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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8-02 (화) 00: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93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요 12:37-50)
사람들은 자연적인 현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적들은 보고 체험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이미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적을 보지 못한 보통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합니다. 이유는 기적을 기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초자연적인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이라면 그의 삶이 얼마나 역동적이겠습니까? 얼마나 생동하는 삶이며, 그 은혜 때문에 그 심령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 공생애 사역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3년 넘게 많은 기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살려 주셨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37절) 라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였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고, 주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풍성한 열매는 제자들에게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들로 놀라운 사역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예수님 사역의 결과는 너무 초라했었습니다. 주옥 같은 설교를 듣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을 행하였어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현상이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38절, 40절).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사 53:1)라는 뜻은, ‘주여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이 임하여 기적을 보여줄 때에 누가 믿었습니까?’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외쳐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6:10)는 뜻은, 하나님께서 저들이 믿지 못하게 눈을 멀게 했고,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지 않는 강퍅한 마음 그대로 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고 자꾸 따지려고 하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지 않고 더 마음이 미련해지고 교만하여지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둔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바로 왕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고, 회개하라고 해도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하는 데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24절)라고 하였고,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사”(26절)라고 했으며,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28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내어버려 두사”를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께서 유기하셨다’라고 합니다. 즉 원래 원죄로 인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주로 받아들이며 죄에 대하여 회개한다는 것은 그 심령에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죄인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주권적인 은혜가 역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는 은혜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영안을 열어주시고, 영의 귀를 열어주셔야 비로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믿어지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성령님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이 살아서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있게 된 것이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 은혜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유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의심하고 따지기만 좋아했습니다. 논쟁하고 싸우자고 예수님께 대들었습니다. 아니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 전체를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만 마음에 담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는 분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왕으로서 통치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속죄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말씀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외면하였습니다.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다고, 죽을 수가 없다고 믿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 상식, 선입견 등으로 쪼갭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은 믿고, 그렇지 않으면 트집을 잡고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성령을 받으면 신구약 성경말씀 전부가 믿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직도 믿어지지 않으시면 제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겸손히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영의 귀를 열어주셔서 말씀이 전부 믿어지게 하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영안이 열려지고, 영의 귀가 열려질 줄 믿습니다. 아 멘!

헌데 사도 요한은 당시 관원(산헤드린 공회원)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이 두려워 공적으로 드러나게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42절). 이유는 그렇게 했다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요한이 그들이 주님을 믿었다고 했는데 믿기는 믿지만 연약한 믿음을 말하는 것인지, 거짓 믿음을 말하는 것인지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혁주의 주석가들 사이에서도 반은 연약한 믿음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반은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42절만 보면 연약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문제는 43절입니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즉 만약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참으로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뭐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이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위하며, 자기 영광보다 하나님 영광을 먼저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속되게 표현하여서 예수님을 믿으면 왕따 당할까봐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못한다는 사람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33)고 하셨습니다. 죄 씻음을 상징하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온 성도들 앞에서 신랑되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연합하였음을 시인하는 예식이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신랑이 예수님임을 시인하고 살아야 참 믿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 관원들 가운데서는 믿는다면서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출회, 즉 출교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주로 섬긴다면 당연히 주님을 따르는데 필요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자도(Discipleship)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이 세상 삶에서 고통과 핍박이 있더라도, 손해를 좀 보더라도,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시인하는 삶이야말로 믿는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참 믿는 자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44절 이하에서 믿는 것이 무엇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오는지 결론적으로 요약하여 말씀하십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보는 자는 곧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44-45절).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지만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초라한 외모를 보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46절). 그래서 믿는 자들은 이 빛 가운데 거함으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된다고 하십니다. 마치 태양빛이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어두움의 세력을 이길 능력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이 세상의 모든 시험을 이길 능력이 생깁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예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47-48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이 이미 증거하였듯이(요 1:1,14), 자기 자신과 말씀을 동일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하여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서 하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신 스스로가 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말할 것과 이를 것을 명하여 주신 것만 하셨기 때문입니다(49-50절).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겸손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으로서 그 신성과 능력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영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하시면서 그 말씀 그대로 증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죄인인 줄 알면 무조건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생명의 빛은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믿으면 빛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모든 시험을 이길 성령님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고,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을 증거하신 후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여러분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고 계심이 믿어진다면, 약속하신 말씀대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여러분과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이 믿어지신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더욱 굳게 말씀을 붙드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야 할 길을 담대히 가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이 땅에서 고통이, 핍박이, 손해가 있더라도 온 세상에 주님을 시인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가 아니라면 저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요, 나의 왕이십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찬양이 여러분에게 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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