는 많은 어려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가까이 두고 싶어 하셔서 주시는 고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는 다들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이해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짜증이, 원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종종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엡 5:25-32, 계 19:7-9).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신랑입니다. 세상의 남편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하십시다. 참으로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한없는 열정으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사탄은 이미 졌고, 앞으로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어쩌지 못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되시며 신랑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더욱 사랑합시다. 이 세상 누구보다, 어느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합시다. 아니 이 세상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의지합시다. 더 주님을 가까이 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확실히 믿고 이 크신 사랑에 대한 확신이 변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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