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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09-12-04 (금) 00:1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98    
[12/2/09] 수요예배 - 지혜자의 특징
지혜자의 특징 (전도서 7: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잘 아시겠지요(마 25:14-30). 그런데 비슷한 므나 비유를 아십니까(눅 19:11-27)? 므나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모두 똑같이 한 므나씩 주면서 가서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 므나는 100 드라크마로, 한 드라크마는 로마 화폐 한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한참 후에 돌아와 계산을 하는데 한 종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겼으므로 주인에게 칭찬을 들으며 열 고을을 다스리는 상급을 받고, 다른 한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겨서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상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종은 한 므나를 그냥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은행에 맡겨도 이자를 받지 않느냐고 하는 꾸중을 듣고 주인의 심판을 받습니다. 달란트 비유가 각자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라면, 므나 비유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재능이나 생명의 기회를 묻어 두었던 자들은 모두 주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와 재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땅에 파묻어 두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상급을 받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름답게 써야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는 물음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자는 미래를 생각하고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자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움켜쥔 채 쓰지 않는 사람이나 함부로 낭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진리를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1절에서 전도자는 재산을 소유하고만 있는 것과 가치있게 잘 사용하는 것을 비교하면서, 후자가 훨씬 복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사람에 대한 평가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아름다운 이름, 영예를 얻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재능을 잘 사용하여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복되게 한 사람이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보배로운 기름은 사람의 재산이나 재능, 학식, 건강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만 있지 남을 위하여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배로운 기름이 나을 것 같지만 성경적으로는 아름다운 이름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기만 하기 보다 제대로 사용해서 남을 복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려면 먼저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을, 목적을,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둘째로, 1절 하반절에서 4절까지 말씀에서 잔칫집과 초상집을 비교하면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입니까(1절하)?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잔칫집에 가는 것은 지금 현재를 즐기자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초상집에 가는 것은 미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죽은 후에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죽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할까?’미리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죽은 후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사람의 죽음은 외롭지 않습니다. 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애정으로 죽음을 아름답게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순간 즐거워하는 것보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때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젊을 때 방탕하게 사는 사람, 재능과 학식과 건강과 시간을 낭비한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한번 낭비한 인생은 결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에게 도둑 맞은 인생이지요.
그래서 3절에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슬픔은 인생을 바로 살기 위해 고생하는 것입니다. 쉽게 잘살기 위해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좀 힘들거 슬퍼도 좁은 길을 갑니다. 정도(正道)를 가면서 맞이하는 환란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는 힘들어도 내적으로는, 심령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 좋게됩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합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어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생각하고 모든 것을 조심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희희낙락하며 자기 멋대로 삽니다. 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지혜자의 또 다른 특징들이 5절 이하에 나옵니다. 지혜로운 자는 미래를 준비하며 살기 때문에 첫째, 책망의 말에 귀를 잘 기울입니다.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5절)고 했습니다. 사람은 백 가지 잘한 것보다 한 가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책망을 듣습니다. 다 잘 하다가도 잘못한 한두 가지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든지 허점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좋은 일 많이 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를 지으면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빛을 잃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책망의 말씀에 자꾸 귀를 기울입니다. 신앙생활은 아무리 주의를 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 짓는 것은 눈 깜짝할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평소에 귀에 따갑도록 주의를 들어야 유혹 앞에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은 책망을 듣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주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은 자의 노래에, 칭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5절하-6절). 그런 노래나 칭찬은 솥 밑에서 타는 가시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타는 소리는 요란한데 밥이 되지를 않습니다. 밥이 되려면 나무가 오래 타면서 열을 내야 하는데 가시나무는 너무 빨리 타서 꺼져버리기 때문에 밥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의 칭송을 들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기분이 좋을 때는 거품을 물고 칭찬하다가도 조금만 수가 틀리면 바로 그 입으로 욕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자가 칭송을 하던, 욕을 하던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당하면 힘들겠지만 마음을 담대하게 가지고, 어리석은 자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셋째, 지혜로운 자는 탐학과 뇌물을 멀리 합니다. 7절에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지을수록 점점 중독성을 갖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한번만 죄를 짓고 몸을 빼려고 하지만 절대 되지 않습니다. 한번 빠져든 죄에 칭칭 감겨 들어가 결국 죄에 늪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아예 가까이 하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여기 탐학(extortion)은 ‘강요하다, 갈취하다’라는 뜻으로 남을 악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남을 악하게 대할수록 자기 마음이 더욱 악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남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을 아주 악하게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복수를 하고 난 후에는 더 악해집니다. 그 동안 마음을 더욱 독하게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복수하려는 악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복수하면 자신이 악하게 변합니다. 복수해서 통쾌한 것보다 자신을 망친 것이 훨씬 더 큰 손해입니다. 남에게 좀 지더라도 사랑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분별력을 잃게 합니다. 사람이 왜 뇌물을 거절하지 못합니까? 우선 뇌물을 주는 사람의 낯을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성이라면서 주는 데 거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됩니까? 또 뇌물을 받으면 좋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합니다. 공짜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성경에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빚은 성도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 사이 돈 관계는 깨끗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거래 관계가 없는 것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할 때에는 깨끗하고 조금도 의혹이 없이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 공짜라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인가 받았으면 반드시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NO! 라고 할 때에는 분명히 NO! 라고 하고, YES! 라고 할 때에는 YES! 라고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분별력을 잃으면 안됩니다. 당시에는 마음이 아플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좋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주님 다시 만날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물질, 건강과 정력, 학식과 재능 그 모든 것을 잘 사용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가치 있는 일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죽은 후를 생각하고 사십시오. 주님 앞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책망을 달게 받으십시오. 특히 성경 말씀에서 주시는 책망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칭찬 받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아니 그들의 어떤 말도 귀 담아 두지 마십시오.
또한 악한 마음으로 복수할 생각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죄는 어떤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돈 문제, 물질 문제에 깨끗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그렇게 지혜롭게 살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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